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65> 미국의 민주주의 1, 2-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
- 베르사유 하급 행정관 토크빌
- 10개월간 겪은 미대륙 유람기
- 중앙과 주정부 협치·분권 포함
- 사법·인종문제 등 예리한 통찰
- 문학에 소홀한 한계도 꼬집어
- 한국형 민주주의 되짚을 기회
민주주의 국가가 선거철을 맞으면 무덤 속 정치사상가들은 귀가 가렵다. 여기저기서 자신을 불러대니 그렇다. 그 호출에서 빠지지 않을 이가 프랑스 자유주의 사상가 토크빌이다. 190여 년 전 미합중국을 찾아가 그곳에서 꽃 핀 자유민주주의를 분석하면서 그 정치체제가 가진 이점과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앞서 간파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미국, 너는 누구냐
한국은 내년 4월 10일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다. 토크빌이 슬슬 등장할 때다. 대표작 ‘미국의 민주주의’(1권 1835년, 2권 1840년)를 옆구리에 끼고서. 미국은 중앙-주 정부가 잘 공존하는 협치·분권에 안착한 나라다. 이 고전에 그 비결·기원·과정이 들었다. 지역 자립·분권이 더딘 우리가 눈여겨봐야 한다. 프랑스인 토크빌도 선진 국가인 미국으로 건너가 현장에서 격변기에 든 조국을 걱정하며 그랬다.
현재 미국은 골칫거리가 많다. 총기·마약·인종 문제는 최악. 그런데도 버텨낸다. 그 이유, 미국이 이 같은 맷집을 얻는 과정이 이 고전에 담겼다. 베르사유 하급 행정관이었던 토크빌은 동료(귀스타브 드 보몽)와 함께 미국으로 가 10개월간(1830년 5월~1831년 2월) 둘러봤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닿았던 영국 청교도처럼. 명목은 미국 교도소 견학이었다. 공식 시찰 구간은 뉴욕~미시간주~보스턴. 그 후론 자유로이 뉴잉글랜드 켄터키 미시시피강을 거쳐 미 남부를 찾았다.
그 체험이 이 책 두 권에서 반짝인다. 1권은 1장(‘북아메리카의 외형’)~18장(‘합중국에 거주하는 세 종족의 현황과 전망’)에 ‘결론’이 붙었다. 2권은 1부(‘민주주의가 아메리카 지식인의 행동에 미친 영향’)~4부(‘민주주의적 사상과 감정이 정치사회에 미치는 영향’)로 짰고 ‘결론’을 실었다. 결론 문장이 유려하다. 민주의의가 대세인 정치체제라는 확신이 드러난다. 인간은 한계 속에서 노예상태와 자유, 야만과 지혜, 고통과 번영 중 택일할 자율성을 가졌다는 논지. ‘하느님(종교)’이 ‘인간’에게 자유를 줬다며 이 말을 미국을 이해하는 핵심으로 삼았다.
▮광대한 영토란 어떤 의미?
논문처럼 1, 2권이 자세한 소제목을 달았다. 전체 글 흐름을 파악하고, 취사선택해 읽기에 좋다. 각 장 분량은 들쑥날쑥하지만, 담긴 정보는 최신이었다. 출간 당시인 1830년대 초 이처럼 따끈따끈한 ‘미 대륙 보고서’가 없었으니까. ‘북아메리카의 외형’이란 소주제로 운을 뗐다. 강대국들 특징을 설명한다. 우선, 영토가 거대하다. 미국은 육지와 바다, 산과 계곡이 질서정연하면서도 거대한 배열을 보이는 축복받은 곳. 앨러게니·로키산맥, 미시시피강·레드 리버 같은 대자연은 장관이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삶의 터전 중 가장 훌륭하다.”
영토가 광대하다? 그 나라가 갑자기 멸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극심한 재해를 당하더라도 피신할 다른 땅이 기다린다. 국토가 넓어 동시에 모두 타격받는 일은 드물다. 각 주가 독립성을 갖춰 살면서 연방헌법을 받아들이는 토대가 여기서 생긴다. 하지만 완벽한 축복은 아니다. 그 설명이 후반부에 나오는데 작은 국가에 위안이 된다. 소국으로서 이점이 있다. 그걸 잘 살려 정치체제에 반영하면 강대국 못잖다. 이 대목은 한국에 반성을 부른다. “우리는 그 길로 매진하고 있는가?”
▮여러 가지 제도를 살피다
‘영국계 아메리카인’은 미국인 선조다. 청교도 이주 역사가 1권 2장부터 펼쳐진다. 잘 알려진 ‘메이플라워호 스토리’다. 이 이주민이 세운 사회가 떠나온 영국 봉건·귀족주의와 다른 점, 성공요인이 제시된다. 이들이 공동언어 영어를 썼다는 건 최대 은총. “인류를 묶는 가장 강력하고 지속성을 갖춘 끈은 바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여건이다.”
청교도는 도덕성과 규율이 센 공동체 사회를 이끌었다. 신 앞에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는 신념은 사회 평등으로 이어졌고 자유를 누리는 바탕이 됐다. 잉글랜드가 싫어 떠난 사람들이라 마음도 잘 맞았다. 개인 간 우월의식을 걷어냈다. “가난과 불행만큼 사람들 사이에 평등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건 없다.” 토크빌은 이 점이 가장 놀라웠다.
또 다른 평등 요인은 토지 소유 조건. 토지는 귀족 신분제의 근간인데 이 신대륙에선 그게 없었다. 이주 초기엔 누구든 직접 땅을 개간해야 소유할 수 있었다. 땅이 분할되며 귀족주의 특징인 신분 차별이 줄었다. 평등은 사회생활 조건뿐만 아니라 정치제도, 시민 습관과 태도에 스몄다. 자유로운 상업활동도 강점. 엘리트 청교도가 정착한 뉴잉글랜드가 모범 지역이었다. 영국엔 없는 자치사회로 북부 식민지에선 ‘타운(town)’, 중부 이남 ‘카운티(county)’에 해당한다. 이곳에서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스스로 통치하기만 하면 된다는 주권재민 사상이 움텄다. 이런 미국인 긍지는 세계 속 주인의식을 불렀다.
1권 5~9장은 ‘타운 제도와 자치 기구’ ‘합중국의 사법권과 정치사회’ ‘합중국의 정치적 재판 관할권’ ‘연방헌법’ ‘합중국의 민권 지배의 원리’를 다뤘다. 저자는 “연방제는 인간이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데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복합요소 중 하나”라고 썼다. 10~12장은 미 정당·언론자유·정치결사를 들여다봤다. 언론자유와 국민 주권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13~14장엔 미 민주정치와 민주주의의 장점이 나온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을 “세계 각국이 전쟁에 휘말려 들어가는데도 미국을 평화 상태로 유지”하도록 만든 지도자라며 높게 샀다. 전쟁을 벌이지 않는 능력이 전쟁을 일으키는 능력보다 우월하다는 얘기다.
▮다수의 횡포 문제에도 관심
1권 15장이 유명하다.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폐해인 ‘다수의 횡포’를 다뤘다. “다수가 절대 권력을 가질 때 가장 위험하다.” 공고한 미국도 그리되면 붕괴한다고 내다봤다. “입법부 폭정이야말로 정말 두려워해야 할 요소”라는 제퍼슨 말을 내세웠다. 16장은 ‘다수의 횡포’를 막는 장치를 보여준다. 우선, 중앙정부가 여러 주를 규제하는 중앙집권화 행정을 펴지 않는다. 사법관은 민주주의 균형을 유지하며, 배심원제도도 중요하다. 17장에서 ‘자연환경·법률·관습’이 미국 민주주의에 이바지하는데 그 비중은 ‘관습>법률>자연환경’ 순. 18장은 인디언-흑인-미합중국인, 세 종족 간 문제점과 현황 전망을 살폈다.
1권 마지막 장이다.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은총만 받은 건 아니랬다. “미합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같은 번영은 가장 심각한 위험의 원천이기도 하다.” 오늘날 미국이 겪는 곤란을 내다봤다. 미국과 러시아를 견줬다. “위대한 두 민족, 아메리카인-러시아인들은 출발점이 다르다. 각각 자유와 예속이라는 다른 길을 간다.” 예리한 통찰이 번뜩인다.
2권에서 토크빌은 미국과 미국인이 “들떠 있다, 경솔하다, 부에 매달린다”며 꼬집었다. 소주제가 ‘자유민주주의가 미합중국 지식인과 문학, 미국인 가치관과 관습, 미국 정치사회에 미친 영향은?’. 미국만큼 이 세상에서 문학에 무관심한 나라는 없다며 포문을 열었다. 개인주의를 놓고 “새 관념이 낳은 신기한 표현”이랬다. 미국 이면을 냉철하게 들여다봤다. “빈부 격차가 심한 미국에서 ‘빈자’는 삶이 혐오스럽다. 삶을 끝내길 원하나 자살을 금하는 청교도적 종교 사회에서 자라 실행 못 하고 정신이상이 되는 사례가 흔한 건 유럽과 대비된다.”
우리나라를 돌아보게 된다. 외세에 민감한 반도국, 휴전 상태란 이중 덫이 보인다. 이걸 풀지 않고선 웅비가 어렵다. 반도국이란 지형을 바꿀 순 없지만, 두 번째 덫은 우리가 해체하는 게 가능하다. 이 땅에서 전쟁이 발발할 위험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 생존권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반석 위에 한국형 자유민주주의를 올려 본궤도에 띄우는 게 과제다. 요즘 과도한 ‘국뽕’에 도취해 물렁물렁해진 건 아닌가 살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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