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기계업체가 지혈제 생산… 사업 다각화로 위기 맞선 中企들
지난 9일 중소기업 대가파우더시스템의 충남 당진 공장에서는 파란색 방진복을 입은 여직원 20여 명이 흰색 가루를 용기에 나눠 담고 있었다. 녹말 소재를 원료로 한 식물성 지혈제다. 전국 병원에 납품하고 있다. 대가파우더시스템은 세라믹 가루를 촘촘하게 뭉쳐 5㎛(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이상의 이물질을 걸러내는 필터를 투입한 수액 튜브 세트도 만든다. 1970년 설립된 이 회사는 50년 넘게 분쇄기 같은 가루 제조 기계·장비를 만들어 온 정통 제조업체다. 하지만 5년 전 가루 제조 기술을 살려 의료 제품 개발로 사업을 확대했다.
중소기업이 기존 사업 영역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불안,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에 잘하는 업종 ‘한 우물’만 파서는 기업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업종 다각화에 나선 것이다.
◇업종 다각화 나선 중소기업들
최은석 대가파우더 대표는 “가루 장비는 100% 주문 제작이어서 생산량이 일정하지 못해 새 먹을거리를 고민하던 차에 의료계에서 국산 지혈제 개발 요청을 받아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게 됐다”고 했다. 그동안 병원에선 3~5mL 소량에 65만원인 고가의 수입산 지혈제를 써야 했는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의료계가 가루 제작 노하우를 가진 대가파우더에 국산 지혈제 개발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홍운 대가파우더 기술연구소장은 “제품 개발도 쉽지 않았지만, 식약처의 의약품 최고 등급 인증을 받기 위해 각종 기준을 충족하고 임상 시험을 치르는 과정이 특히 어려웠다”며 “R&D(연구·개발) 비용으로만 30억원, 생산 시설 확충에 또 30억원이 들었다”고 했다. 대가파우더의 가루형 지혈제는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면서, 지혈제 한 개에 환자에게 청구되는 비용은 60만원 이상에서 2만7000원으로 낮아졌다. 대가파우더의 작년 매출 320억원 중 40억원이 의료 제품에서 나왔고, 올해는 예상 매출 410억원 중 70억원을 차지할 전망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사업 다각화
경기도 부천에 있는 중소기업 올클리는 8년 된 중소기업이다. 극세사 원단으로 차량 세차용 타월을 제작하는 기업이었지만 코로나가 닥치며 어려움에 빠졌다. 원재료인 극세사 원단 염색·가공 업체가 줄줄이 폐업하면서 원단을 조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사업을 접으려고도 했지만, 여전히 해외에서 한국산 극세사 제품에 대한 평가가 높다는 것을 알고 생각을 바꿨다. 포천 양문 공단의 폐공장을 사들여 직접 원단 가공에 나섰다. 지금은 원사 단계부터 염색·가공, 완제품까지 모든 단계를 거쳐 해외 40국 이상에 자체 브랜드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2021년 65억원 매출은 지난해 80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100억원 돌파가 목표다.
광주광역시 소재 삼우전자는 백색가전용 알루미늄 부품 제조사다. 매출 95% 이상을 삼성전자에 의존해왔다. 코로나 이후 원자재인 알루미늄 가격이 급등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사업 다각화 필요성을 느낀 삼우전자는 백색가전에 더해 전기차 충전기 부품 개발에도 나섰다. 지난해 전기차 충전 회사 SK시그넷과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김동수 삼우전자 대표는 “알루미늄뿐만 아니라 구리 등 비철금속 소재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라고 했다.
◇사업 전환 꾀하는 中企, 지난해 400여 곳 달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업종 전환을 꾀하는 중소기업들에 설비 구입, 사업장 매입 등 시설 투자를 위해 최대 100억원을 대출하는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중진공의 사업전환자금을 지원받은 기업 수는 2018년 262사에서 지난해 406사로 늘었다. 중진공은 사업 전환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기존의 사업 전환 지원 사업을 구조 혁신 사업으로 확장하고, 1000억원대였던 기존 예산도 2500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또 구조 혁신, 인력, 디지털 전환 등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한다. 중진공 관계자는 “코로나와 탄소 중립, 디지털 전환 등을 거치며 사업 구조 전환을 꾀하는 중소기업들이 늘어나 지원 사업 규모를 확대했다”고 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침체 때엔 생산성이 중요해지는데, 사업 전환은 생산성 증대에 필수적인 수단”이라며 “중소기업일수록 시장 변화를 따라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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