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현장]'타이틀 42'가 뭐길래…美국경선은 '대혼란'

워싱턴=CBS노컷뉴스 최철 특파원 2023. 5. 1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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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디에이고 접경지대에서 대기 중인 중남미 이민자들.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표면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한다"며 시행해온 '타이틀 42' 행정명령이 11일(현지시간) 자정을 기해 3년 만에 종료되면서 미 남부 국경지대는 몰려든 이민자들로 '혼란상'이 빚어지고 있다.

CNN 등 외신들은 실시간으로 현장을 연결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일단 바이든 정부는 텍사스주 엘파소를 비롯해 주요 국경 도시에 일찌감치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이민자 폭증에 대비해 병력 1만5000여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대체 100년 전에 만들어진 '타이틀 42'가 왜 지금 논란의 중심에 서 있고, 연방 보건법의 한 챕터에 불과한 '타이틀 42'가 미국 정부와 이민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걸까.

트럼프 정부가 발굴해 낸 '타이틀 42'

 

1910년대에 만들어진 보건법 제42호 정책(타이틀)은 "국제적 위해의 전염병이 창궐해서 미국에 퍼질 위험이 있을 때 이를 막기위해 국경을 무조건 닫을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남미로부터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들을 봉쇄하는 것을 천명으로 여겼던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거의 사문화되고 있던 '타이틀 42'를 찾아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들었다.

당시 민주당과 법원의 저지로 '국경 봉쇄'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었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앞장 세워 이같은 상황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연합뉴스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타이틀 42'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절대적으로 적용한다고 행정명령을 내렸고, 이로 인해 비자 발급을 통한 합법적 입국 및 이민을 제외하고는 미국 국경 통과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됐다.

원래 미 국경수비대는 불법 이민자들을 붙잡아도 수용소로 넘길 수 있을뿐 그 자리에서 불법 이민자들을 국경 밖으로 내쫓을 권한이 없다.

수용소로 이동한 불법 이민자들은 추방 또는 석방되는데, 확실한 전과자 외에는 대부분 석방되고 이 사람들은 미국 이민재판소 출두 전까지 미국 안에서 한시적으로 머무를 수 있게 된다.

이민재판소 역시 불법 이민자들을 선별해 추방 또는 석방시키는데, 불법 이민자들이 이민 판사와 대면하려면 평균 4년을 기다려야 하고, 이말은 그 기간동안은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안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러던 것이 '타이틀 42'로 완전히 바뀌었다. 국경수비대는 불법 이민자들은 수용소에 보내는 대신 그대로 국경밖으로 추방해버릴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은 것이다.

바이든의 딜레마 "'타이틀 42' 반대했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이에 민주당에서는 "'타이틀 42'가 이민을 막으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 트럼프가 이를 악용한다"고 비판했고,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후보로 나선 바이든도 "당선이 되면 트럼프의 이민 정책을 바꾸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타이틀 42'는 바이든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불법 이민자를 막는 강력한 '툴'로 작용했다. 지난 2022년 한 해 동안에만 미 국경수비대는 동일인을 이중 계산해서 220만 번의 불법입국자 체포와 즉시 추방을 실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틀 42'를 비판했지만, '타이틀 42' 없는 세상에서 불법 이민자 문제를 마냥 손놓고 있을 수 없는 것이 바이든의 딜레마인 것이다.

'타이틀 42'가 해지되면 하루 1만5000명 정도가 미 남부국경에서 불법입국 월경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산술적으로 1년 총 550만 명에 달한다. 지난 3년간 엄격하게 통제되고 억눌렸던 것의 '반작용'인 셈이다.

여기다 중남미 나라들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일자리를 찾아 미국에 오려는 사람이 더 늘었고, 문제는 이들을 수용할 공간도 능력도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공화당 일각 "'국경 장벽 건설'도 다시 추진해야"


 
미국 의사당. 연합뉴스

공화당은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불법 이민자 급증을 바이든 행정부의 실책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추진하다 대선 패배로 무산됐던 '국경 장벽 건설'도 재개해야 한다"며 바이든을 몰아세우고 있다.

이에 바이든 정부는 '타이틀 42'가 종료되더라도 "불법 이민자들에게 미국 국경이 그대로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소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마음은 '유연하게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실은 불법 입국을 막아야하는 정책을 만드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일단 항공편으로 들어오는 합법 이민의 길은 확대하되, 육로 불법 이민은 엄격하게 차단하겠다고 한 상황이다.

특히 추방돼도 다시 입국을 시도할 수 있었던 '타이틀 42' 때와 달리 최소 5년간 재입국이 금지되며, 대상자는 단순 추방이 아닌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자 진보 진영에서는 "이민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정당한 심사를 받을 기회도 주지 않는 것이 트럼프와 다를 바가 뭐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타이틀 42' 종료뿐 아니라 시대와 맞지 않는 이민법, 이민자 정책을 둘러싼 정치권의 분열 등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민자 문제에 대한 민주·공화 양당의 입장이 극단적으로 갈리기 때문에 이민법을 손보거나 현 상황에 대한 타협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 '타이틀 42'는 코로나19 팬데민 종료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앞으로 바이든 정부가 '국경 봉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내년 대선에서도 핫한 이슈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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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CBS노컷뉴스 최철 특파원 steelcho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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