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대신 붓으로 일군 삶 조선 후기 ‘ 진경’을 읽다

김여진 2023. 5. 1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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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루 표면의 꺼끌꺼끌한 것을 '봉망'이라고 부른다.

홍천 출신 최삼경 소설가의 첫 장편소설 '붓, 한 자루의 생'의 원톱 주인공은 18세기 조선시대 화가 '최북'이다.

만주와 금강산, 일본 등을 누비며 순탄치 않은 생의 봉망을 만들어 온 최북의 이야기가 '조선의 반 고흐, 칠칠이 최북 외전'이라는 부제 아래 펼쳐진다.

소설은 '벼루나 좋은 붓 하나만 구경하면 며칠이 즐거운 사람들'이 끌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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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출신 최삼경 첫 장편소설
영·정조시대 화가 최북 일대기
예인 대하는 시대 상황 등 묘사
금강산유람기로 예술철학 풀어
▲ 스스로 눈을 찌른 화가 최북 초상화

벼루 표면의 꺼끌꺼끌한 것을 ‘봉망’이라고 부른다. 그곳에 먹이 어떻게 갈리느냐에 따라 좋은 벼루와 먹물의 여부가 정해진다고 한다.

홍천 출신 최삼경 소설가의 첫 장편소설 ‘붓, 한 자루의 생’의 원톱 주인공은 18세기 조선시대 화가 ‘최북’이다. 만주와 금강산, 일본 등을 누비며 순탄치 않은 생의 봉망을 만들어 온 최북의 이야기가 ‘조선의 반 고흐, 칠칠이 최북 외전’이라는 부제 아래 펼쳐진다. 그가 남긴 그림 작품과 일화, 동료들이 쓴 문집 속 기록들을 재구성하고 상상력을 더했다.

소설은 ‘벼루나 좋은 붓 하나만 구경하면 며칠이 즐거운 사람들’이 끌고 나간다. 문화와 물자가 넘쳐나기 시작했지만 백성들은 붕당정치의 권력 다툼 속에 오히려 고통받았던 영·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예인과 하층민의 삶이 드라마처럼 그려진다.

최북은 남들 다 그리는 대나무나 산수 대신 메추라기와 게를 그려 차석으로 도화서에 들어갔다. 하지만 양반들이 ‘쳐 놓은 덫’을 피해 살면서 그들 입맛대로 그려줘야 하고, 그림을 못 팔면 굶어야 하는 곤궁한 삶을 살았다. 무력감 속에 고주망태가 되기도 하고, 시대상황을 한탄하는 시만 연달아 되뇌이기도 한다.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르면서까지 저항해야 했던 신분제 시대의 상황이 캐릭터를 처절하게 만들고 있다. 신발을 만드는 ‘갖바치’인 장인어른 ‘란이 아비’, 종이를 만드는 이희용 같은 주변 인물들을 통해 팍팍했던 당시 민초들의 생활상, 장인·예인에 대한 박한 대우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 작품 ‘토도(兎圖)-가을 토끼, 조를 탐하다’


3개월간의 금강산 유람기는 기행문처럼 펼쳐진다. 석양이 아름다운 춘천 고산과 신북장, 양구 두타연 등을 거쳐 당도한 금강산에서 최북과 일행은 풍광에 압도된다. 그리고 잠에 들지 못한채 ‘진(眞)’이라는 글자, ‘진경’의 의미를 떠올리는 대목은 예인으로서의 태생적 고민을 회화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소설 속 최북은 금강산에서 진경의 실체를 깨닫는다. 바람 한점, 안개 한 줌, 물방울 하나가 명징하고 부드럽게 다가온다고 했다. 자유, 새로움, 충만함이 곧 진경산수임을 알게된 그는 “내가 붓이 되고 내가 그림이 되는 경지”라는 생각으로 구룡연에 뛰어들기도 한다. 활달하고 자유자재한 ‘물’에는 그를 옭아맸던 제도도, 법도도 없기 때문이다.

최북은 이 여행에서 ‘금강산도’와 비로봉을 배경으로 한 ‘표훈사도’ 등을 그렸다. 소설은 최북의 산수화에 대해 “기성 관념이나 필법에 구애받지 않고 산천을 오로지 자신의 정서적 체험을 바탕으로 직설적이면서 우아한 필치로 그려냈다”고 설명했다.

먹 가는 즐거움을 ‘하염없는 소모’와 ‘휘황한 허무’라며 즐겼던 소년이 자신의 눈을 찌르고, 술에 절어 삐뚤삐뚤 걸을 때까지… 18세기 조선은 누구를 위해 그토록 왁자지껄했을까.

작가는 “생활보다는 낭만이 우선이었던 사내, 조선이라는 사회가 이런 기질을 가진 족속에 대해 어떤 안전장치를 마련했을리 만무하나 정작 최북은 믿을 수 없을만큼 긍정적이고 유쾌했다”고 묘사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에는 최북 같은 기질의 사람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생긴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김여진 beatl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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