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 논란, 이해 당사자들의 갈등 비교 판단할 근거 제시해야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 지난 8일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김별아(소설가),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김태수(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위원과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상욱(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한일 회담]
- <위령비 1970년에 세워... 민단 “동반 참배 상상 못한 일”>(5월 8일 자 A3면)은 한일 정상이 히로시마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하기로 했다는 내용인데, 위령비 참배 시 원폭 투하에 대한 우리의 외교적 입장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한국 대통령이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원폭 투하와 관련, 미국은 전쟁을 조기 종식시켰다는 입장인 반면, 일본은 많은 민간인이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이 미·일 중 어느 한쪽 손을 들어줄 것인지, 아니면 한국인만 위령하겠다는 것인지 국제정치적·외교적 관점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 <입법에 가로막힌 윤석열 정부 1년>(5월 9일 자 A1면)과 <연금·노동·교육... 미래세대 위한 개혁, 野암초에 걸렸다>(A5면) 제목만 보면 취임 1년 동안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이 야권의 발목잡기로 좌초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노동개혁 동력이 약해진 것은 노동시간 유연화를 둘러싼 정책이 ‘주 69시간제’로 오도되었는데, 이를 정부가 적극적 홍보로 돌파하지 못한 요인이 가장 크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연금개혁은 야당만이 아니라 여당 역시 소극적이고, 특히 총선을 앞두고 논의를 진행시키지 않아 비판을 받고 있다. 교육개혁의 경우 교육부 수장이 내놓은 개혁 그림 자체가 모호하고 적극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 <셀프 출두 송영길의 ‘소영웅주의’>(5월 3일 자 A1면)는 전 야당 대표의 면피용 셀프 검찰 출두 기사인데, 제목에 왜 ‘소영웅주의’가 나왔나 의아했다. 이어진 A5면 기사에 민주당 당직자가 한 말을 인용한 건데, 제목으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공공기관]
- <경영평가 대상 공공기관, 임원 80%가 ‘文정부 사람’>(5월 5일 자 A8면)을 보면 공공기관 임원 문제를 지나치게 ‘알 박기’로 다루는 것 같다. 자료를 제공한 여당 의원실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공기관 기관장은 임기 3년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고, 마치 공공기관을 엽관제에 의해 운영되는 정부 조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물론 대통령과 공공기관의 정파적 일치와 정책적 일관성은 중요하지만, 공공기관의 지속성과 ‘정치로부터의 독립’ 등도 중요한 가치다.
- <2030의 국가 비호감도... 중국 91%, 북한 88%, 일본 63%>(4월 24일 자 A6면)는 2030세대가 중국, 북한을 가장 싫어한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다. 바른언론시민행동이란 단체가 조사를 주관했다고 하는데, 가짜 뉴스 퇴치 활동을 한다는 단체 활동과 이번 조사의 관계가 애매하다. 또 한국조사연구학회가 언론에 대해 권고하는 사항인 조사 방법, 특히 확률 표본 유무나 조사 기관, 조사에 대한 오차범위 등의 내용이 없다. 이 조사가 확률표집(무작위 표본 선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조사 결과를 신뢰할 근거가 매우 약해진다.
- <정치가 촉발한 ‘갈등의 도미노’>(5월 5일 자 A1·A4면)는 간호법 개정을 놓고 보건의료계 내부 갈등을 다뤘다. 기사에는 “자격증 기준으로 의사는 11만5000여 명, 한의사는 2만4000명, 간호사는 40만명, 간호조무사는 72만5000여 명”이라며, 갈등에 휩싸인 이해 당사자 단체들의 회원 수를 나열하는 등 힘(표)의 충돌을 과하게 부각시켰다. 각 단체가 자기들 밥그릇을 챙기고 있고, 결국 표 싸움 아니냐는 느낌을 주었다. 대신 독자들이 이들 단체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비교 판단할 근거를 별로 제시하지 않아 아쉬웠다.
- <학폭세탁, 원천차단... 재수, 삼수해도 기록 남는다>(4월 13일 자 A5면)는 가해자 엄벌을 위주로 한 학교 폭력(학폭) 근절 대책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학폭은 심각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학폭위)에 올라가는 사건들의 경우에도 가해 학생들 또한 교정이나 선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소년법을 따로 두는 것은 소년범에 대한 교정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폭 가해자라고 괴물 낙인을 찍는 것보다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사과하고 화해하게 만드는 게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탄소 감축]
- <文정부 탄소 감축 목표 1680만t 부풀렸다>(4월 11일 자 A12면)는 전 정부의 탈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정책이 비(非)과학적이었다는 것을 잘 지적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한다는 터무니없는 목표를 국제 사회에 공표할 수 있었던 지도자들의 무지가 한탄스럽다. 나라별로 산업구조가 다르지만, 다른 나라는 그 목표치를 얼마로 제시했고, 그 배경은 무엇인지를 기사에 추가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당시 감축 목표를 확정하는 데 참여했고 여기에 동감했던 전문가들 의견도 다시 한번 들어보면 좋겠다.
- <”禁女의 벽 깬 30년... 다시 태어나도 여자, 공무원이 되겠다”>(5월 6일 자 ‘아무튼 주말’ B1면)는 1990년대 중반 공직에 들어선 이후 기획재정부 신설 68년 만에 첫 여성 국장이 된 인물 이야기다. 이분은 ‘월화수목금금금’ 일하고 아이는 친정에 맡겨 키웠다고 하는데, 요즘 젊은 공무원 중 이렇게 살려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우리 사회는 2000년 이후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새로운 공무원 롤 모델을 제시해줄 수 있는 인물 선정이 필요하다.
- <여경 머리채 잡고 손찌검까지... 주폭 ‘예비 검사’>(4월 11일 자 A10면)에 ‘여경’과 ‘여성 예비 검사’가 나오는데, 꼭 여성이라는 것을 밝혀야 했나. 공무집행을 방해한 주폭과 피해자 경찰의 성별(性別)이 왜 중요한지 의문이다.
- <”여기도 호흡곤란” 9호선 급행의 비명>(5월 9일 자 A1면)은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서울 지하철 9호선 급행열차에 직접 탑승해 생생한 현장을 잘 전달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9호선을 타보고 서민의 어려움을 체험했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탑승 직후 올 연말까지 새 전동차 3~4대를 투입하기로 했다는 결정은 즉흥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추가 차량 증가나 배차 간격 조정 등 공급 측면에서 여러 제약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승객 수요예측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하철 혼잡과 관련해 수요예측 부실 등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전세사기]
-최근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전세보증금이 제때 반납되지 않은 단순 전세 사고와 고의로 속여 착오에 빠지게 하는 범죄 행위인 전세 사기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세금 시세가 떨어져 보증금 회전이 원활하지 않은 ‘역전세’가 늘고 있는데, 이런 구분이 잘 지켜지지 않아 사태가 부풀려지고 불필요하게 공포심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 이런 공포 확산은 역전세난을 가중하기 때문에 언론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 최근 외식 물가가 크게 올라 기사로 다룬 것은 바람직했다. 그런데 <[비싸도 너무 비싼 코리아] K-외식 리뷰... 비싸다, 뜯겼다, 속았다>(4월 15일 자 A1면)에 스웨덴 여성 관광객 사진이 크게 실렸는데,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며 비싼 가격에 놀라는 모습이 작위적이고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뜯겼다, 속았다’ 등 제목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특히 골프장 그늘집의 엄청난 물가는 일반인은 체감하기 힘든 극단적 사례인데, 제목으로 단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왜 물가가 급등했는지 분석했으면 더 바람직했을 것이다.
- <한전, 작년 33조 적자 내고도, 직원 280명 늘리고 급여도 올렸다>(5월 6일 자 A3면)는 한전의 부실 경영을 지적했는데, 몇 가지 오해 소지가 있다. 우선 대우조선해양은 민간기업 부실화 사례여서 한전과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 수 증가와 기본급 증가를 지적했는데, 이는 한전 재량이 아니라 기재부 통제를 받는다. 또 자구 노력의 하나로 자산 매각을 언급했는데, 이는 부채 감소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보여주기식 매각 추진은 자칫 공적 자원 부실 매각 위험이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스마트폰]
- <[동서남북] 재탕 또 재탕... 스마트폰 중독 대책, 산으로 가나>(4월 18일 자 A35면)는 현대인, 특히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과(過)의존’에 일정한 규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중독’이란 표현은 거부감이 든다. ‘스마트폰 중독’ 정의는 일관되지 않고, 병리학에서도 스마트폰 과의존을 ‘중독’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 칼럼은 스마트폰 과의존에 대한 적극적 대응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예전에 온라인 게임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비즈니스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관련 정책 제안이 이루어져야 한다.
- 조선일보가 편집국 산업부에서 테크부를 독립시킨 이후 빅테크 기업과 산업 동향, 테크 스타트업 소개, 테크 관련 법적·사회적·윤리적·정책적 이슈 등을 본격 다루면서 테크 기사의 양과 질이 크게 향상되었다. 뉴욕타임스나 가디언지의 고품질 테크 기사들을 보며 테크가 뒷전인 한국 메이저 언론 상황이 아쉬웠는데, 이런 아쉬움이 상당 부분 해소되고 있다.
- <’이승엽 벽화’ 앞 홈런에 무릎 꿇은 ‘감독 이승엽’>(4월 27일 자 A25면)은 두산 감독이 된 이승엽이 삼성과의 경기에서 공교롭게도 자신을 기념해 만든 대구 경기장 얼굴 벽화 인근에 떨어진 홈런 한 방으로 패장(敗將)이 됐다는 기사다.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재미있는 스토리를 잘 포착했다. 이제 독자들은 스포츠 경기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신문을 보지 않는다. 스포츠면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승부 이면에 담겨있는 재미있고 기발한 스토리를 발굴해내는 게 중요해졌다. /정리=김정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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