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의 21세기 진보] 진보, 투자촉진형 복지국가·친기업주의로 거듭나야

기자 2023. 5. 1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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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방선거의 핵심 쟁점은 무상급식이었다. 보수는 천안함 이슈를, 진보는 무상급식 이슈를 제기했다. 결과는 민주당의 완승이었다. 민주당은 보수세(勢)가 강한 지역에서도 승리했다. 강원도지사(이광재), 충남도지사(안희정), 충북도지사(이시종), 경남도지사(김두관)를 배출했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이후 박근혜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복지 확대와 노동권 확대에 동참한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 반값 등록금, 무상보육, 복지 증세를 했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했다.

1987년 이후, 진보의 두 가지 업적

한국 진보의 주류는 86세대다. 86세대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고, 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지칭한다. 일부에서는 말한다. “86세대 정치인들은 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이런 평가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86세대 정치인들은 크게 두 가지를 해냈다.

첫째, 독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디지털 경제와 한류의 확산 역시 ‘민주주의’가 바탕이 됐다.

둘째, 대규모 복지 확대를 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 199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문 사회복지비 비율은 3.4%였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를 마친 2022년에는 14.8%가 된다. 2022년과 1997년을 비교하면, 한국은 경제성장률에 비해 약 4.4배의 복지 확대를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통틀어, 가장 빠른 증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보수정부가 19년 집권했고, 진보정부가 15년 집권했다. 민주화도, 복지 확대도 진보가 주도하고 보수가 수용하는 모양새였다.

지난 10일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이었다. 앞서 5일 공개된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대통령의 직무평가는 긍정 33%, 부정 57%다. 부정이 압도적이다.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5%, 민주당 32%, 무당(無黨)층 28%다.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3%포인트 앞선다.

윤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은 민주당의 대선 패배 1주년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실언의 왕’이었다. 국민들은 알고도 그를 뽑았다.

민주당은 왜 정권을 뺏긴 것일까? 이유는 자명하다. 민주당 후보의 집권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민주당의 무엇이 걱정되었던 것일까?

가장 중요한 지점은 ‘진보경제학’의 허술함이다. 1960년대 이후부터 최근의 순서대로, 한국의 진보경제학은 3가지 흐름이 존재했다. 민족경제론, 사회주의 경제학, 케인스주의와 결합된 유럽식 복지국가론이었다. 민족경제론과 사회주의 경제학은 오판(誤判)임이 확인됐다.

‘경제에 유능한’ 진보 모델, 스웨덴

유럽식 복지국가는 그간 인류가 이룩한 가장 괜찮은 국가 모델이다. 한국 진보가 이해하는 유럽의 복지국가는 ‘복지비 지출이 많은’ 사회다. 복지정책, 혹은 사회정책에 갇혀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지극히 일면적이다.

경제성장, 사회연대, 평등을 동시에 달성한 가장 모범적인 국가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식 복지국가는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작품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1889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만들었다. 다만, 창당 초기부터 ‘혁명주의적’ 흐름과 거리를 두고, ‘개혁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1932년 처음 다수파 집권을 한 이후, 1976년까지 무려 44년간 민주적 연속 집권에 성공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스웨덴식 복지국가’의 근간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스웨덴 복지국가는 복지 지출도 높고, 세금도 많이 걷는다. 세금과 사회보험료 합계인 국민부담률은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은 GDP 대비 27.3%다. OECD 평균은 33.8%다. 스웨덴은 42.9%다. 스웨덴은 한국보다 15.6%포인트 더 높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10조원 많다(참고로, 2023년 한국 예산은 640조원이다).

그러나 스웨덴 모델의 진짜 핵심은 ‘경제학적 마인드’다. 스웨덴식 복지국가는 투자촉진형 복지국가다. 친기업 진보주의를 추구했다. 스웨덴 사민주의자들은 1930년대부터 노동자의 완전고용과 소득 증대를 위해 ‘경제성장’이 중요하다고 봤다. 수출 경쟁력을 위해 기업 규모를 키우고, 산업구조 고도화를 압박하는 정책 패키지를 설계했다.

한국 진보는 법인세는 높을수록 좋고, 소득세와 소비세는 낮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자본에는 높은 세금을, 노동에는 낮은 세금을 추구한다. 스웨덴 사민주의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자본에는 낮은 세금을, 노동에는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왜? 투자와 고용의 주체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 방식이 노동자계급의 이익에도 좋다고 봤다.

항목별 세입구조에서 전체 규모, 법인세, 소득세, 소비세를 비교하면 확연하다. 스웨덴과 한국을 비교해보자. 2019년 GDP 대비 전체 규모는 스웨덴 43.9%, 한국 26.8%로 스웨덴이 1.6배 크다. 법인세는 반대다. 스웨덴 2.8%, 한국 4.2%로 한국이 1.5배 많다. 소득세는 스웨덴 12.9%, 한국 4.9%로 스웨덴이 2.6배 더 많다. 소비세(부가가치세)도 스웨덴 12.3%, 한국 7.0%로 스웨덴이 1.8배 더 높다.

스웨덴은 전체 세수 규모가 크다. 단, 법인세는 낮다. 반면, 근로소득세와 부가가치세가 매우 높다. OECD 평균과 비교해도 대동소이하다.

윤석열 정부의 최대 약점은 경제와 청년이다. 민주당의 최대 약점은 경제와 포퓰리즘이다. 유능한 민주당은 어떻게 가능한가? 핵심은 ‘기업의 재발견’이다.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과 소득 증대다. 이는 기업의 투자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이뤄진다. 스웨덴식 복지국가는 친기업과 친노동의 양립 가능성을 증명한다.

한국 진보는 투자촉진형 복지국가, 친기업 진보주의로 거듭나야 한다. ‘경제에 유능한 진보’는 그때 가능해질 것이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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