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현의 ‘옛 신문 속 강원도 읽기’] 51. 직책을 이용한 비리 사건
시대막론 공권력 횡포에 피눈물
일제강점기 도내 공직자 비리 행각 발각
공금 횡령·뇌물 수수·고문 등 민간인 피해
“독직사건 빈발, 매우 중대히 취급” 보도
가난한 형편 ‘동생 학자금 마련’ 이유부터
일본인 직원 ‘노동자 임금 편취’ 사건까지
강릉지역 발전사업 이권 결탁 세력 제기
허가 반대 강력 대응 군민대회 개최도
직위와 직책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 ‘더럽힐 독’자를 써서 ‘독직 사건’이라는 표현을 주로 썼다. 일제강점기 공무원과 여러 공공기관의 임직원은 제국일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정사슬 안에 있었고, 종종 비리 행각이 들통나 기사화됐다.
1927년 2월 14일자 중외일보에 ‘양양군 회계 일천여원 횡령, 잡혀 검사국에 갔다’는 기사가 실렸다. 양양군청 직원 이두호는 회계 사무를 맡아보는 것을 기회로 1927년 4월부터 12월 20일까지 회계계에 보관 중인 각 학교 수업료 700원, 토목비 200원, 기타 항목의 100원을 합해 모두 1000여원을 횡령 소비한 일이 발각돼 양양경찰서에서 엄중한 취조를 받고 2월 11일 원산지청 검사국으로 넘어간 사건을 보도했다.
1936년 8월 21일자 조선일보에 ‘농회 직원을 기화로 공금 수천원 횡령’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평창 대화면장 이창균은 평창군농회 직원으로 있을 때 여러 해에 걸쳐 공금 수 천원을 횡령했는데, 이 사실이 대화면장으로 영전한 후에 탄로나면서 검찰로 넘겨졌다. 농회 감독자까지 의심하게 돼 암암리에 수사를 진행하면서 뇌물을 받은 자들도 검거 선풍에 휩쓸리는 것 아닌가 하고 크게 주목된다고 전했다.
강릉에서는 공금 횡령 사건을 수사하다가 또 다른 건이 발각돼 여러 명이 체포된 일이 있었다. 1928년 1월 5일 매일신보에 ‘강릉면에 횡령사건, 공금을 횡령’ 기사가 나왔다. 강릉면사무소에서 공금 분실과 공금 횡령이 잇따라 발생하자 1927년 12월 28일 강릉경찰서에서 수사에 들어간 것. 강릉면사무소 서기 4명을 붙잡아 들여 조사하는 한편 집까지 수색한 결과 확증을 얻었음을 알렸다. 회계원 임시보조원 김연욱은 징수한 세금 330원을 강릉면사무소 서기 최모와 함께 술을 먹다가 징수세금 전액을 분실한 혐의로 경찰에 끌려갔다. 수사 도중 의외로 또 다른 직원의 횡령 범죄도 파악됐다. 강릉면사무소 서기 조장현은 공금 180원, 기수 최돈항은 그보다 3배 더 많은 500여원을 횡령 소비한 범죄가 추가로 드러난 것. 면장 최돈흥은 이런 범죄를 알고도 비밀에 부치고 변상을 독촉하는 중이었다는 것까지 드러나면서 세간에 비난이 이어졌다.
공금을 횡령해 대개 유흥으로 탕진했지만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양양군청 직원이 여동생 학자금 마련을 위해 공금에 손을 댔다는 기사가 1937년 11월 19일자 조선일보에 실렸다. ‘매제의 학자 염출코자 군속이 공금 소비 / 생계 유지 못해 궁여에 양양군청 모범군속의 범행’ 기사엔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보도됐는데 양양군청 직원이었다. 범인은 선린상업학교를 마치고 강원도지사 관사에 고용됐다가 성적이 좋아 1936년 봄 양양군청 공무원으로 승진 임명됐다고 한다. 공교롭게 부임한 그해는 영동권에서 커다란 풍수해를 일으킨 해였다. 1936년이 병자년이어서 ‘병자년 물난리’ 라고 지금도 전할 정도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발생시켰다. 큰 풍수재를 만나 가산이 전부 유실당하고 박봉으로 근근이 지내왔다고 한다. 오직 하나 있는 누이를 서울의 한 여자고등보통학교에 보내 공부하도록 학자금까지 지불하고 있는 형편이었다는데 일상적으로 봉급보다 생활비가 더 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생각다 못해 공금에서 이것저것 불법으로 내서 쓰다가 경찰에 탐지된 것. 여동생 학자금을 대기 위해 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져 지역사회에 동정 여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매우 악질적인 사례도 있다. 강원도청 토목 담당 일본인 직원이 건설현장에 파견 근무하면서 횡령한 사건이 1933년 12월 17일 매일신보에 ‘사방공사 주임이 공사비를 횡령’으로 보도됐다. 공사장 노동자들의 임금표를 위조해 사익을 챙겼고, 범행이 발각돼 검찰로 넘겨졌다. 당시 노동자 임금은 하루하루 지급됐는데 근무 일당표를 ‘삯 전표’로 불렀다. 강원도청 산업기수인 34세의 토사초는 토성면 사방공사 주임으로 있으면서 건설노동자들에게 지불할 임금 청구서와 노동자 출역 승낙서를 위조해 공사비 608원 12전을 횡령해 소비하다가 발각됐다. 지금은 고성군 행정구역이지만 당시는 양양군이어서 양양경찰서에서 붙잡아 엄중 수사한 뒤 검찰로 넘겼다고 알렸다.
현금을 다루는 금융기관 직원과 관련된 사건도 적지 않다. 금융기관 내부의 도덕적 해이는 곧바로 금융 사고로 이어져 고객이 피해를 볼 뿐만 아니라 제도금융에 대한 불신을 부르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사안이다. 1921년 정선군금융조합 서기가 횡령한 일이 발각됐다. 4월 21일자 매일신보에 ‘조합원을 무시한 금융조합 서기가 필경 법망에 걸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정선 봉양리의 20대 지영구는 정선군금융조합 서기로 있는 동안 조합원 여러 명을 속여 도장을 달라고 한 뒤 가짜 차용증을 만들어 거액의 돈을 챙겼다. 당시엔 보증인을 세워야 돈을 빌릴 수 있었기에 조합원 고성균과 김헌식 2명의 도장을 조합에 쓸 일이 있다며 핑계를 댄 뒤 차주와 보증인을 교차해 바꾸는 수법으로 가짜 차용증 2건을 작성해 갈취했다. 지씨는 조합원이 예금해달라고 맡긴 돈도 가로챘고, 정선군의 한 공공단체에서 맡긴 예금도 무려 27회에 걸쳐 거액을 빼내 착복한 사실도 발각돼 업무 횡령죄, 문서 위조죄, 사기죄 등 여러 죄목으로 춘천법원에서 선고 예정임을 알리고 있다.
통치조직의 말단 공무원이라도 민간과 직접 접촉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민간을 향한 횡포와 폭력은 더 직접적인 측면이 있다. 1936년 7월 1일자 조선중앙일보에 ‘낚시 절취했다고 유아를 결박 감금’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삼척근덕산저목소에 근무하는 직원이 10세와 12세 어린이를 밧줄로 목을 감은 뒤 손을 뒤로 묶어 차고에 감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낚싯바늘을 훔쳐 엿을 사 먹었다는 이유로 어린이 목을 밧줄로 졸라 호흡 곤란의 공포에 떨도록 만든 행각에 지역에서 분개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1922년 4월 18일 매일신보에 ‘내용이 너무도 추악한 독직과 증거 연멸사건’이 있었다고 알렸다. 달아났던 수인을 체포한 뒤 옷을 전부 벗기고 손을 뒤로 결박한 뒤에 건물 들보에 매달아 교도소장과 교도관 등이 무지막지하게 폭행을 가해 숨지게 한 뒤 의사와 공모해 가짜부검서를 만들어 덮으려 했다가 발각된 사건이었다.
양구경찰서의 김일용 등 경찰 2명은 벼를 훔친 사실을 자백하지 않는다며 해안면에 사는 김홍건을 경찰서로 끌고가 고문을 가해 30분 만에 절명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과 관련된 재판이 1927년 1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있었다고 중외일보 1월 30일자에 실렸다. 3월 2일자 매일신보도 이 사건을 전하면서 ‘이러한 독직사건이 빈발함으로 매우 중대히 취급하는 중이더라’라고 밝혀 공권력을 휘두르며 민간인에 피해를 준 범죄가 비일비재한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비리사건도 자잘한 행각만 사건화되고, 정작 막대한 이권을 챙기는 큰 비리는 감춰지고 있음을 엿보이게 하는 기사를 찾을 수 있다. 1925년 4월 22일자 조선일보에 ‘주문진 공유지 문제로 강릉인사 대분기’라는 기사가 실렸다. 4월 17일 강릉 중원여관에서 주문진번영회와 주문진축항기성회 회원 등이 자못 긴장한 가운데 장시간 회의가 열렸음을 알렸다. 주문진항 인근의 2만8000여평의 공유지는 지역 발전에 중요지인데, 서울서 사는 윤갑병 전 강원도지사가 노원하라는 업자를 강릉군청에 보내 그 공유지에 대한 허가원을 제출한 데 따른 대응책을 강구하기 위해 모였던 것. 강릉지역에서는 공유지에 대한 이권을 챙기는데 현직 강원도지사인 박영철이 개입돼 있음을 의심케하는 증거도 제시했다. 공유지 허가사업엔 노원하 외에 박영철 도지사의 동창생 정희창 등이 관련돼 있는데, 이들이 강릉군청에 제출한 지도가 일반에서는 소지하지 못하는 비매품 ‘해군 축척도’로 강원도청 비서과에서만 갖고 있어서 이권 결탁 가능성을 제기했다. 허가에 반대하는 진정서 제출 및 강릉군민대회 개최 등 강력한 대처에 나설 것임을 알리고 있다.
공적인 직책을 이용해 사익을 취한 범죄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막대한 이권을 챙기는 범죄는 공권력을 쥔 내부에 의해 더 쉽게 감춰지는 특성이 있음을 옛 신문기사는 여실히 알려준다. 개인 한명 한명이 위임한 공권력을 사적인 것으로 여겨 휘둘러 재물을 축적하는데도 눈감고 감싸주거나, 선택적 법치에 의해 징벌이 가해진다면 극성을 부리도록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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