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여경 무용론? “사건 앞에서 싸울 틈 없었다”

조해영 2023. 5. 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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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엔 이유가 없지만 선택엔 이유가 있다.

'여경의 전설' 박미옥이 형사가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형사 박미옥> 은 경찰을 성별로 구분 짓는 세간의 시선을 반박한다.

박미옥 역시 자신이 형사 일을 "감성으로 했다"고 자평하지만 그것이 단지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가졌던 미덕이 아니라는 것을, 책장을 덮을 쯤에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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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박미옥

박미옥 지음 l 이야기장수 l 1만6800원

<한겨레> 자료사진

운명엔 이유가 없지만 선택엔 이유가 있다. ‘여경의 전설’ 박미옥이 형사가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여자형사기동대 지원자를 받던 1991년 “이게 성공하겠냐?”는 상사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치려다 덜컥 지원했고 “일방적 발령”을 받아 서울 강남경찰서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이 됐다.

운명엔 이유가 없었지만 예기치 못한 운명 앞에 선 그의 언행엔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내내 ‘최초의 여성’ 타이틀을 경신했던 경험은 여자 강력계장이 “얼굴 마담”이냐는 무례한 질문에 “여성 비하 발언으로 알아듣겠다”는 답변이 되어 나왔다. 뜻하지 않은 강제 발령을 마주했을 땐 “조직이 부를 땐 못 이기는 척 가기도 하는 것”이라는 선배의 조언이 이유가 됐다.

<형사 박미옥>은 경찰을 성별로 구분 짓는 세간의 시선을 반박한다. 남경조차 여경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사건 앞에서 우리끼리 계속 싸울 틈은 없었다”는 일념으로 달렸던 그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은 성별이나 개인의 역량만으로 좌지우지될 정도로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 번 접하기도 어려운 사건들을 접하면서도 겸허와 진심을 잃지 않은 점이 눈에 띈다. 착한 사람이고 싶어 경찰이 됐다는 초심은 꺾이지 않았고 박미옥은 “점점 더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고 고백한다.

흔히 ‘남초’ 업계에서 살아남은 여성의 강점으로 ‘부드러운 리더십’을 꼽곤 한다. 박미옥 역시 자신이 형사 일을 “감성으로 했다”고 자평하지만 그것이 단지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가졌던 미덕이 아니라는 것을, 책장을 덮을 쯤에 알게 될 것이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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