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심플한게 최고”…변화하는 VC의 스타트업 투자 기준
복잡한 BM으로 마진 얼마 안남는 곳 매력↓
교과서적인 BM으로 수익 내는 곳엔 관심
[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기에는 신박하지 않더라도 단순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서비스사에 투자한다.”
‘외형 성장이 곧 성공’이라는 스타트업 공식이 깨지고 있는 가운데 요새 국내 벤처캐피털(VC) 관계자들을 만나면 듣는 공통적인 말이다. 복잡한 물류 시스템을 건드리며 유통의 간소화를 내세우는 온라인 플랫폼 스타트업 등에 투자하느니 단순한 비즈니스 구조로 ‘한방’을 보여주는 곳이 VC 투자에 있어서는 더 매력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유동성이 풍부했던 지난 2020~2021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유통 및 물류에 대한 관심이 커진 당시 투자사들은 수익보다는 매출액 중심의 외형적 성장을 중요시했다.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외형 확장을 통한 기업가치(밸류에이션) 높이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투자사들은 현재의 사업 모델로 단기간에 이익을 낼 수 있느냐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신박함’을 내세워 적자를 지속하는 스타트업보다는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곳은 꼭 검토한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VC들이 이러한 기조를 가져가는 주된 배경으로는 경기 침체도 있지만, 외형성장에 초점을 맞춰온 스타트업이 고꾸라지는 모습을 속속 목격한 것도 한 몫 거들었다. 밸류체인 혁신을 통해 고객이 신선한 식품을 받아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온라인 플랫폼사들이 대표적인 예제다. 예컨대 수산물 당일 배송 서비스 ‘오늘회’를 운영하는 오늘식탁은 지난해부터 심각한 자금난을 겪어왔다. 오늘식탁은 아침 11시까지 주문하면 당일 오후 세시 전에 도착하는 신선 회 당일배송 서비스를 통해 누적 회원 75만 명을 넘기며 빠르게 성장한 기업이다. 하지만 복잡한 유통 구조과 막대한 물류 관리 비용, 과도한 마케팅 등으로 수익이 좀처럼 나지 않았고, 결국 약 300여개의 협력업체 대금 지급이 밀리면서 서비스를 중단한 바 있다. 약 4개월간의 숨고르기를 거쳐 현재는 일부 서비스를 재개한 상태이지만, 지속 가능성은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직거래 방식의 농산물 유통 사업을 앞세운 그린랩스도 마찬가지다. 농업 시장의 디지털화를 위해 설립된 이 회사는 농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돕는 클라우드 기반의 스마트팜 솔루션과 농산물 도매유통 플랫폼 사업을 영위해왔다. ESG 및 애그테크 트렌드를 탄 그린랩스는 지난해 17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8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농산물 유통 사업에 과도한 인력 및 자본이 투입된 탓에 회사는 1년만에 극심한 자금난에 봉착했다. 이에 회사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고, 현재는 농산물 유통 사업을 접은 상태다. 당분간은 스마트팜 솔루션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고 데이터 농업의 본질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VC 한 대표는 “요새는 투자할 때 이 스타트업이 다음 라운드에서 타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을 역량이 되는가를 꼭 살핀다”며 “영업이익을 비롯한 관련 지표를 단기간 내 낼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통상 중개 역할을 하는 온라인 플랫폼사들은 인재와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데, 이는 수익을 내기에는 어려운 모델”이라며 “지금과 같은 시장 상황에서는 신박하지 않더라도 교과서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수익을 내는 스타트업이 투자를 유치하기 훨씬 수월한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김연지 (ginsbur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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