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대장 3차 수색] "朴대장, 들리나요…우리가 왔습니다"
흔들리는 비행기 속에서도 내심 기대감과 불안감이 수없이 교차했다. 10여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난 터다. 아무리 기후변화로 히말라야 빙하와 적설이 녹았다고 하더라도 박영석 대장의 유해가 표면에 드러날 리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벌써 12년이 지났는데 어쩌면 박 대장의 유품이라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번갈아 가며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안나푸르나 남벽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고故 박영석 대장의 유해를 찾기 위한 수색대를 결성해 지난 3월 1일 출국, 20여 일간의 수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 수색은 2011년 사고 원년 수색과 2012년 2차 수색에 이어 세 번째다.
박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의 수색은 서두른다고 될 일이 결코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그들이 묻혀 있는 곳을 뻔히 알고 있는데, 찾아가보지 않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신념하에 이번 수색이 추진되었다. 사망한 장병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국가적으로도 그렇게 노력을 하는데 하물며 대한민국의 영웅이자 세계적인 산악인 박영석 대장의 흔적을 찾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수색대가 대규모 원정대의 위용은 갖추지 못했지만 셰르파 및 포터 고용, 퍼미션 비용 등 상당액의 비용이 필요했다. 어려움을 겪던 차에 박 대장을 잊지 않고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신 여러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해 주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먼저 이번 기고를 통해서 후원해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박 대장과 히말라야 등반을 하며 생사의 고비를 함께했던 강성규, 강철원, 김헌상 후배들이 시간을 내서 대원으로 참여했고, 서울대교수산악회의 윤동천, 정성은 교수가 응원 차 지원조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아끼는 제자 김남표 화가가 박 대장의 마지막 길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선뜻 이번 여정에 함께했다. 홍경희 이사장, 그리고 조영찬 사장 내외도 네팔까지 동행하시면서 응원해 주셔서 마음이 든든했다. 박 대장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이번 여정은 여타의 원정이나 트레킹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 들었고 그러는 가운데 수색의 시간은 흘러갔다.
안나푸르나 남벽 밑동, 드론으로 상세 수색
아직 사고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포카라에 착륙한다. 지난 1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향하던 항공기가 추락해 70여 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있었기에 비행 내내 다소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지프를 타고 두어 시간 달려 꽤 높은 산허리에 도착한 곳은 해발 1,780m의 지우단다. 이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촘롱, 시누와, 밤부, 도반, 데우랄리, 마차푸차레 로지Lodge를 거쳐 3일 만에 ABCAnnapurna Base Camp(4,130m) 로지에 도착한 대원들은 본격적인 수색 준비에 돌입했다.
고도가 높아지고 눈을 밟으면서 숨이 점점 가빠온다. 특히 빙퇴석 지대를 올라칠 때는 숨을 몰아쉬기에도 바쁘다. 그 와중에 힐끗 고개를 들어보면 거대한 봉우리들이 줄지어 들어앉아서 굽어보고 있다. 정면에 있는 안나푸르나 남벽의 위용은 아랑곳없이 그대로다. 버릇처럼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본다. 히운출리(6,441m), 안나푸르나 남봉(7,219m), 안나푸르나 팡봉(7,647m), 안나푸르나 1봉(8,091m), 강가푸르나(7,445m), 텐트피크(5,663m)로 이어지면서 에워싸인 안나푸르나 연봉들이 마치 한 폭의 거대한 병풍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 병풍 초입 저만치에 문지기처럼 서있는 봉이 마차푸차레(6,993m)다.
빙하 위에 쌓인 돌과 자갈길은 불안했고 잘못 디디면 미끄러졌다. 탄탄한 중등산화가 못 버틸 만큼 거친 빙퇴석 지대는 길고 길었다. 숨을 몰아쉬며 저 둔덕이 마지막 둔덕이려니 하고 올라서자 아뿔싸 그게 아니다. 둔덕이 계속 펼쳐져 있다. 날카로운 돌과 자갈 무더기의 크고 작은 둔덕은 가도 가도 밀려오는 파도처럼 다가왔다. 둔덕의 파도가 밀려올수록 안나푸르나 남벽의 바닥을 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더 발동한다. 마침내 빙퇴석 지대의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끄트머리에 섰을 때. 아! 떡하니 우리를 마주하고 있는 안나푸르나 남벽의 밑동!
나와 대원들은 안나푸르나 남벽의 밑동 주변을 세심히 관찰하고 수색했다. 그리고 밑에서부터 위로 이어지는 절벽을 유심히 관찰했다. 저 위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려 있는 세락까지 세심히 관찰했으나 돌무더기뿐 어디에도 등산복이나 장비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강성규 대원이 조작하고 있는 드론이 세락 주변 상공을 비행한다. 드론 촬영에 희망을 걸어보지만 역시 화면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세락 절벽 주변과 그 아래로 원정대 베이스캠프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빙퇴석 지대에 박 대장의 흔적은 없었다.
수색 중 당시 원정대가 사용했으리라 짐작되는 비교적 평평한 텐트 사이트가 세월의 풍설을 못 이기고 무너져 있음을 발견한다. 파상 셰르파가 케른을 만든다. 파상이 케른 위에 향을 피우자 대원들이 고개를 숙여 묵념을 올린다. 파상이 셰르파들의 전통방식으로 제가를 읊는다. 제가가 낮게 울려 퍼진다. 나는 '박영석 수색대' 라고 인쇄된 수색대 모자를 케른 밑 돌 아래에 괴어 넣었다. 나는 그렇게 박 대장에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캠프로 돌아온 수색대는 히말라야 드론 비행 규정상 드론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세락 절벽 위의 설사면과 주름진 빙하지대는 헬기를 띄워 수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이를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오후 1시부터 내리던 눈발이 다음날 내내 내리더니 30cm가량 눈이 내렸다. 헬기를 띄운들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수색대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튿날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수색대는 10여 년이 지난 현장 상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고 적어도 세락 절벽 밑은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2~3년 후에 원정대 등반허가를 받아 이번엔 하이캠프에서 수색을 해보자고 동행한 대원 및 셰르파들과 의견을 나눠본다. 이틀 동안 내린 눈으로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빙퇴석 지대를 넘고 넘어 수색대는 ABC로지로 귀환한다.
향후 수색 범위 명확
결과적으로 이번 수색에서 박 대장의 흔적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대원 모두 무사히 수색을 마쳤고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사고 지점과 눈사태로 쓸려갔을 루트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출국 전 미국에서 통신관련 사업을 하시는 현교명 선배로부터 안나푸르나 지역을 촬영한 인공위성 지도를 받아보기도 했지만, 박 대장이 빙하에 쓸려 내려왔을지도 모르는 구간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특히 드론을 띄워 고인들의 유품이 드러날 것이라고 예측되는 세락 절벽 주변을 수색함으로써 향후 수색의 범위가 명확해졌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수색대의 리허설 성격으로 2022년 5월에 안나푸르나 남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5,000m급의 텐트 피크를 등반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안나푸르나 남벽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설사면과 주름진 빙하, 크레바스, 세락 등을 눈여겨 봤었는데 이번에 직접 어느 정도 확인한 셈이다.
지원조와 ABC로지에서 합류한 수색대는 곧바로 로지 인근에 있는 박영석, 신동민, 강기석의 추모비를 찾았다. 오전에 국내에서 가져온 자재들로 추모비 수리를 마친 터라 일행들은 곧바로 고인들에게 제를 올렸다. 저 멀리 안나푸르나 남벽을 향해 대원들이 절을 하고 두 손을 모은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종점인 이곳 ABC까지 오는 트레커들이라면 누구나 찾아오는 곳이 박영석 대장의 추모비란다. 박 대장이 한국인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수많은 외국 트레커들에게도 각인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네팔 전국서 17명 셰르파 모여
그리고 박 대장이 예전에 운영했던 빌라 에베레스트에서 17명의 셰르파와 마주 앉았다. 이번 수색대에 참여한 드루바, 파상, 상게 셰르파는 물론이고 그동안 박 대장과 원정을 함께한 셰르파들이 모인 것이다. 물론 연락이 닿지 않은 셰르파들은 참석하지 못했다. 이들을 불러 모은 건 빌라 에베레스트 사장인 앙 도르지 셰르파가 연락해 모인 것이다. 당초 5~6명 정도가 모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많은 셰르파가 온 것에 수색대나 셰르파들이나 어리둥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살아생전 박 대장이 셰르파들에게 보여 준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 의리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셰르파들은 그 의리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K2를 박 대장과 같이 등반했던 셰르파는 박 대장과 함께 찍은 사진도 가져와서 수색대에게 보여 주기도 했으니 박 대장은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식사와 술자리를 가지면서 수색대는 셰르파들의 인적사항을 받고 인터뷰를 하는 등 박 대장과의 추억을 기록하기도 했다.
수색대는 이번 여정의 마지막으로 카트만두 북부 외곽에 있는 카카니공원을 찾았다. 박 대장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 곳이다. 네팔등산협회에서 네팔 정부로부터 토지사용을 허가받아 위대한 산악인들의 업적을 기념하고 추모하기 위해서 만든 곳이다. 네팔의 영웅인 에베레스트 초등자 텐징 노르게이, 네팔 여성으로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파상 나무가 모셔져 있고, 외국인으로는 유이하게 텐징 노르게이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에드먼드 힐러리경과 인류 최초로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영석 대장이 모셔져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유지 관리가 허술해 보인다. 기념탑을 받치고 있는 대리석은 곳곳에 떨어져 나가 있고 비바람과 뜨거운 햇빛에 돌판에 새겨진 고인의 기록과 초상화가 퇴색된 종이처럼 희미하다. 전언에 따르면 네팔등산협회에서 향후 본격적인 유지관리를 할 계획이라고 하니 다행이다. 수색대는 퇴색되어 지워진 박 대장의 초상화와 기록을 유성매직으로 다시 칠하는 것으로 이번 수색의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이번 수색은 이렇게 끝이 났다. 끝은 다시 시작으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박 대장의 흔적을 찾아서 수색대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번 수색의 상세한 성과보고는 박영석 대장 12주기인 10월 18일, 서울시산악문화체험센터에서 전시회를 겸하여 열릴 예정이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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