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까요 말까요 묻지마”… 北이 두려워한 군인의 귀환, 군은 어떻게 바뀔까 [박수찬의 軍]
“보기 드문 사람이네. 시원시원하게 말하고….”
연평도 포격전 직후였던 2010년 12월 3일 늦은 오후.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국회 본청 승강기에 탑승한 국방위원회 A의원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랬던 그가 6년 만에 용산으로 돌아왔다.
2010~2017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과 국가안보실장을 역임한 뒤 ‘군 정치 댓글’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지난 11일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급 위원이 됐다. 현 정부 안보정책에서 김 전 장관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김관진의 키워드 ‘독일·레이저·국방개혁’
김 전 장관은 육사 28기로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2군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3군사령관,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 국가안보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진보와 보수 정권을 넘나들며 안보분야 장관급 직책을 맡은 진기록을 갖고 있다.
김 전 장관 경력의 포인트는 독일 유학이다. 김 전 장관은 1969년 서독으로 건너가 3년간 공부했다.
당시 서독군은 나치의 잔재를 버리고 혁신을 추구했다. 독일에 유학했던 생도들도 이같은 분위기에 더해 독일 철학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등을 접했다. 이를 통해 미군 사상을 따르던 당시 한국군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예비역 육군 중장으로 국방부 정책실장을 역임했던 류제승 주아랍에미리트(UAE) 대사,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이같은 경우에 속한다.
김 전 장관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노태우 정부 말기였던 1992년 합참에 근무했던 김 전 장관은 주요 지휘관들에게 평시작전통제권 전환 당위성을 설명하는 등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 한국군 이양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2006년 합참의장으로 부임해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 2020’을 추진하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준비 등에 골몰했다.
이는 2012년 12월 국방부 장관 취임 이후 북한 비대칭 전력에 대한 자체 대응능력을 강조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전임자였던 이상희 전 장관이 육군 기동군단에 초점을 맞춘 국방개혁을 추구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장관 재임 시절 강렬한 눈빛과 단호한 말투로 대북 응징 의지를 강조, ‘레이저’라는 별명이 널리 퍼졌다. 이같은 부분이 이명박정부 마지막 장관이자 박근혜정부 초대 장관으로서 4년간 국방부 장관직을 수행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으로는 ‘소신과 추진력이 있다’는 평가와 ‘일선 지휘관 모습이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엇갈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2014년 6월 국가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 전 장관은 2015년 8월 북한 포격 도발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를 대화로 해소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문재인정부가 2017년 5월 10일 인수위원회 없이 임기를 시작하자 11일간 국가안보실장으로서 북한 도발에 대응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로 국방부 장관을 맡고 있던 2011년 3월 군 참모총장에게 작전지휘권을 주고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도록 하는 군 상부지휘구조 개편을 포함한 ‘국방개혁 307 계획’을 밝혔다.
합동군제를 내세웠던 노태우 정부의 8·18 군제 개혁을 20여년 만에 통째로 바꾼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군 안팎의 반발로 2012년 국회에서 관련 법안 통과가 무산됐다.
2014년 북한 무인기가 청와대까지 침투한 사건과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 22사단 총기 난사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 국민의 신뢰가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6년 탄핵 정국 속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주도했고,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의와 실제 전개도 김 전 장관이 국방부 장관과 국가안보실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이뤄졌다.
한국군 국방개혁과 대북 강경 기조, 남북 관계, 한미 연합방위태세, 한미일 및 한일 군사협력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한 셈이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위원과 더불어 국방혁신 4.0 관련 현안을 토의해 국방부 장관에게 전하는 국방혁신특별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표면적으로는 ‘자문’이지만, 그의 경력을 감안하면 김 전 장관의 무게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국가안보실장 재직 당시 조태용 현 안보실장이 안보실 1차장, 김규현 현 국가정보원장이 2차장으로 그를 보좌했다. 김태효 현 안보실 1차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었을 때,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한일, 한미일 군사협력 기조는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가 한일 및 한미일 군사협력에 적용하는 지소미아,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티사)은 김 전 장관 시절에 만들어졌다. 티사는 현 정부에서 한미일의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를 위한 법적 장치로 거론된다.
한일 지소미아가 처음 추진됐던 2012년 당시 국방부는 실무 차원에서 협정체결 작업에 참여했다. 지소미아 무산 직후인 2014년 12월 국방부는 티사를 체결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김관진이었다. 2016년 한일 지소미아 체결 당시에 그는 국가안보실장이었다.
군의 규모를 줄이면서 4차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
김 전 장관이 오는 17일 국방혁신특별자문위원장 자격으로 주관할 자문위의 첫 전체회의 주제는 ‘2040년 적정 상비병력 판단’과 ‘국방무인체계 발전’이다.
국방부는 현재 출생률과 복무제도가 유지된다면 2040년 병사 자원을 15만 명으로 추산한다. 현재 병사 규모 30만 명의 절반 수준이다. 병사가 줄어들면 간부 정원도 축소해야 한다.
군 규모는 작아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전투력 약화를 만회하려면 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연구 중인 적정병력 규모와 관련, 자문위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다.
우려의 시각도 있다. 정부와 군이 위원회와 김 전 장관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0년 9월 3일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군이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하면서도 군 복무기간을 21개월에서 24개월로 환원하는 문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더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같은해 12월 6일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청와대 보고에서 일부 위원들은 “보고내용 중 우선순위를 정해 실행에 옮기는 게 긴요하다”며 “대통령이 정치적 결단을 내려 달라”고 건의했다. 보고에는 군 복무기간 24개월 환원과 군 가산점 등이 포함됐었다.
이에 대해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브리핑 자료에서 “민간자문기구에서 의견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채택될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검토 과제로 끝날 수 있는 것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복무기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셈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같은 일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전 장관의 재등장은 예고됐던 것이기도 하다. 현 정부 안보정책 중 상당수가 김 전 장관 재임 시절 등장했고, ‘강골’ 이미지와 풍부한 경험은 그의 행보를 주목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국방정책 분야에서 김 전 장관이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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