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핫플] 돌탑을 쌓듯 한걸음 한걸음…마음을 놓는 데 왕도는 없으니

지유리 2023. 5. 1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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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핫플] (19) 전남 영광 백제불교최초도래지
마라난타가 불법 전한 법성포 근처 위치
간다라문화 깃든 다양한 건축물 눈길
국내최대 석불 ‘사면대불상’ 앞서 ‘경건’
0.9.142백제불교최초도래지를 내려다보는 사면대불상의 모습이 장엄하다. 부처의 고행에 비할 바는 아닐지라도 불상을 향해 계단을 오르며 짧게나마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 영광=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27일 토요일이다. 쉬는 날이 하루 준 것 같아 아쉬웠는데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정부가 ‘공휴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29일 월요일을 대체공휴일로 지정했단다. 때마침 사회적 거리두기는 해제됐고 신록은 푸르니, 부처님 덕에 생긴 휴일을 그저 집에서만 보내기 아깝다.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 전통문화로서 불교 명소 등을 둘러보며 휴일을 보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성인이 불법을 전한 포구, 법성포(法聖浦)=백제는 육로가 아닌 해로(海路)로 불교를 맞았고 불법을 처음 전한 이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등장했는지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쓰인 역사서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승려의 전기인 <해동고승전>에는 384년 백제 침류왕 때 지금의 전남 영광군 법성포에 인도 고승 마라난타가 배를 타고 와 불법을 설파했다고 적혀 있다. 당시 영광지역에선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했고 사신도 교류했는데, 중국에서 머물던 마라난타가 이 물길을 따라 한반도에 첫발을 디뎠다는 것이다. 그가 실크로드를 걷고 험한 바닷길까지 헤쳐 이역만리에 부처님 말씀을 전한 덕에 백제의 웅숭깊은 불교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법성포’란 이름엔 이러한 역사가 숨어 있다. ‘성인(聖人)이 불법(佛法)을 전한 포구’라는 뜻이다. 그보다 더 오랜 지명 역시 불교와 연이 깊다. 이곳 사람들은 예부터 법성포를 ‘아무포(阿無浦)’라 불렀는데 대승불교에서 부처를 뜻하는 ‘아미타불’을 가리키는 말이다.

2006년 문을 연 영광군 법성면 ‘백제불교최초도래지’(이하 도래지)는 불교 역사를 기리고자 조성한 곳이다. 1만4000여㎡(4230여평) 규모의 터에 석상·누각·유물관 등을 지었다. 잘 정비된 광장을 품고 있으며 주변엔 산책로도 갖춰 공원에 온 듯 여유를 즐기기에도 적당하다. 여기서 활동하는 심금자 문화해설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의 뿌리를 보여주는 곳이자 지역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도래지엔 입장료가 따로 없다. 1년 365일 문이 개방돼 누구나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외국에 온 듯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탑. 간다라 양식을 재현했다.

◆간다라문화 깃든 이색 명소=‘사찰’ 하면 떠오르는 장면 하나. 기와를 인 한옥이 있는 고색창연한 풍경이다. 도래지는 이러한 기대를 크게 벗어난다. 출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나라에 온 듯한 감상에 빠지기 충분하다. 주황빛 벽돌로 치장한 출입문은 하늘로 치솟은 듯 높고 꼭대기엔 기와 대신 동글납작한 장식이 얹어졌다.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구는 뾰족한 첨두아치 모양이다. 이뿐일까. 근처 전시관과 기념품 가게 모두 낯선 외관을 뽐낸다. 이는 대승불교 문화가 시작한 간다라지역의 건축양식이다. 간다라는 현재 파키스탄과 인도 서북부 일대로 불교미술이 크게 발전한 지역이자 마라난타가 태어난 곳이다.

도래지는 법성포 역사를 기억하고자 간다라 양식을 적극 도입했다. 대표적인 것이 탑이다. 간다라 사원 가운데 하나인 ‘탁트히바히 사원’을 그대로 본떴다. 중앙에 불탑이 있고 주위에 스무개가 넘는 불상을 빙 둘러 세웠다. 생경한 외관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은 여기저기 멋대로 쌓아 올린 돌멩이 더미다. 아마도 이곳을 둘러보던 관광객들이 무언가를 빌며 기도하듯 쌓은 것일 터. 발 근처에서 돌멩이 하나를 골라 주워 더미 위에 조심스레 올린다. 마음속으로 남은 한해 건강하길 빌며 탑 주변을 걷는다.

간다라미술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면 간다라 유물관에 들르자. 간다라지역에서 출토된 불상 등이 전시돼 있다. 유물관엔 문화해설사도 상주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해외여행 온 기분으로 이국적인 건축물을 둘러보며 들뜬 마음은 사면대불상 앞에 서면 눈 녹듯 사라진다. 언덕 위에 설치된 높이 23.7m의 거대한 석상이 주는 웅장함에 압도돼 괜스레 자세를 정비하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부처와 마라난타 그리고 불교에 등장하는 관음·세지 보살이 사방에 새겨진 거대한 불상은 이전까지 국내 최대 석불로 알려진 충남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18.1m)보다도 5m 이상 크다. 도래지를 굽어보는 듯한 돌부처 얼굴에 띤 미소가 은은하다.

종교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도래지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둘러볼 만한 공원이다. 바다를 향해 조성된 덱·정자는 영광에서도 손꼽히는 전망대다. 법성포 앞바다와 영광대교가 한눈에 담긴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경치를 보여준다. 다만 서해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만큼 물때를 고려해서 방문 시간을 정해야 한다.

도래지는 수령 100년이 넘는 느티나무와 다채로운 초화 등 볼거리가 많은 ‘숲쟁이꽃동산’과 산책로로 연결돼 있다. 여유가 있다면 함께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숲쟁이꽃동산은 2006년 산림청으로부터 ‘한국의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도래지는 언덕배기에 조성됐는데 오르막을 걷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내비게이션에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승강기’를 검색해 이동한 후 승강기를 타고 사면대불상이 있는 언덕 정상에 도착한 후 내려가면서 관람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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