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320조원 써도 꼴찌, 국회는 책임 없나

박상기 기자 2023. 5. 1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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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출산율 0.78명, 국회 인구위기특위는 6개월간 회의 3번뿐
지난 3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뉴스1

320조원. 2006년부터 17년 동안 저출산 대책에 쓰였다는 돈이다. 그 어마어마한 돈을 어떻게 썼길래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에서 전 세계 꼴찌 0.78명까지 추락했을까. 국회 인구위기특위 회의를 보고 있으면 대강 짐작이 가능하다.

국회의원들도 320조원의 행방이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특위 회의에서 정부 부처를 상대로 16년 동안 280조원, 17년 동안 320조원, 지난해에만 40조원을 어디에 쓴 거냐고 묻는다. 부처 10개가 모였지만 속시원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어디에 썼는지 정확히 모르니 제대로 쓴 게 맞는지도 확인이 안 된다. 그동안 들인 돈의 효과를 물으니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 대세”라는 답이 돌아온다.

컨트롤타워 문제도 있다. 나라의 저출산 대책을 지휘하는 명확한 컨트롤타워가 없으니 10개 부처 업무보고는 서로 겹치기 일쑤다. “예산 틀어쥔 기재부가 적극 나서라” “관련 인력이 많은 복지부가 하는 게 맞는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실질 권한이 없지 않나” 등등 중구난방 주장이 오간다. ‘모두의 책임’을 강조하면 결국 누구 하나도 책임지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저출산 문제가 꼭 그런 상황이다.

가장 심각한 건 나라가 소멸 중이라는데 지도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도무지 저출산 문제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국회 인구특위만 해도 국회 유일의 관련 특위지만 작년 12월 구성된 뒤 6개월 동안 회의 3번 연 게 다다. 그중 1번은 위원장과 여야 간사를 뽑는 회의였다.

부처 업무 보고에는 장관들이 대거 불참했다. 장관 참석이 꼭 필요하다며 특위 차원에서 회의를 2번이나 취소·연기했는데, 지난달 26일 회의에 참석한 장관은 단 한 명이었다. 나머지 4명은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다며 불참했다.

장관들의 단체 결석에 특위 의원들은 “국회 무시”라고 화냈지만, 사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의원 18명으로 구성된 특위는 법률이나 예산 심의·의결권이 없다. 여야가 특위를 만들면서 그런 권한 자체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18명 중 14명은 초선 의원이다. 국회에서 선수(選數)는 그 자체로 힘이고 권위다. 김기현 대표나 이재명 대표가, 다선 의원들이 잔뜩 특위에 포진했어도 장관들이 이렇게 대놓고 참석 요구를 무시할 수 있었을까. 대통령도 장관도 국회도 “저출산은 국가적 위기, 국정 최우선 과제”를 외치지만 실상은 이렇다.

국회에 ‘저출산 해법’을 내걸고 제출된 법안이 많다. 아이를 낳고 기를 때 도움을 주는 법,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한 법, 국가 인구 정책의 기본 틀을 바꾸는 제정법까지 다양하다. “누가 책임질 거냐” 소리칠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한 법 통과시키는 데 쓰면 좋겠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예산을 조율하기 위해서라도 장관들이 먼저 국회로 달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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