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기자 차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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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8월 일본인 형사들이 개벽사(開闢社)로 들이닥쳤다.
일본 경찰은 인쇄된 잡지를 모두 수거해 수레에 싣고 종로경찰서 뒷마당으로 갔다.
일제강점기 발행된 월간 잡지 '개벽'은 일제에 대한 항쟁을 기본 노선으로 삼았고, 투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평등주의에 입각한 사회개조와 민족문화의 창달을 표방했다.
개벽사 내의 잡지인 '어린이' '별건곤' '신여성'을 포함해 당대의 거의 모든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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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8월 일본인 형사들이 개벽사(開闢社)로 들이닥쳤다. 일본 경찰은 인쇄된 잡지를 모두 수거해 수레에 싣고 종로경찰서 뒷마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작두로 잡지를 썰어서 폐지로 내다 버렸다. ‘개벽’지의 슬픈 종말이었다. 일제강점기 발행된 월간 잡지 ‘개벽’은 일제에 대한 항쟁을 기본 노선으로 삼았고, 투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평등주의에 입각한 사회개조와 민족문화의 창달을 표방했다. 이 때문에 창간호에서부터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1920년 6월 25일에 발행된 창간호가 일제 총독의 비위에 거슬린다고 하여 압수되는 등 모진 시련을 겪어야 했다. 발행 기간에 발매금지(압수) 34회, 정간 1회, 벌금 1회의 수난을 당하고, 1926년 8월 1일에 발행된 72호를 끝으로 강제 폐간됐다. 이후 여러 차례 복간을 시도했으나 어려운 시대적 여건 때문에 1949년 3월 25일 통권 9호를 끝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개벽지는 폐간됐지만 문학사에 남긴 족적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잡지는 신 문화운동의 구심점이었으며, 당대 유명 문학인들을 배출하는 등용문 역할을 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도 모두 개벽을 통해 발표된 작품이다.
개벽지의 사상과 역사를 설명하는데 춘천 출신 청오 차상찬(1887∼1946년)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개벽 창간 동인 중 한 명으로, 초기부터 편집국장을 맡았다. 매서운 필치로 당대 저명 인사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세태를 기사화했고, 항일 사상을 고취했다. 개벽사 내의 잡지인 ‘어린이’ ‘별건곤’ ‘신여성’을 포함해 당대의 거의 모든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쳤다.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매체에 글을 게재하면서, 71개의 이름을 사용한 국내 최다 필명 보유자로 손꼽히고 있다. 오늘 차상찬의 고향인 춘천에서 그의 사상과 활동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특히 개벽사 내 ‘어린이’ 창간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각도에서 선생의 글과 생각을 되새긴다. 고난의 세월 속에서 언론의 지평을 개척한 한 저널리스트의 삶을 여행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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