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느림이 허락되는 그림책방

한겨레 2023. 5. 1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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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 감탄하던 손님이 진지해진 얼굴로 물었다.

이제 막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한 초보 책방지기! 어떻게 마음이 열렸는지 처음 뵙는 손님께 동네 책방의 생존 전략에 대해 고민을 터놓던 중이었다.

그것이 그림책이었고 책방이었으니 책방의 첫 번째 목적은 '돌아오는 것' 그것이 맞다.

그렇게 '그림책의 힘'을 알게 된 나는 엄마가 계시던 고향으로 돌아가 그림책방을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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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방은요]우리 책방은요 │ 굼벵책방

굼벵책방 내부 모습.

“이곳에 책방을 연 가장 큰 목적이 뭔가요?”

책방에 감탄하던 손님이 진지해진 얼굴로 물었다. 이제 막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한 초보 책방지기! 어떻게 마음이 열렸는지 처음 뵙는 손님께 동네 책방의 생존 전략에 대해 고민을 터놓던 중이었다. 책방지기의 하소연을 듣던 그분은 무언가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어지신 것 같았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요. 엄마가 계시던 곳으로 돌아오고 싶었어요.” 그날은 무슨 일인지 그렇게 말해 버렸다. 책방을 열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인데, 포장된 말로 멋진 척하며 대답하곤 했는데…. 나도 그제야 진짜 답을 찾은 것 같았다. 그분은 하려던 말씀을 멈추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그랬다. 내 책방의 시작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엄마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 이유가 필요했다. 그것이 그림책이었고 책방이었으니 책방의 첫 번째 목적은 ‘돌아오는 것’ 그것이 맞다.

2018년 엄마를 잃었다. 갑자기 찾아온 엄마의 부재는 마흔의 나를 아기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이 뒤집힌 것 같았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엄마를 잃은 슬픔을 말할 수는 없었다. 말하는 순간 그 슬픔이 가벼워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꺼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였다. 마흔의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은 척 살아갔다. 아직 돌보아야 할 아이들이 있었고, 엄마 없다고 울고만 있기엔 나는 이미 다 큰 어른이었으니까.

처음 그 슬픔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림책 덕분이었다. 그림책을 들고 모르는 사람들과 나누는 자리에서 엄마의 죽음에 대해 꺼내 놓을 수 있었다. 그들은 울었고 나는 담담했다. 계속해서 그 길을 걷던 어느 날 나도 그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림책의 힘’을 알게 된 나는 엄마가 계시던 고향으로 돌아가 그림책방을 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금’ 행복한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 그림책의 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쉼’을 찾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그림책’도 한 권쯤 찾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약점이던 ‘느림’은 책방의 컨셉이 되었고, 내 별명이었던 ‘굼벵’은 책방 이름이 되었다. ‘느림이 허락되는 곳, 굼벵책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0여년 간 그림책 ‘덕후’로 지낸 덕에 책방에는 3000여권의 그림책과 아트북, 그림책 관련 도서들이 가득하다. 부모님이 평생을 가꿔 오신 승마장 곁에 위치한 덕에 그림책만큼이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함께 누릴 수 있다. 그림책 속 그림들을 전시하고, 그림책 작가와 만나고, 그림책을 함께 공부하고, 그림책 속 각자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며 지난 일년을 지내왔다. 꿈꾸던 것들이 하나둘 현실이 되어 간다. 이제 다시, 앞으로의 굼벵책방을 상상해본다. 나를 위해 시작한 책방이 다른 이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책방은 내 삶의 목적이라기보다는 과정이었으니 이제 다시! 나의 이야기를 써 나간다. 오늘도 굼벵답게. 천천히 느리게라도.

연천/글·사진 김지연 굼벵책방 책방지기

굼벵책방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동막로109
instagram.com/goom_bang
굼벵책방 외부 모습.
굼벵책방에서 밖을 내다본 모습.
굼벵책방 내부 모습.
굼벵책방은 모두가 ‘인생 그림책’을 만나기를 기원한다.
굼벵책방 내부 복도.
굼벵책방에서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모습.
굼벵책방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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