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개선, 윤 대통령 개인의 의지에 의존하면 한계”[전문가 인터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올해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하면서 한일관계가 해빙 분위기를 맞았다. 한국 정부가 3월 도쿄 정상회담을 앞두고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징용) 소송 해법을 발표하는 등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선 데 대해 기시다 총리는 이달 7일 한국을 방문해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힘든 경험을 하신 것에 마음이 아프다”는 과거사 관련 개인 입장을 내는 것으로 호응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한국에선 기시다 총리 발언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은 가운데, 일본 전문가들에게 평가와 한일관계 전망을 들었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기무라 간 고베대 교수,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 오쿠노조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 등 4명이 9, 10일 전화인터뷰에 응했다.
전문가들은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보답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면서 "한일관계 개선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다만 윤 대통령의 의지와 한국 여론 사이에 격차가 있는 것은 변수로 지적됐다.
① 기시다의 ‘성의 있는 호응’ 평가는
기시다 총리는 사과와 반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미흡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 이해된다면서도 자민당 보수파를 신경 쓰는 기시다 총리로선 최선이었다고 평했다.
기미야 교수는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문재인 전 대통령 사이에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오쿠노조 교수는 “중의원 해산, 총선거 등 국내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보수파를 배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시다 총리가 자신의 지역구인 히로시마에 있는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를 윤 대통령에게 제안한 것은 다목적 카드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기무라 교수는 “원폭 피해는 한국과 일본이 모두 입은 것이어서 역사 문제와 관련해 양국이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이라고 말했다. 또 “원폭을 언급하면 일본도 침략국가가 아니라 평화국가를 지향하고 있음을 호소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 문제에서 ‘한국은 피해자, 일본은 가해자’란 틀을 깨려 했다는 것이다.
② 후쿠시마 원전 시찰단 파견의 의미
일본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일본명 ‘처리수’) 방류를 앞두고 한국 시찰단의 후쿠시마 파견을 수용했다. 니시노 교수는 "기시다 정부가 한국의 사정을 헤아려서 수용한 것"이라고 했다.
시찰의 실효성에 대해선 미온적 평가가 많았다. 기미야 교수는 “한국의 비판이나 불만에 대해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정”이라면서도 “일본 정부가 방류 결정을 뒤집는 일은 없을 테니 시찰단 파견은 상징적인 의미”라고 했다.
실제 일본 정부는 "시찰단은 오염수의 안전성 검증은 하지 않는다”며 '단순 시찰'이라고 못 박았다.
③ 강제동원 문제는 이 방안으로 해결될까
한국 정부가 일본 피고기업 대신 한국의 재단이 변제한다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지만, 일본 피고기업들은 무응답이어서 답보 상태다.
전문가들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해결은 어렵다”면서 여론 설득 등 한국 정부의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니시노 교수는 “재단 배상에 반대하는 피해자들을 윤석열 정부가 설득한다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기무라 교수는 “최종 해결을 위해선 한국의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내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여소야대 구도를 깰 수 있느냐가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 속도를 가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이 태도를 바꿀 가능성에 대해 오쿠노조 교수는 “한일관계가 지금보다 확실히 안정되면 자발적으로 재단에 기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간 기업의 자발적 기부에 대해서는 정부가 특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게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④ 경제·안보 분야 양국 협력 진전될까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안보·경제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특히 한국의 의지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일본 전문가들은 엄중한 국제 환경 등을 고려할 때 협력이 진전되겠지만,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온도 차가 난다고 지적했다.
기미야 교수는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 가능성도 거론되고 윤 대통령이 ‘한미 핵협의그룹(NCG)의 일본 참여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일본 정부는 바로 행동하기보단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국 국민들이 안보 협력이 빨라지는 것에 여전히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니시노 교수도 “안보 협력은 방위당국 사이에 좀더 신뢰가 회복된 후에야 실현될 것”이라며 “당장은 한미일 3국 협력을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경제 협력과 관련해서도 기무라 교수는 “한국이 협력하자고 이끌고 일본은 따라가는 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⑤ 앞으로의 한일관계 전망
전문가들은 한일관계 개선 흐름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윤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일찌감치 확인됐고, 기시다 총리도 윤 대통령의 노력에 보답하려는 뜻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미중 대립, 북한 도발 등 외부 변수로 관계 개선을 냉소하는 인식이 줄었다.
윤 대통령의 의지가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의 의지를 국민의 찬성 여론으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기미야 교수는 "한국의 보편적 인식에 비하면 한일관계에 대해 윤 대통령이 훨씬 앞서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의지를 가진 윤석열 정부에서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윤 대통령 개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일관계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기미야 교수는 “문재인 전 대통령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 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개인에게 너무 의존했다가 실패했다”며 “한국과 일본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는 든든한 한일 관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쿠노조 교수는 “진영논리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2030세대가 관계 개선의 이점을 느낄 수 있도록 경제 협력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서자 차별보다 질겼던 남녀 차별... '장남 제사 주재' 15년 만에 깨졌다
- "금연 부탁"에 커피잔 던진 남성들, 알고 보니 자영업자…재물손괴 입건
- 가면 10만 원, 안 가면 5만 원? 한국화 된 축하의 세계 축의금
- "맞지 않은 옷" 생방송 욕설 후 그룹 탈퇴한 아이돌
- "마중 나온 엄마 앞에서..." 수원 우회전 사고에 "사거리 횡단보도 위치 바꿔야"
- 탈출 작전에 투입된 우리 수송기는 왜 번번이 중국을 돌아서 날아왔나[문지방]
- 오재원, 박찬호 향해 "너무 싫다” 공개 저격
- 尹 "전 정부, 세계에 北 제재 풀어달라해서 군 골병 들었다"
- 유아인 측, 소환 조사 노쇼 논란에 밝힌 입장
- 달랑 '구형 탱크 1대' 동원… 푸틴의 열병식은 초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