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을 말한다]④ 이 ‘시스템’ 뚫리면 다 뚫린다…당국, 한 박자 느린 이유

문수빈 기자 2023. 5.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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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제보로 드러난 SG증권 주가 폭락 사태
CAMS가 못 잡으면 한국거래소도 알 수 없어…금융위원회, 부랴부랴 CFD 대책 마련

라덕연 대표 일당으로 인한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 발(發) 주가 폭락 사태와 관련해 투자자 손실 규모가 1조원(법무법인 대건 추산)에 육박하자, 금융·거래당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투자자의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까지 사건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불공정거래(시세 조종·미공개 정보 이용·부정거래·시장질서교란 행위) 발견 과정은 크게 2가지다. 한국거래소가 거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적발하거나, 금융감독원이 자체 인지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번 주가 조작은 둘 중 어느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달 초 금융위원회가 외부로부터 제보받고 나서야 이번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전까진 한국거래소와 금감원, 그 누구도 불공정거래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 불공정거래 1차 거름망, 한국거래소 CAMS

불공정거래를 현장에서 적발하는 주체는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시감본부)다. 주식 중개 기능이 있어 모든 거래 정보가 한국거래소로 집결되기 때문이다. 시감본부는 시장감시체계 시스템인 ‘CAMS(Catch-All Market Surveillance)’를 이용해 불공정거래를 잡아낸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경/뉴스1

CAMS는 한국거래소 내외의 데이터를 결합해 상장 종목을 분석하는 인프라로, 기업 공시와 주가 추이, 매매 내역, 시장 조치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시스템이다. CAMS는 분석으로 특정 종목에 대한 부정거래 혐의 개연성을 1~3등급으로 나눈다.

1등급은 최상위 위험등급으로 기업의 부실화가 급속히 진행됐을 때 지정된다. 2등급은 차상위 위험등급으로 주가가 급락하거나, 대규모 매도 물량이 출회되는 등 부실화 징후가 있을 때 지정된다. 3등급은 기본 등급으로 경영권 변경, 자금 조달 등 부정거래 관련 기본 요건이 충족됐을 때 지정된다.

2021년 도입된 CAMS는 가동 2개월 만에 2000억원 규모의 부정거래 혐의 종목 7개를 적발했다. 최대주주가 싼값에 전환사채(CB)를 사고, 허위성 보도로 회사의 주가를 끌어올린 후 CB를 고점이 팔아 차익을 실현한 사례가 그중 하나다. 한국거래소는 불공정거래 적발 과정을 고도화하기 위해 꾸준히 CAMS를 강화해 왔다.

문제는 CAMS의 빈틈을 노린 범죄다. 시감본부는 CAMS에 걸린 종목을 중심으로 정밀하게 들여다보기에, CAMS가 잡아내지 못하는 종목은 한국거래소도 놓칠 수밖에 없다. 범죄가 정교해지는 속도를 CAMS가 따라가지 못해 일어난 게 SG 증권 사태다.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 일당이 CAMS를 피한 방법은 간단했다. 긴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들은 3년에 걸쳐 8개 종목(다올투자증권·다우데이타·대성홀딩스·삼천리·서울가스·선광·세방·하림지주)의 주가를 끌어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진행됐던 과거 불공정거래 사례와 달리 이번 건은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된 탓에 CAMS가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데이터를 켜 거래하는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이 활성화돼 주가 조작 일당 추적이 쉬운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지만, 현재의 시스템에선 불가능하다. CAMS로 어떤 기기(데스크톱, 스마트폰 등)를 통해 주식 거래를 했는지 알 수 있지만, 핸드폰 기종 등에 따라 CAMS에 표시되는 아이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에서 거래했더라도 CAMS에선 다르게 표기되는 것이다.

또 한 장소에 머물며 스마트폰으로 주식 거래를 한 게 아니라 이동하면서 했을 경우도 범죄 혐의를 찾기 어렵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스마트폰으로 거래해도 (일당끼리 주가 조작을 위해 주식을 거래한다는) 연계성 추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 특사경·제도로 사후 처리하는 금융위

한국거래소가 현장에서 불공정거래를 적발해 금융위에 보고하면, 금융위는 자체 조사 후 혐의가 어느 정도 확인한 건에 대해 검찰에 사건을 넘기는 게 통상의 절차다. 이 과정을 담당하는 건 금융위 자본시장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다. 특사경은 지난해 금융위가 불공정거래에 대한 집행력을 강화하기 위해 출범시킨 조직이다. 지난달 SG 증권 사태와 관련해 주가 조작 의심 일당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한 것도 금융위 특사경이었다.

금융위원회 전경

특사경이 사후에 불공정거래 혐의자에게 휘두르는 칼이라면, 금융위엔 하나의 칼이 더 있다. 바로 제도다. 제도를 정비해 제2의 사건을 막는 것이다. SG증권 사태에 대해서도 금융위는 CFD의 불투명성을 인식하고 제도 개선에 나섰다. 일반 개인도 CFD 계좌를 이용하면 외국인 투자자로 둔갑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지난 2일 금융위는 금감원, 한국거래소와 임원 회의를 열고 CFD의 제도상 보완 필요 사항을 검토했다. 이날 논의된 CFD의 문제점은 개인 투자자의 둔갑 외에도 ▲신용융자와 달리 증권사 신용공여한도(자기자본의 100%)에 미포함 ▲종목별 매수 잔량 등의 공시 미비 ▲투자자 대부분이 개인 전문 투자자로 구성 등 4가지다.

이 자리에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위 사항들을) 우선 검토해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보완할 것”이라며 “추후 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부분이 밝혀지면 추가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5월 새로운 정부가 ‘불공정거래 제재 실효성 제고’를 국정과제 중 하나로 포함하면서 금융위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자에게 부여하는 페널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해 왔다.

같은 해 9월 금융위는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해 최대 10년 동안 자본시장에서 금융투자상품 거래 및 계좌 개설을 제한하는 조치를 도입했다. 이때 제한되는 거래란 증권, 파생상품 등 상장 여부를 불문하고 자본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상품의 신규 거래다. 이전에 체결한 계약의 이행을 위해 불가피하거나,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낮은 경우엔 거래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또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해 최대 10년 동안 상장회사 임원 선임을 제한했다. 이미 임원으로 재직 중이라면 임원의 직위를 빼앗는다. 코스피, 코스닥, 코넥스 등 전 상장사에 해당되며 금융회사는 상장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되는 안이다.

이때 도입된 조치 중 또 다른 큰 줄기 중 하나는 부당이득금액의 최대 2배의 과징금을 매길 수 있는 안이다. 불공정거래의 주된 유인이 경제적 이익 추구인 만큼 불법 이익을 박탈하겠다는 금융위의 뜻이 담겼다. 그간 불공정거래에 대한 과징금 제도가 없어 법상 부당이득 산정 기준도 없었다. 금융위는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빼는 방법으로 부당이득액 산정방식을 법률에 명시했다. 이를 산정하기 어려울 땐 50억원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 美 사례 보고 대책 마련…숨은 공신, 금감원

이번 SG 사태에 피해가 여기서 그친 것은 금융감독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2021년 빌 황이 이끌던 미국 헤지펀드 운용사 아케고스캐피탈은 총수익스와프(TRS)로 레버리지 투자를 하다가 이틀 만에 200억달러(약 26조원)의 손실을 냈다. 이에 금감원은 레버리지 투자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CFD 계좌의 레버리지 비율을 기존 10배에서 2.5배로 축소했다. 이때 금감원의 조치가 없었더라면, 이번 SG 사태의 손해액은 더 커질 수 있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모습./뉴스1

이번에 문제가 된 CFD는 가진 돈보다 수 배 이상 투자할 수 있는 상품으로, 1억원을 갖고 있다면 CFD 계좌로 최대 2억5000만원어치의 주식을 살 수 있다. 일종의 빚투(빚내서 투자)다. 예를 들어 4억원으로 CFD를 통해 10억원어치의 주식을 샀지만 주가가 연일 하한가를 찍어 70% 하락한다면, 원금 4억원은 물론 투자자는 나머지 3억원을 증권사에 갚아야 한다. 즉 원금보다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손실은 레버리지가 커질수록 늘어난다. 2.5배 레버리지로도 CFD 투자자 소송 대리 법무법인 대건 추산 손해액은 1조원이다. 기존처럼 10배 레버리지였을 경우 더 큰 파장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1억원으로 10억원을 샀다면, 70% 손실이 났을 때 손해액은 원금 1억원에다가 빚 6억원에 달한다.

이번 사건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볼 건 금감원의 사후 대처다. 투자자들이 주가 조작 일당에 핸드폰과 신분증을 넘겼으나 CFD 계좌 개설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금감원으로서는 증권사가 CFD 계좌 개설 과정에서 본인 확인이 적절했는지 들여다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지난 3일부터 키움증권 CFD 검사에 착수했다.

투자자들은 증권사도 일부 과실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건은 금융위에 제출한 진정서에서 “CFD 계좌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채무를 부담할 수 있다는 내용이 피해자에게 고지 및 설명됐는지 분명하지 않다”며 “증권사에 일부 책임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의 과실이 확인될 경우 금감원이 배상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례에서 금감원의 결론이 2년 걸렸음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도 과실 입증 과정에서 책임 소재 공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공은 사법부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CFD 투자자 60여명이 라 대표와 키움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과 금감원의 의견이 배치되면 (집행에) 곤란하다”며 “금감원은 대법원판결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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