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어떻게든 찾아온 ‘고귀하지 않은 계절’에

임인택 2023. 5. 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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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를 향해 처음으로 비판을 가하는 순문학이 아닐까 싶다.

작품에서 묘사된바 "한 계절이 가고" 맞닥뜨린 "참 고귀하지를 않"은 계절, 독자에게 권하는 안부이련가.

386 여성의 후일담이란 세평을 저어하지 않고 작품의 글감으로, 문학적 자세-'아는 것을 쓴다'-로 적극 삼아온 권여선(58) 작가의 새 소설집 <각각의 계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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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l 문학동네 l 1만5000원

윤석열 정부를 향해 처음으로 비판을 가하는 순문학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친필 메시지(‘독자 여러분에게’)를 곱씹어본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필요합니다.”

작품에서 묘사된바 “한 계절이 가고” 맞닥뜨린 “참 고귀하지를 않”은 계절, 독자에게 권하는 안부이련가.

386 여성의 후일담이란 세평을 저어하지 않고 작품의 글감으로, 문학적 자세-‘아는 것을 쓴다’-로 적극 삼아온 권여선(58) 작가의 새 소설집 <각각의 계절>이다.

‘각각의 계절’은 소설집 7편 중 가장 먼저 쓰인 ‘하늘 높이 아름답게’(2018)의 마지막 구절서 땄다.

약사 출신 상류층 베르타(세례명)는 같은 성당 중장년 여신도들의 말투, 행동거지가 못마땅하다. 자신은 유산과 두 아들 덕에 여생도 넉넉하다. 지난해 봄 겪은 남편의 죽음을 통해 “제법 철이 들고 너그러워졌다고”도 생각한다.

가족여행 뒤 또 성당에서 예의 여신도들에 둘러싸여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을 되뇌던 중, 마리아의 일흔두살 갑작스러운 부고를 전해 듣고 충격받는다. 여신도들의 공통된 추억대로 모두에게 헌신적이던 이. 다만 파독의 시절 탓인지 유일한 기쁨이라며 태극기를 팔러 다니던 마리아에게 어느 순간 자신이 드러낸 혐오 폭력은 베르타만 품은 기억.

201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발표된 단편 7편을 엮어 일곱번 째 소설집(<각각의 계절>)을 내놓은 권여선 작가. 사진 ⓒ정멜멜, 문학동네 제공

베르타는 부단히 재고 낮춰보는 사람이다. 그가 윤리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그런 윤리는 ‘확장’되지 않는다. 저급하고 위선 가득해 보이는 여신도들을 힐난하면서도 왜 자신이 계속 어울려왔는지가 새삼 당연해지면서 오싹해하는 까닭.

반면 절대적 도덕이 마리아로 대변되는 듯하다. 모두가 이용하기 바빴던 마리아가 사라짐으로써 결국 모두가 고귀할 수 없고, (상대적으로조차) 고귀할 필요도 없는 공평한 계절을 맞은 건가.

말미의 중층적 여운을 좀 더 직설로 이어간 작품이 가장 최근 쓰인 ‘사슴벌레식 문답’(2022)일 것이다. 1980년대 대학 동기 네 명이 주인공. 30년 관계는 완벽한 파국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변절한 경애와 피해자 부영, 꿈을 좇다 20년 전 자살한 정원,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에만 갇혀 있는 준희(‘나’) 모두에게 80년, 90년대보다 가혹한 시절. 교수 자리를 지키려고 무슨 법사를 만나고 무슨 포럼 패널로 나가고 그 나이에 치아교정도 하더란 경애는 설정치곤 꽤 풍자적이다.

“어떻게든 미안하지가 않”다는 상상 속 경애의 말은, 대학 때 함께 ‘허무개그’처럼 주고받았던 그들만의 ‘사슴벌레 문답’이 허무하리만큼 현실이 되었음을 확인시킨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어떻게든 이렇게 됐어.”

권여선이 찬미해온 ‘술과 안주’가 지금 그의 식탁에 있다면, 그저 해온 일일 뿐인데도 새삼 정치적으로 보일 것 같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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