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야기로 배우는 쉬운 경제]투표 순서와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콩도르세의 역설’
이철욱 광양고 교사 2023. 5. 12. 03:07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투표해도
유권자의 선호 제대로 반영 못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한 ‘케네스 애로’
“이상적 투표 방식은 실현 불가능”
유권자의 선호 제대로 반영 못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한 ‘케네스 애로’
“이상적 투표 방식은 실현 불가능”
왜 중화요리를 주문할 때 어려움을 느낄까요? 한식, 양식, 분식 등등 다른 음식 주문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묘한 고민의 포인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짜장면을 시키려 하면 채소와 해산물에 고춧가루가 어우러진 칼칼한 짬뽕 국물이 생각나고, 짬뽕으로 바꿔 시키려 하면 볶음밥 특유의 불향 가득한 풍미와 고슬고슬한 밥알의 식감이 떠오르고, 이제 볶음밥으로 결정하려 하니 돼지고기와 양파가 춘장과 함께 달달 볶아진 짜장면이 아른거립니다.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부족한 탓일까요? 메뉴판에 짬짜면, 볶짬면 등이 있는 걸 보면 저 같은 사람이 한둘은 아닌 것 같아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저처럼 중화요리 주문에 망설임이 많은 분들에게 약간의 변명거리를 제공해 드리려 합니다.
● 투표 순서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아닌데 ‘이행성’이라는 수학 또는 논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질문으로 시작해 보죠. A보다 B가 크고(A<B), B보다 C가 크다면(B<C), A와 C 중에 A가 클까요, C가 클까요? 너무 쉽죠. 정답은 C입니다. A가 1m인 막대기, B가 1.2m인 막대기인데 길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막대기 C를 B에 맞대어 보니 B보다 C가 10cm 깁니다. A와 C를 직접 맞대어 보지 않아도 우리는 C가 A보다 30cm 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갑이 을의 고등학교 후배이고, 병이 을의 고등학교 선배이면 당연히 갑은 병의 고등학교 후배인 겁니다. 단순하고 자명한 논리입니다. 이 경우에 ‘이행성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수학과 논리학의 세계에서는 진리에 가까운 논리가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들어오면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짜장면, 짬뽕, 볶음밥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 윤리적 맥락과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변수도 많고 예외도 많습니다.
오늘은 저처럼 중화요리 주문에 망설임이 많은 분들에게 약간의 변명거리를 제공해 드리려 합니다.
● 투표 순서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아닌데 ‘이행성’이라는 수학 또는 논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질문으로 시작해 보죠. A보다 B가 크고(A<B), B보다 C가 크다면(B<C), A와 C 중에 A가 클까요, C가 클까요? 너무 쉽죠. 정답은 C입니다. A가 1m인 막대기, B가 1.2m인 막대기인데 길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막대기 C를 B에 맞대어 보니 B보다 C가 10cm 깁니다. A와 C를 직접 맞대어 보지 않아도 우리는 C가 A보다 30cm 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갑이 을의 고등학교 후배이고, 병이 을의 고등학교 선배이면 당연히 갑은 병의 고등학교 후배인 겁니다. 단순하고 자명한 논리입니다. 이 경우에 ‘이행성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수학과 논리학의 세계에서는 진리에 가까운 논리가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들어오면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짜장면, 짬뽕, 볶음밥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 윤리적 맥락과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변수도 많고 예외도 많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기에 사상가이자 수학자인 콩도르세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 의사결정이 유권자의 선호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만약 갑, 을, 병 3명의 투표권자가 정책 A, B, C에 대해 가진 선호도(표1)가 갑은 A > B > C, 을은 B > C > A, 병은 C > A > B 식으로 다르면 선거 결과(표2)는 투표 순서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정책 A와 B를 놓고 투표에 부친 후 여기서 채택된 정책을 정책 C와 투표에 부칠 경우 정책 C가 선택됩니다. 이와 달리 정책 B와 C를 놓고 투표에 부친 후 여기서 채택된 정책을 정책 A와 투표에 부치면 정책 A가 선택된다는 겁니다.
한 번 읽고 바로 이해하셨다면 대단한 겁니다. 이를 다른 버전으로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기 갑, 을, 병 세 사람이 있습니다. 세 사람은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갑은 매번 가위만 내고, 을은 매번 바위만 내고, 병은 매번 보를 냅니다. 매우 억지스럽지만 그렇다고 가정해 보죠. 세 사람이 동시에 가위바위보를 하니 절대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먼저 준결승을 하고 승자가 결정되면 그 승자가 나머지 한 사람과 결승전을 펼치기로 합니다. 한 사람은 준결승 없이 부전승으로 바로 결승전에 올라가는 것이죠.
사다리를 타든 제비를 뽑든 어찌어찌해서 대진표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요. 어떤 방법으로 순서를 정해도 부전승으로 올라간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경우의 수는 세 가지이니 머릿속으로 가위바위보 시합을 해보시면 되겠습니다. 갑이 부전승으로 올라간 경우, 을이 부전승으로 올라간 경우, 병이 부전승으로 올라간 경우. 이 세 가지가 전부입니다.
● “이상적인 투표는 없다”는 결론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결과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투표의 순서 또는 대결 방식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투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처럼 형식(투표 방식)이 본질(투표권자의 선호도)에 앞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콩도르세의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이후 이 역설을 극복하고 유권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이상적인 투표 방식을 고안해 보려 노력하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케네스 애로에 의해 이상적인 투표 방식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수학적으로 입증되고 맙니다.
투표는 정치의 영역인 것 같지만, 공공경제 부문에서는 투표와 같은 형식과 절차로 경제적 의사결정을 합니다. 예를 들자면, 마을 도서관 건축사업자를 선정하거나 학교의 책걸상을 선택하는 일 등 공공 부문의 경제적 선택은 다수가 참여하여 선거를 치르는 것처럼 진행됩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참여자의 마음을 제대로 반영하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투표 방식(집단 의사결정 방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의 진심을 모으고 얄팍한 꼼수(투표 방식으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꼼수)는 최소화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세상이 수학적 이행성대로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선택이 어렵고 불완전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운동 경기처럼 세상이 흥미진진할 수도 있습니다. 1등과 꼴찌의 시합에서 기적처럼 꼴찌가 1등을 이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행성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가위바위보가 만고불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게임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 같네요.
다시 처음의 문제 상황으로 돌아가 보죠. 짜장면, 짬뽕, 볶음밥을 두고 고민하는 것은 결정 장애가 아닌 것 같군요. 누구나 그 상황이면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겁니다.
한 번 읽고 바로 이해하셨다면 대단한 겁니다. 이를 다른 버전으로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기 갑, 을, 병 세 사람이 있습니다. 세 사람은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갑은 매번 가위만 내고, 을은 매번 바위만 내고, 병은 매번 보를 냅니다. 매우 억지스럽지만 그렇다고 가정해 보죠. 세 사람이 동시에 가위바위보를 하니 절대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먼저 준결승을 하고 승자가 결정되면 그 승자가 나머지 한 사람과 결승전을 펼치기로 합니다. 한 사람은 준결승 없이 부전승으로 바로 결승전에 올라가는 것이죠.
사다리를 타든 제비를 뽑든 어찌어찌해서 대진표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요. 어떤 방법으로 순서를 정해도 부전승으로 올라간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경우의 수는 세 가지이니 머릿속으로 가위바위보 시합을 해보시면 되겠습니다. 갑이 부전승으로 올라간 경우, 을이 부전승으로 올라간 경우, 병이 부전승으로 올라간 경우. 이 세 가지가 전부입니다.
● “이상적인 투표는 없다”는 결론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결과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투표의 순서 또는 대결 방식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투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처럼 형식(투표 방식)이 본질(투표권자의 선호도)에 앞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콩도르세의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이후 이 역설을 극복하고 유권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이상적인 투표 방식을 고안해 보려 노력하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케네스 애로에 의해 이상적인 투표 방식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수학적으로 입증되고 맙니다.
투표는 정치의 영역인 것 같지만, 공공경제 부문에서는 투표와 같은 형식과 절차로 경제적 의사결정을 합니다. 예를 들자면, 마을 도서관 건축사업자를 선정하거나 학교의 책걸상을 선택하는 일 등 공공 부문의 경제적 선택은 다수가 참여하여 선거를 치르는 것처럼 진행됩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참여자의 마음을 제대로 반영하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투표 방식(집단 의사결정 방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의 진심을 모으고 얄팍한 꼼수(투표 방식으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꼼수)는 최소화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세상이 수학적 이행성대로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선택이 어렵고 불완전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운동 경기처럼 세상이 흥미진진할 수도 있습니다. 1등과 꼴찌의 시합에서 기적처럼 꼴찌가 1등을 이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행성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가위바위보가 만고불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게임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 같네요.
다시 처음의 문제 상황으로 돌아가 보죠. 짜장면, 짬뽕, 볶음밥을 두고 고민하는 것은 결정 장애가 아닌 것 같군요. 누구나 그 상황이면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겁니다.
이철욱 광양고 교사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아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정승일 한전 사장 사의…25조 자구안 발표 맞춰 퇴진
- [이기홍 칼럼]제2의 문재인 막을 ‘문재인 실정(失政) 백서’
- [단독]공수처, 송영무-국방부 등 동시다발 압수수색
- “김남국, 또다른 게임코인 상장前 10억 매입… ‘마브렉스’ 투자”
- 김남국, 흑역사 ‘이모 논란’ 청문회 때도 코인 거래 의혹
- 尹 지지율 2%p 상승한 35%…긍정·부정평가 이유 1위는 ‘외교’
- [단독]“이화영 아들, 쌍방울서 맞춤양복… 법카도 사용”
- ‘공흥지구 특혜 의혹’ 尹 대통령 처남 송치…장모는 불송치
- 정부 “오염수 시찰단, 최고 전문가로 구성…방류 전반 안전성 검토”
- 에버랜드 화재 발생…나무 모형에 불 붙어 [청계천 옆 사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