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문장에 쫓겨난 수베로 감독, 한화 리빌딩 얼굴마담만 필요했나
[스포티비뉴스=고유라 기자] 한화 이글스가 또 한 번 시즌 중 감독을 경질했다.
한화는 12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를 4-0으로 이긴 뒤 최원호 퓨처스 감독을 제13대 감독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최 감독 선임 보도자료 다섯 문단 중 수베로 감독을 언급한 건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는 한 줄에 불과했다. 계약 해지 발표는 그게 전부였다.
한화가 그렇게 홀대할 만한 감독이었던가. 한화는 2020년 10월 수베로 감독 선임을 전격 발표했다. 한용덕 전 감독의 뒤를 이어받은 최원호 당시 감독대행이 후반기 팀을 잘 이끌었기에 정식 감독행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한화는 파격적인 창단 첫 외국인 감독을 택했다.
당시 한화 상황을 살펴보자. 한화는 시즌 후 은퇴를 예고했던 김태균 외에 19명을 방출했다. 김회성, 송광민, 안영명, 양성우, 이용규, 최진행 등 베테랑 선수들이 대거 방출 명단에 올랐다. 심지어 이용규는 그해 유일한 규정타석 외야수였는데도 과감하게 내보냈다. 바로 한화를 지배하기 시작한 세 글자 '리빌딩' 때문이었다.
한화는 수베로 감독을 선임하며 "다수의 마이너리그 팀 감독을 역임하면서 유망주 발굴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밀워키 브루어스의 리빌딩 성공 과정에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며 리빌딩, 육성에 초점을 맞춰 그의 능력을 홍보했다.
수베로 감독은 이후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한화를 맡아 106승15무198패 승률 0.349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감독들 중 승률 최하위였다. 수치만 놓고 보면 결코 성공한 감독은 아니었다. 그러나 수베로 감독은 누구보다 한화의 리빌딩에 대한 사명감이 남달랐던 사람이었다.
한화와 수베로 감독 사이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것은 사실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수베로 감독은 처음 KBO리그를 파악하면서 "낯선 시스템"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은 메이저리그 밑에 여러 레벨의 마이너리그가 있어 레벨마다 목적이 다른데 한국은 메이저리그에서 육성을 해야 한다. 19살 투수가 30살 베테랑 타자를 상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베로 감독은 '한국식 리빌딩' 개념부터 적립해야 했다.
수베로 감독이 당황하는 사이 한화는 첫 해인 2021시즌 팀의 슬로건을 'This Is Our Way'로 걸었다. 우리들만의 길을 간다는 뜻인데 당시 수베로 감독이 가장 많이 한 말이 "결과보다 과정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남들이 승패를 따질 때 리빌딩 과정에 집중하는 길을 가겠다는 수베로 감독의 철학이 슬로건에 함축돼 있었다. 한화 구단이 리빌딩에 있어 수베로 감독을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
그런데 올해 균열이 유독 눈에 띄었다. 채은성, 이태양, 오선진 FA 3명을 잡으며 2017년 이후 처음 외부 영입에 지갑을 연 한화는 코칭스태프에 변화를 주면서 "지난 2년간 수베로 감독이 권한 내에서 본인의 색깔을 낼 수 있도록 해왔다면, 3년차 시즌에는 팀과 선수 개개인의 확실한 성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성갑 잔류군 총괄 등 2군 코치진을 강화하며 수베로 감독에게는 1군 성적에 매진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한화는 4월 들어 앞선 2년보다 더 성적이 처졌다. 승률 3할대가 무너지기도 했다. 외국인 투수 1명이 개막전에 이탈했고 외국인 타자는 1할대 타율로 2군에 갔다. 전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에 큰 구멍이 생긴 상황은 차치하더라도, 최근 들어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해본 적이 없던 감독과 선수들은 갑자기 몰려온 성적 압박감에 더욱 헤매는 모습이었다.
일각에서는 수베로가 '이길 줄 모른다'고 비판한다. 그말이 맞다. 그런데 수베로 감독은 순위 싸움을 위해 한화에 온 게 아니었다. 수베로 감독은 경질 일주일 전까지도 취재진에게 "한화는 언젠가 웃을 날이 올 것이다. 내 끝이 언제일지 몰라도 계속해서 씨를 심겠다"고 했다. 구단은 올해 '이기는 야구'를 선언했는데, 감독은 여전히 리빌딩에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중요한 건 수베로 감독에게 그렇게 하라고 3년의 시간을 준 게 한화였다. 수베로 감독의 실패에서 구단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올해는 어떻게든 성적을 내겠다 마음 먹었다면 차라리 지난 시즌이 끝나고 계약을 해지해야 했다. 수베로 감독에게도 리빌딩 결과의 단맛을 보게 하려고 했다면 그건 한화 프런트의 패착이다.
한평생 광활한 뎁스에서 육성에 매진해온 이방인은 종잇장 같은 뎁스에서도 승리를 짜내는 한국의 '전투'를 몰랐다. 그리고 한화는 수베로 활용법을 제대로 몰랐다. 이렇다 할 프런트 성과 없이 2년간 수베로만 내세우다 단 한 문장으로 내보냈다. 구단과 감독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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