“해적 사건만 10차례 다뤄···기니만 공관장 회의 직접 제안”
주리비아 대사 등 거쳐 8번째 재외공관 근무
"해적 사건 발생하면 대충 규격 보이기도"
"인근 공관과 정보 주고받으며 해결 노력"
韓·나이지리아 간 경제협력 활성화도 추진
"나이지리아에서도 한국 소프트파워 통해"
“외교부에 근무하며 해적 사건만 10차례 다뤄봤습니다. 저로서는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규격이 대충 보이는 셈입니다.”
김영채 주나이지리아 대사가 최근 서울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2021년 2월 부임한 김 대사는 지난 2년간 나이지리아 인근 해역에서 한국인이 해적에게 납치되면 주재국 정부와 협조해 조력을 제공해왔다. 김 대사는 “외교부에 근무하는 동안 해적 사건을 단 한 차례도 다루지 않는 직원들도 많은데, 관련 실무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공관장이나 직원들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한 방법인지 잘 알지 못 한다”며 “이들과 관련 정보를 유기적으로 주고받으면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사는 2007~2008년 본부에서 재외국민보호과장을, 2012년 주남아공대사관 공사와 총영사, 2015년 주리비아 대사 등을 역임하며 관련 업무 경험을 쌓았다.
◇해적 피랍 40%, 기니만 집중···“정보 공유 도움돼”=김 대사는 지난달 서아프리카 기니만 인근 해상에서 한국인 기관장 1명이 탑승한 싱가포르 국적 선박이 해적에게 납치된 때를 언급하고 “우선 선박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이 중요했다”며 “나이지리아 정부, 특히 나이지리아 해군에 협조를 요청해놨고 시에라리온과 서부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해운강국인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에 정보나 첩보를 확인하면 바로 연락을 해달라고 초동 조치를 해놨다”고 떠올렸다.
김 대사는 이 과정에서 지난해 새로 생긴 기니만 지역 공관장 회의가 아주 유용했다고도 소개했다. 기니만 해역은 전 세계 해역에서 발생하는 피랍 사건의 40%가량이 집중해 발생하는 곳이다. 선원 납치 사건만 따지면 약 90%가 기니만 해역에서 발생한다. 바로 이 기니만 해역에서 한국 국적 어선 47척과 우리 국적 선원 120여명이 현재 조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김 대사는 관련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기니만 연안 주재국 공관장들이 정보 공유 겸 회의를 열 것을 제안했고 이에 따라 지난해 4월 가나에서 첫 회의가 개최됐다. 이후 김 대사는 해당 회의를 1년에 한두 차례 정기적으로 개최할 것을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추가로 제안했고, 박 장관이 흔쾌히 수용하면서 2차 회의가 올해 1월 31일 나이지리아에서 열렸다. “세네갈부터 가봉까지 굉장히 넓은 지역에서 여러 해상 사고들이 발생하는데 해적 사건을 처리하다보니 해적 발원지는 나이지리아지만 수산업에 종사하는 한국 선원이 없고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세네갈에는 수산업에 종사하는 우리 국적 선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각국 공관장들이 해적 납치 사건을 통합적으로 관리해 ‘원팀’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갖추면 좋겠다고 생각해 공관장 회의 신설을 제안하게 됐습니다.”
주나이지리아 대사관은 지난달 발생한 해적 납치 사건 해결에도 크게 기여했다. 김 대사는 “저희뿐 아니라 다른 공관에서도 관련 정보를 추적해 십시일반으로 주코트디부아르 대사관에 제공했다”며 “국내에서도 외교부, 해양수산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등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당사국 공관이 교섭하는 데 쓰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임하지 얼마 되지 않은 모 공관장이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인근 공관장 간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너무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는 또 기니만 인근 지역에서 해적 납치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나이지리아에 퇴역 함정을 공여하는 방안도 현재 추진 중이다. 김 대사는 “기니만 연안 국가들의 경제난과 높은 청년실업률과 물가상승률, 치안 불안 문제 등으로 (해적 납치 사태는) 단기적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한국에서는 보통 10년 정도 사용하고 퇴역시키는 해군 함정을 나이지리아에 무상기여하면 해적 퇴치 활동에 기여할 수 있겠다 싶어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국 정부는 현재 해군 함정의 여러 기술적 문제와 공여에 필요한 절차를 다루고 있다. 김 대사는 “나이지리아에 함정을 공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한국과 나이지리아 양국 이해가 상당히 맞는 부분이 있어서 굉장히 좋은 사례”라고 강조했다.
◇나이지리아, ‘미들파워’ 韓과 협력 선호=대사관은 한국과 나이지리와 간 경제 협력 활성화에도 힘쓰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경제규모가 가장 큰 나라가 바로 나이지리아입니다.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며 인구 역시 2050년이 되면 미국을 제치고 전 세계 3위 인구 대국이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하자원도 많아 거버넌스(지배구조)만 좋아지면 발전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나라입니다.”
대사관은 특히 나이지리아 기업과 협력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현지 로펌을 고용해 나이지리아 국내법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해당 기업의 신뢰성을 조사해 이를 우리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기업 신뢰도 조사 수요는 매년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20~30건 수준이라고 김 대사는 설명했다.
이와 함께 나이지리아는 비동맹 중립주의를 기본 외교원칙으로 삼아 한국과의 협력을 키우는 데 정치적인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으로서는 나이지리아와의 협력 확대에 유리한 입지를 점한 셈이다. “나이지리아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 등 어느 강대국 한 쪽에 경사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나라든 한 국가와의 협력을 지나치게 키우는 데 부담을 가지는데, 한국은 소위 말하는 ‘미들파워(중견국)’ 아닙니까. 나이지리아가 한국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김 대사는 “한국이 나이지리아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이 경제 발전으로 선진국이 된 것은 현지 지식인들도 다 아는 사실”이라고도 강조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1960년 영국 연방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자국 경제 수준이 한국 경제 수준보다 높았던 점을 상기하며 한국의 경제 발전 성과를 본받아야 한다고 여긴다고 한다.
나이지리아 일반 국민이 한국에 대해 가지는 인상도 좋은데, 그 배경으로 김 대사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지목했다. “나이지리아에서 현대차와 기아차 등이 많이 팔리고 삼성전자, LG전자 가전이 인기가 높습니다. 넷플릭스에 들어가 나이지리아 현지 랭킹을 보면 항상 10위권에 한국 드라마가 2~3개씩 있기도 합니다.” 나이지리아 젊은 여성들과 주부들 사이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굉장히 인기가 있는데, 남자들이 ‘부인이 한국 드라마를 보느라 식사를 챙기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한다. 김 대사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좋다”며 “한국 기업의 역할, 한국의 경제 발전,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영향을 크게 미쳐 나이지리아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확대하려는 의향이 높다”고 거듭 강조했다.
◇“외교관, 외로운 직업···스스로 빈공간 채워야”=김 대사는 이번 주나이지리아 대사관까지 재외공관 근무만 8차례 경험한 베테랑 외교관이기도 하다. 후배 외교관들에게 전수해줄 팁을 묻자 김 대사는 “가끔 자녀들과 얘기하다보면 제가 가진 가치관, 세계관이 맞는지 스스로 의문을 제기한다”며 “근본적인 환경 자체가 바뀌어서 살아가는 방식도 각자 본인 세대에 맞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는 “자녀 세대와는 세계관이 완전히 다르다고 느꼈다”며 “저는 일종의 근대화가 이뤄지던 시절에 태어나 이렇게 자라 이른바 ‘험지’로 분류되는 국가에서 근무해도 힘들지 않은데,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생활을 ‘편하게 생각하라’고 쉽게 얘기하기가 어렵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도 김 대사는 “외교관은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머나먼 타국에서 생활해야 해 외로운 직업이다. 빈 공간을 채우려는 노력을 알아서 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유행 기간 발생한 외교관들의 자살 사건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살 수 없습니다. 개인의 삶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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