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돌조각 하나를 집어 든 것이 시작이었다
구석기시대 돌과 뼈 유물 이야기
고인류의 한반도 유입경로 궁금
북한 지역 발굴과 연구 필요해
단단한 고고학
돌과 뼈로 읽는 인간의 역사
김상태 지음 l 사계절 l 1만6800원
도구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라는 학설은 물론 오래전에 파기되었다. 그러나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인간의 진화와 문명 발달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처음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은 언제이며, 그 도구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으로부터 3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사용한 석기 도구 ‘찍개’가 답이다. <단단한 고고학>을 낸 김상태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의 설명이다. 자갈돌 두 개를 몇 차례 부딪쳐서 날카로운 모양으로 만든 이 석기는 동물의 가죽을 찢고 고기를 잘라 내거나 뼈를 부수어 골수를 빼내는 데에 쓰였다. 나뭇가지를 자를 수도 있었고 동물을 사냥할 때에는 맹수의 발톱이나 송곳니 역할을 대신했다. “인간이 맨손으로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찍개로 인해서 가능해졌다.”
<단단한 고고학>은 주로 돌과 뼈의 형태로 남아 있는 유물을 통해 구석기시대 인간 삶을 유추하고 복원해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300만 년 전부터 1만5000년 전까지에 걸치는 구석기시대 인류가 나무와 가죽 등 다른 재료들 역시 활용했겠지만, 재료의 속성상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단단한 돌과 뼈가 거의 대부분이다. 구석기시대를 다루는 고고학이 ‘단단한’ 까닭이다.
180만 년 전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는 새로운 석기인 ‘주먹도끼’를 발명했다. 송곳처럼 찍고 칼처럼 찌르는가 하면 가위처럼 자르기도 하고 망치처럼 부술 수도 있는 이 석기는 현대의 ‘맥가이버 칼’ 같은 만능 도구였다. 그런가 하면 주먹도끼는 “인간이 만든 물건 중 최초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데다, 크기에 상관없이 길이와 너비가 1대 0.7 정도로 일정한 비율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주먹도끼는 인류가 유클리드 기하학의 기본 원리를 최초로 인식한 사례로 평가되는가 하면, “예술성의 맹아로” 간주되기도 한다.
석기 제작에 가장 적합한 재료는 화산 활동의 결과물인 흑요석이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흑요석 석기가 보고된 유적은 50여개 소에 이르는데, 이는 모두 백두산 일대에서 형성되어 한반도 남방으로 이동해 온 것들이다. 한편 ‘슴베찌르개’는 한반도 중남부에서 처음 탄생해 바다 건너 일본 규슈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으로 퍼져 나간 석기 도구다. 슴베찌르개란 손잡이 혹은 자루와 연결할 수 있는 짧은 꼭지(슴베)가 달린 창끝을 가리키는데, “나무 자루에 슴베찌르개를 연결하는 순간 위력적인 사냥용 창으로 변신”한다. 요컨대 흑요석은 백두산에서 비롯되어 한반도 남해안까지 내려왔고, 슴베찌르개는 한반도 중남부에서 출현해 동쪽과 북쪽으로 확산되었다. 이 두 사례는 구석기시대 인류의 이동과 교류를 알 수 있는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 주제인데, 북한 지역의 조사와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와 함께, 고인류의 한반도 유입 경로를 파악하는 데에도 북한 지역 발굴과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호모 에렉투스는 나무로 창을 만들어 짐승을 사냥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창끝에 날카로운 돌을 장착하면 훨씬 더 위력적인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수십만 년이 지난 뒤 네안데르탈인 시대의 일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이 창으로 매머드를 비롯한 동물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공격했지만, 사냥 과정에서 다치는 일도 빈번했다. 이에 현생 인류는 ‘창던지개’를 발명함으로써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손에 직접 들고 찌르는 창보다 명중률은 낮지만 맨손으로 던질 때보다 훨씬 더 강하고 정확하게, 더 멀리까지 던질 수 있”었다. 그에 이어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5000년~1만 년 전에 활과 화살을 발명해 사냥과 전쟁에 사용했다. 이렇게 본다면 구석기시대는 약 300만 년 전부터 1만5000년 전까지에 걸치게 되어 “인간의 거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국 베이징의 저우커우뎬은 ‘베이징원인’이라 부르는 호모 에렉투스의 동굴 집이다. 약 70만 년 전부터 25만 년 전까지 무려 45만 년 동안 사람이 산 흔적이 있는데, 특히 지금까지 발견된 것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화덕 자리가 나왔다. 최초로 아프리카를 벗어난 인류인 호모 에렉투스가 또한 최초로 불을 사용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호모 에렉투스는 불 덕분에 아프리카보다 추운 지역을 개척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베이징원인을 비롯한 고인류 화석이 종종 발견되는 반면 한반도에서는 아직까지 고인류 화석이 확인되지 않았다. 뼈나 나무 같은 유기물이 땅속에서 오래 보존되려면 건조한 알칼리성 토양이어야 하는데 한반도의 토양은 대체로 습도가 높은 산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모 에렉투스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주먹도끼가 한반도에서 여럿 나왔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다고 추정한다. 한편 일본 열도에 인류가 처음 들어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만 년 전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일본의 한 고고학자는 자국 내에서 수십만 년 된 유적을 날조해서 교과서에까지 실리게 했다가 사기 행각이 들통나는 바람에 국제적인 망신을 사기도 했다. 2000년 10월의 일이었다.
<단단한 고고학>에는 이밖에도 고고학 유물의 연대 측정 방법, 고인류처럼 실제로 돌을 깨서 석기를 만들어 보는 실험고고학, 자연 상태의 깨진 돌과 고인류가 일부러 깬 석기를 구분하는 방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고고학 연구에 다양한 자연과학 분야의 도움이 필요하다든가, 풍수의 기원이 구석기시대에 닿는다는 등의 흥미로운 사실도 알려준다. ‘~습니다’ 체로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서술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구석기 인류의 실제 삶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상상을 유도하는 데다, 한반도의 유적을 곁들여 설명하기 때문에 구석기시대의 역사적 사실이 한결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수백만 년 전, 자연계의 나약한 종 중 하나였던 인간이 돌조각 하나를 집어 든 것이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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