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인간이 만든 암컷의 모습 따위…실제론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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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슴의 뿔이나 공작의 꼬리 등 얼핏 생존에 불필요해 보이는 형질들을 관찰한 다윈은 '자연선택'과는 다른 진화의 메커니즘이 있다고 보고, 이를 '성선택'이라고 불렀다.
동물학을 공부한 영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루시 쿡은 <암컷들> 에서 "진화에 대한 가부장적 관점을 새로이 쓰고 암컷을 재정의하는 동물과 분투하는 과학자들을 만나기 위해 전 세계를 모험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가르는 것은 인간이 문화적 관점을 자연에 투사한 것일 뿐, 자연의 실체는 그러한 이분법과 거리가 멀다. 암컷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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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들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l 웅진지식하우스 l 2만2000원
수사슴의 뿔이나 공작의 꼬리 등 얼핏 생존에 불필요해 보이는 형질들을 관찰한 다윈은 ‘자연선택’과는 다른 진화의 메커니즘이 있다고 보고, 이를 ‘성선택’이라고 불렀다. 생존과는 다른, 짝을 찾기 위한 투쟁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편견, 곧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한다는 관념이 짙게 반영되었고, 그 뒤 생물학 역시 오랫동안 확증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컷은 되도록 많은 씨를 멀리 뿌려야 하므로 능동적이고, 난자 하나를 품은 암컷은 수동적으로 이를 따르기만 한다는 고정관념이다.
동물학을 공부한 영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루시 쿡은 <암컷들>에서 “진화에 대한 가부장적 관점을 새로이 쓰고 암컷을 재정의하는 동물과 분투하는 과학자들을 만나기 위해 전 세계를 모험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가르는 것은 인간이 문화적 관점을 자연에 투사한 것일 뿐, 자연의 실체는 그러한 이분법과 거리가 멀다. 지은이는 여러 학자들이 이끈 진화생물학의 최신 성과들을 찾아다니며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암컷들의 모습, 곧 고정관념을 배반하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동물들의 세계를 드러내 보인다.
고정관념은 수동적인 암컷이 하나의 배우자만 따른다고 봤지만, 이제는 “암새의 90퍼센트가 일상적으로 다수의 수컷과 교미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디엔에이(DNA) 지문 분석 등이 활용되면서 거의 대부분의 동물종에서 암컷의 성적 방종과 ‘일처다부’의 경향이 확인되었다. 생물학자들은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 수컷의 생식기가 얼마나 창의적으로 발달해왔는지에 주로 관심을 가졌지만, 암컷의 생식기 역시 다양한 목적을 위해 창의적으로 진화해왔다. 암오리의 질은 원치 않는 수컷의 음경을 차단하는 등 스스로 친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암컷의 오르가슴 역시 양질의 수컷을 선택하는 능동적인 도구일 가능성이 크다.
토피영양 암컷들은 수컷과의 섹스를 위해 서로 치고받는 싸움을 벌인다. 마다가스카르 여우원숭이 사회는 주로 암컷이 명령을 내리고 지배한다. 인간처럼 자연적으로 완경에 이르는 범고래 암컷은 가장 나이 많은 리더로서 무리 전체를 이끈다. 앨버트로스는 암컷끼리 커플이 되어 새끼를 키운다. 흰동가리는 필요에 따라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 변환을 한다…. 이처럼 수많은 발견과 연구들은, 우리가 오랫동안 고정관념에 붙들려 성의 차이점만 보려 했을 뿐 본질적인 유사점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성은 한쪽 끝에 수컷이, 다른 한쪽 끝에 암컷이 있는 연속체”로, 과학은 연속체 위의 다양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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