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청렴 강요받은 이규보 아들 함(涵), `60억 코인왕` 김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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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고종 28년 3월 3일, 대문호 이규보는 홍주태수(지금의 충남 홍성)로 부임하는 아들 함(涵)을 향해 시 한편을 썼다.
이규보가 아들에게 청백을 강조한 이유는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았다.
고려시대 관직자에겐 청렴이 가장 우선하는 덕목이었다.
코인 투자 경위와 과거 재산 신고 내역이 충돌했고, 투자 당시 가상자산과세 유예법안을 공동 발의했던 사실까지 드러나 이해충돌 논란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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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고종 28년 3월 3일, 대문호 이규보는 홍주태수(지금의 충남 홍성)로 부임하는 아들 함(涵)을 향해 시 한편을 썼다.
"나라의 중신이 되어/부디 가문의 명예 떨어뜨리지 말고/아무개 아들답다는 칭찬 들어야 하느니/생전에는 만날 수 없을지 모르지만/사후에야 어찌 알아보지 못할쏘냐/청백이 제일의 신조가 되고 그 다음은 근심과 겸손뿐이야."
(동국이상국집 9권, 고율시, 신축 3월 3일 아들 함을 홍주태수로 보내며)
관직 생활을 하면서 무엇보다 청백을 우선시하라는 당부다. 이규보가 아들에게 청백을 강조한 이유는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았다. 고려시대 관직자에겐 청렴이 가장 우선하는 덕목이었다.
이런 자세를 높이 평가하는 기록도 흔히 발견된다. 상주(경북 상주)의 지방관을 지냈던 정복경의 묘지 기록을 살펴보면 "공은
청렴하고 검소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풍이 있었다. 집에는 쌓아놓은 물건이 없었고 오직 책상과 자연 그대로의 나무 의자뿐이었다"고 나와 있다.
반면 사회 통념상 관직자가 재물을 과도하게 모으는 행위는 천하게 여겼다. 이규보는 자신의 시에 이런 지방관들을 일컬어 '백성의 고혈을 빠는 악귀'처럼 묘사했다.
당시 관직을 지냈던 인물을 기록한 <고려사> 열전에도 탐욕스런 관리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는 기록이 심심찮게 나온다. 심지어 고려말 사대부인 이숭인은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상행위를 하는 바람에 "중국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 삼한(三韓) 사대부의 얼굴에 침을 뱉게 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오늘날 역시 고려시대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60억원대 코인 투자 논란'의 주인공인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궁핍마케팅'이라 불릴 정도로 자신의 절약 이미지를 상품화해 온 것도, 여전히 공직자의 최고 덕목은 청렴임을 방증한다.
그는 구멍난 3만7000원짜리 운동화를 방송에서 공개했고, "국회의원이라고 호텔에 가서 잔 적이 없다. 선거 지원 때도 모텔에서 보좌진이랑 셋이서 잤다"며 후원금을 달라고 했다. 의원이 되기전인 2019년에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팅' 콘셉트로 촬영하면서 좋아하는 음식을 묻는 여성의 질문에 "매일 라면만 먹는다. 그렇게 먹은 지 7~8년 된 것 같다"며 "거의 하루에 한 끼도 못 먹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서민은 꿈도 못꾸는, 수십 억원에 달하는 코인투자로 탐욕스러운 공직자의 표본이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그는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사과보다 "개인의 민감한 금융정보와 수사 정보를 언론에 흘린 한동훈 검찰의 작품"이라며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과감하게 계좌 내역도 공개하며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계속 꼬이기만 했다. 코인 투자 경위와 과거 재산 신고 내역이 충돌했고, 투자 당시 가상자산과세 유예법안을 공동 발의했던 사실까지 드러나 이해충돌 논란에 휩싸였다. 여권에선 '가난 코스프레', '60억 코인왕'이라는 비아냥섞인 공세와 함께 진실 규명을 요구했다. 결국 김 의원은 나흘만에 사과했고, 민주당은 진상조사단을 꾸려 김 의원 코인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진상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논란은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 도중에도 위믹스 코인을 거래한 정황이 발견됐고, 다른 게임 코인에도 9억원 넘게 투자한 사실이 드러났다.
고려시대나 지금이나 공직자가 갖춰야 할 자세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김 의원의 해명은 정직하지 못했고, 코인과 관련된 새로운 이슈는 끝도 없이 터진다. 이 정도라면 '백성의 고혈을 빠는 악귀'까진 안 되더라도 '세금(월급)루팡' 정도는 되지 않을까. 솔직히 공직자 자질이 의심되고 위선마저 느껴진다. 참으로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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