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은 손끝에서 남는다” 정성·절약으로 SPC그룹 기틀 세워

이미지 기자 2023. 5.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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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삼립식품 공동 창업주 김순일 여사 100세로 별세
2002년삼립식품의 경기도 시흥 공장을 방문한 고(故) 허창성(왼쪽 둘째) 명예회장과 고(故) 김순일(왼쪽 셋째) 여사가 허영인 SPC그룹 회장 내외(양끝)와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김 여사는 허 명예회장과 함께 창립한 제과점 상미당이 삼립식품으로 커진 뒤에도 감사와 이사를 맡아1990년까지 경영에 참여했다. /SPC

SPC그룹 허영인 회장의 모친이자 삼립식품 창업주인 고(故) 허창성 명예회장의 부인 김순일 여사가 10일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1923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난 김 여사는 허 명예회장과 함께 삼립식품(현 SPC삼립)을 창업해 SPC그룹의 기틀을 세웠다. 재계 창업 1세대의 경우 창업주 부인들이 대부분 내조 중심의 역할을 했다면, 김 여사는 창업 과정은 물론 이후 기업 경영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 사실상 공동 창업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허 명예회장은 생전에 “아내를 빼놓고 회사를 거론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삼립식품을 확고부동한 반석 위에 올려 놓기까지에는 항상 아내의 공과 덕이 뒤따랐다”고 회고했다.

김 여사는 1942년 허 명예회장과 결혼 후 함께 봉제 공장을 운영하다가 1945년 삼립식품의 전신인 제과점 ‘상미당’을 함께 창업했다. 제빵 기술이 뛰어났던 허 명예회장이 생산 관리를 담당하고, 김 여사는 직원 인사와 원재료 구매, 거래처 계약과 예산 집행 등 경영 관리를 맡았다. 결혼 후 허 명예회장은 김 여사에게 직접 공장 운영 등에 대해 가르쳤는데 “일을 이해하는 속도가 빠르고, 경영 분야에서 그 능력이 두드러졌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허 명예회장과 김 여사는 6·25전쟁 당시 아들 허 회장을 포함한 자녀 셋을 데리고 황해도 옹진과 서울 을지로를 오가는 피란 생활을 하면서도 상미당 운영을 지속해왔다. 전쟁 통에 빵의 재료인 밀가루와 엿, 설탕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며 갖은 고생을 했다. 휴전 후 서울에서 다시 상미당을 열었고, 1959년 3월 삼립제과공사를 설립해 기업화의 틀을 갖췄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참관하러 갔던 일본에서 공장 자동화 아이디어를 얻은 허 명예회장이 기술자를 데리고 들어와 ‘삼립 크림빵’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8년 삼립식품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김 여사는 이후 회사에서 이사와 감사를 맡으며 1990년까지 경영에 참여했다. 허 회장은 해외 출장 중 모친의 별세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해 빈소로 오면서 “어려운 시기, 서민들이 즐겨 먹는 크림빵과 호빵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회사 직원들에게 지출엄정주의와 검약정신, 종업원 존중을 강조했다. 평소에는 “제빵은 손끝에서 남는다”는 말로 정성과 절약을 강조했다. 손끝에 정성이 모이면 맛이 더 좋아지고, 손끝에 정성이 모이면 쓸데없는 낭비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물자가 귀한 시절, 손끝에서 새어 나가는 작은 낭비도 막고 만드는 빵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라고 당부한 것이다.

김 여사는 경영자로서의 수완도 좋았다. 매일 도·소매상에서 수금한 돈을 입금하기 위해 은행까지 뛰어다녔는데 숨이 차게 뛰다가도 은행에 가까워지면 숨을 고르고 느긋한 모습으로 들어섰다고 한다. 허 명예회장이 그 이유를 묻자 “은행 앞까지 뛰어가는 건 시간을 철저히 지켜 변함없는 신용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고, 은행에 다다랐을 때는 언제나 여유있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서 우리 회사의 기반이 탄탄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숨을 고르고 천천히 들어갔다”고 대답했다. 아내의 말에 감동한 허 명예회장은 2001년 낸 자서전 ‘미래를 살아가는 지혜’에서 “돈 입금하는 일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자녀들에게 경제 관념을 심어준 김 여사의 일화도 유명하다. 어린 자녀들을 집에 두고 올 수 없어 빵 공장에서 돌볼 당시에는 끈으로 묶은 자석으로 공장 바닥에 떨어져있는 못을 주워 오면 용돈을 줬다고 한다. 바닥에 떨어진 못 하나도 재활용하는 절약 정신을 가르치는 동시에 자녀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알려주는 방법이었다.

허 회장 역시 부모님이 함께 일군 삼립식품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 회장은 “어머니 등에 업혀 있을 때부터 빵 냄새를 맡고 자랐다”며 “늘 어머니를 떠올리면 빵이 함께 연상될 정도”라고 말했다. 삼립식품은 2003년 8월 허 명예회장이 별세한 뒤 2004년 SPC그룹으로 출범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유족은 허영인 회장 등 6남 1녀이며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했다. 발인은 13일, 장지는 경기도 이천시 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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