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상처, 공감 대화로 자존감 높여 치유해야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 / 우리 아이 마음 상담소] 정신적 후유증 남기는 학교폭력
※2021년 설립된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 소속 전문의들이 아이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분야별로 조언합니다.
고등학교 여학생 A양은 수면 장애와 두통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을 찾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수년간 같은 학년 아이들에게 신체 폭행과 괴롭힘을 당한 뒤 증상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도 학교 폭력을 당한 순간이 떠오르면 자해나 자살 충동을 느낀다. 문자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학교 남학생 B군은 학교 폭력 피해를 당한 뒤 너무 힘들어 극단적 선택을 하러 옥상에 올라가겠다고 했다. 상담사가 급히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알리고 112에 신고해 B군 생명을 구했다.
최근 학교 폭력은 왕따나 괴롭힘 수준을 넘어 사이버 폭력, 감금, 상해 등 심각한 범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학교 폭력을 단순히 아이들 사이의 장난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학교 폭력은 피해 학생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같은 정신건강의학적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도 신체적 상해처럼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잘 아물 수 있도록 보듬어 주고, 2차 가해로 상처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심한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필요하다. 학교 폭력 피해 학생에게 우울과 불안이 1.5~2배 높게 나타나고, 자해나 자살 시도가 2~3배로 높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특히 반복적으로 피해를 입은 학생은 자존감 저하가 동반돼 정상적인 학업 생활이 어렵다. 지적 장애, 자폐 스펙트럼 장애 같은 어려움이 있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학생은 빈번하게 학교 폭력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학교 폭력에선 가해 학생의 정신건강에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분노 혹은 공격성을 조절하지 못하는 파탄적 행동 장애가 대표적이다.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 적대성 반항 장애, 품행 장애가 이에 속한다. 연구에 의하면 학교 폭력 가해자의 75%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가해 학생의 36%는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 피해자였다.
행동 문제가 있는 자녀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어려움을 느끼는 부모는 양육 측면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런 경우에도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하다. 학교 폭력을 걱정하는 부모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노력으로, ‘매일 자녀에 대한 긍정적 관심’과 ‘공감적 대화’를 추천한다.
자녀의 마음을 공감하는 대화는 여러 가지 이점을 가진다. 첫째, 자녀가 일상생활에서 불안이나 우울,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꼈을 때 여기에 압도당하지 않고 이성적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게 한다. 굳이 조언을 해 주지 않아도 자녀의 말에 공감하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다.
둘째, 평소 자녀와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유지돼 자녀가 스트레스 상황일 때 조기에 알아차리고 도움을 줄 수 있다. 문제가 더 악화하기 전에 예방이 가능한 것이다.
셋째, 자녀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인정받는 경험을 통해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높아져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우리는 힘들 때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데, 이때 누군가 공감하고 인정해주면 자존감에 상처를 받지 않게 된다.
학교 폭력은 많은 경우 대인 관계에서 비롯된다. 애착 이론에 의하면 어릴 때 양육자와 자녀 관계의 유형은 약 세 살 때 완성된다. 이것은 자녀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기반이 된다. 자녀가 영·유아기 때 충분히 좋은 부모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어렸을 때 형성된 대인 관계의 틀이 이후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계속 수정되고 보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시냅스로 이어진 뇌 회로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상당 기간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학교 폭력은 일단 발생하면 구성원 전체에게 아픔을 준다. 예방이 최선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더는 학교 폭력을 경험하지 않도록 다각도로 원인을 분석해 정신건강 영역을 포함, 면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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