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이 마음에 당신이 왔으므로, 나는 미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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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타인'과 '죽음'은 유사하다.
<나주에 대하여> 는 이 두 낯선 괴물, 우리 안에서 우리를 흔드는 타인과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다. 나주에>
나와 너무나 다른 타인을 향한 마음, 그 타인의 내면에 가 닿지 못해 느끼는 절망,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없이 손을 뻗고야 마는 미련함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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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l 문학동네(2022)
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타인’과 ‘죽음’은 유사하다. 타인은 만날수록 정체가 묘연해지고, 죽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 몸에 심겨 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영원히 낯선 이 두 존재 앞에서 우리는 매혹당하고, 압도당하고, 두려움에 떤다. 건조한 표정으로 사무를 보는 회사원의 마음에도, 호통을 치는 상사의 내면에도, 슬픔 같은 건 꿈에서도 모를 것처럼 보이는 화사한 아이돌의 뇌리에도, 이 두 존재는 언제나 들어앉아 영향력을 행사한다. ‘의식’이라는 지층 밑에 도사리고 있는 이 거대한 존재들이 균열을 일으킬 때, 우리네 일상은 위태롭게 흔들린다. 이런 메커니즘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이란 ‘타인’과 ‘죽음’이라는 영원한 물음표와 처절히 싸우다 전사하는 한 편의 드라마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주에 대하여>는 이 두 낯선 괴물, 우리 안에서 우리를 흔드는 타인과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소설이 매우 엄숙한 외관을 갖추고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가 ‘너’에게 말하는 2인칭 서사 방식을 취하는 이 이야기는 속삭이듯 부드럽게 시작한다. “너를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은 어리다, 였다”라는 다정한 문장으로 시작한 소설은 ‘나’의 눈으로 ‘너’의 겉모습과 습관, 그에서 유추할 수 있는 심리상태를 촘촘하게 그려나간다.
화자인 ‘나’와 ‘너’는 회사 동료이다. 소설의 초반, 화자의 ‘너’를 향한 시선에는 집요함과 애정, 호기심과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다. 아직 둘의 관계를 모르는 상태였기에, 소설이 ‘회사 동료’라는 딱딱하고 이해타산적인 관계에서도 기어이 피어나고야 마는 인간 간의 연대감을 그렸으리라 생각했다. 책장을 몇장 더 넘겼을 때, 약간의 파동과 함께, 이야기의 초점이 완전히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화자의 시선이 머무는 ‘너’라는 사람은 단순한 회사 동료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와 ‘너’의 특수한 관계성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소설은 긴장감을 조성하기 시작한다. 특정한 사건 때문에 형성되는 것이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에서 펼쳐지는 심리적 긴장감이다.
책장을 조금 더 넘기면 또 한 번의 파동이 온다. 이전의 것보다 더 센 강도의, ‘반전’이라 칭할 수 있을 두 번째 파동에 몸을 맡기다 보면, 독자는 알게 된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시종일관 ‘너’를 향하는 화자의 시선이 진정으로 머무는 곳이 어디였는지를.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힘,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와 너무나 다른 타인을 향한 마음, 그 타인의 내면에 가 닿지 못해 느끼는 절망,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없이 손을 뻗고야 마는 미련함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온 타인들의 총합이며, 가까운 미래에 누군가의 일부가 될 진행형 조각들이다. <나주에 대하여>는 일순간 영혼을 나누어 가졌던 타인을 잊지 못하는 한 사람이 제 안에 자리 잡은 조각의 기원을 찾아가는 간절한 염원의 서사다. 화자의 마음이 마치 볼에 와 닿은 것처럼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이 생생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나’이면서 동시에 ‘타인’인 우리 모두를 연민하고 감싸 안는 일이다.
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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