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아리스토텔레스의 광활한 세계로 가는 문
아리스토텔레스 저작 선집
논리학‧자연학‧형이상학‧실천철학
핵심 대목 발췌로 한눈에 조망
아리스토텔레스 선집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조대호‧유재민‧김재홍‧임성진‧김헌 옮김 l 길 l 6만원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플라톤과 함께 서양 철학의 두 기둥을 이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분야는 하도 넓어서 인간과 자연과 우주를 포함해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선집>은 현전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집 가운데 주요한 부분을 발췌해 번역한 책이다. 조대호 연세대 교수를 비롯해 아리스토텔레스 전문가 다섯 사람이 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발췌 번역이라고는 해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둘러싼 핵심 논점이 된 대목들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어 이 선집만으로도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광활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다. 형이상학자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논리학자‧자연철학자‧실천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두루 만날 기회를 준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자주 스승 플라톤 철학과 비교된다. ‘보이지 않는 이데아 세계’를 탐구한 스승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를 깊이 탐사했다.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두 사상이 마주섬으로써 서양 철학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전진할 수 있었다. 특히 현실 세계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후대 자연과학의 발흥에 결정적인 동력을 마련해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이런 현실주의 특성은 가계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모는 모두 의사 집안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당대 신흥 강국 마케도니아의 궁정 의사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탐구 기질은 의사로서 인체를 돌보고 질병을 치료한 아버지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7살 때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들어간 아리스토텔레스는 젊은 나이에 ‘아카데미아의 지성’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벌써 플라톤의 생각에 반대했고 스승의 이데아론을 ‘매미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평생 115가지 주제에 관해 550권의 저작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저작들은 외부용 저작(exoterikoi)과 내부용 저작(esoterikoi)으로 나뉜다. 출판을 목적으로 한 외부용 저작은 “황금이 흐르는 것 같은”(키케로) 유려한 문체로 쓴 글들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거의 모두 소실됐다. 현전하는 저작은 소수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용인데, 강의의 자료로 쓴 것들이어서 문체가 아주 건조하다. 더구나 논의가 응축돼 있는 데다 내용이 모호하거나 상충하는 곳도 있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 때문에 몇몇 대목은 후대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를테면 <영혼론>에서 이야기하는 인간 영혼 속의 ‘지성’(nous)이 천상의 신과 동일한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 고대 이래 무수한 논쟁이 벌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드넓은 학문 영역을 탐사할 때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구절이 <형이상학>의 제1권 제1장에 나온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라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특별한 이유나 목적이 없이도 무언가를 보고 아는 즐거움에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드는데, 여기서 앎의 욕구가 본성적인 것임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앎 가운데서도 사물이나 사태의 원인과 원리를 아는 앎이 지혜(소피아, sophia)에 가까운 앎이다. 이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놀라워함(타우마제인, thaumazein)에서 ‘지혜에 대한 사랑’ 곧 철학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보고 놀라워함은 ‘의문에 사로잡힘’으로 이어지고 그 의문을 해결하려는 집요한 노력을 거쳐 참다운 앎에 이른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놀라워함’은 천체와 우주 같은 드높고 웅장한 것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겉보기에 추하고 하찮은 것들에서도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부분론> 제1권 제5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보기에 징그러운 동물들에 대한 연구에서조차 그런 동물들을 만들어낸 자연은 그 원인들을 알아내고 본성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 우리는 덜 가치 있는 동물들을 연구하는 데 대한 유아적인 혐오증을 떨쳐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사물들 속에는 무언가 놀라운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태도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온갖 종류의 생물을 연구했고, 그 결과는 저작집의 3분의 1에 이르는 생물학 저술로 남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철학에 대한 사유가 가장 밀도 높게 집결된 곳은 <자연학>(physika)과 <형이상학>(metaphysika)이다. <자연학>은 자연 세계의 변화와 운동의 원리를 설명하는 저작인데 오늘날로 치면 물리학에 해당한다. 후대의 학자들이 증언하는 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저작이 없었다면 갈릴레이의 물리학은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저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앞 시대 자연철학자들의 논의를 비판한 뒤 자연의 운동 원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제8권에 등장하는 ‘부동의 원동자’에 대한 논의다. 여기서 천체의 회전운동을 일으키는 최초의 운동자 곧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영원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펼쳐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부동의 원동자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데, 그 원동자의 정체를 명명하는 곳이 <형이상학>이다.
<형이상학> 제12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이 응집된 저술인데,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최초의 운동자를 가리켜 ‘신’이라고 부른다. 모든 운동의 중심에 있으면서 그 운동을 일으키는 이 신은 움직이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자다. 그렇다면 이 부동자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이 ‘욕구의 대상’이자 ‘사유의 대상’이기에 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을 사례로 들어보면, 어떤 대상을 향한 사랑의 욕구가 생길 때 인간은 그 대상을 생각하며 그 대상을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신은 ‘가장 사랑받을 만한 존재’이므로 천체가 그 신을 향해 움직이게 되고 그 움직임은 천구의 구조상 원운동으로 나타난다. 천체의 운동을 일으키는 그 ‘신’이 근대 과학 시대에 들어와 ‘힘’(중력)으로 대체됐음을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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