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고층빌딩, 챗GPT… 인간은 ‘병렬’의 힘으로 똑똑해졌다
가정용 컴퓨터 PC는 수퍼 컴퓨터와 일대일로 비교하면 연산 능력이 한참 떨어진다. 하지만 PC 수천 대를 케이블로 병렬 연결하면 수퍼 컴퓨터 수준의 연산 능력을 가진다고 한다. ‘토이 스토리’ 같은 애니메이션도 소형 컴퓨터 수백 대를 병렬로 연결해서 만들었다.
인간의 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아이큐는 대단하지 않다. 가장 똑똑하다는 동물은 돌고래와 문어다. 문어의 아이큐는 80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아이큐가 160이 넘지 않는다면 문어보다 2배 이상 똑똑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인류가 어떻게 동물들은 하지 못하는 인공위성, 유전공학,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인간의 뇌는 병렬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케이블도 없이 우리의 뇌는 병렬로 연결될 수 있었을까? ‘언어’를 통해서다. 대화를 하면 서로의 뇌가 연결되는 효과가 생긴다. 그런데 언어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어야만 연결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은 ‘문자’를 발명했다. 플라톤의 책을 읽으면 나는 9000㎞ 떨어진 그리스에 2500년 전에 살았던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과 뇌가 연결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12년 정규교육을 받고 졸업하면 인류 문명사 5000년 동안 가장 똑똑한 사람 수천 명의 뇌와 병렬로 연결되는 효과가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연결로 똑똑해진다.
공간적으로 인간의 뇌를 병렬로 연결시키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교통수단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말, 범선, 기차, 자동차, 비행기같이 교통수단을 발전시키면 시간 거리가 단축된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방법은 고층건물을 짓는 것이다. 파리가 7층짜리 건물로 만들어진 도시라면, 뉴욕은 20세기에 들어서 철근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30층짜리 건물을 만들었다. 뉴욕은 파리보다 밀도가 4배 높은 것이다. 이 말은 뉴욕 사람들은 하루 동안 만나는 사람의 숫자가 파리보다 4배가 많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창의적인 생각이 많이 만들어지고, 비즈니스 기회도 늘어난다. 뉴욕은 그렇게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는 도시가 되었다.
이후 아시아의 신흥 도시가 뉴욕을 롤모델로 삼아 고층건물을 지었다. 도쿄, 서울, 상하이가 그 뒤를 이었다. 고밀도의 도시를 만들자 나라는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부흥했다. 하지만 철근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로 만든 도시 밀도는 20세기 후반 그 한계에 다다랐다. 서울도 1990년대 들어서 인구 1000만 명을 넘긴 후 정체 상태다. 인류가 만든 도시라는 장치는 창의적 공간을 만드는 데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이를 극복한 방법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만들었더니 가상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정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창의적 시너지의 빅뱅이 일어난 것이다. 21세기 들어서 초고속 인터넷망과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그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되었다. 스마트폰은 인류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사람과 정보를 찾으려면 ‘검색’을 해야 한다. 덕분에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은 크게 성장했다. 그러다가 챗GPT가 나왔다. 이제는 일일이 검색하고 읽고 정보를 편집할 필요가 없어졌다. 챗GPT에 물어만 보면 인터넷상의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알려준다. 정보에 도달하는 시간을 수십 분의 일로 줄여주는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챗GPT는 ‘정보의 비행기’인 셈이다. 인간과 정보는 더욱 가까워졌고, 압축되었다. 챗GPT 하나를 통해서 수없이 많은 정보와 동시에 연결되는 연결고리를 가지게 되었다.
공간적으로 보면 인류 역사는 다른 사람과 연결의 밀도를 높여온 역사다. 챗GPT는 다른 사람과 병렬 연결의 양을 혁명적으로 폭증시킨 새로운 방식이다. 챗GPT는 번역을 통해서 모든 문화권, 시간, 공간을 뛰어넘어서 연결시켜준다. 지금의 인류는 역사상 가장 많은 다른 사람과의 연결, 다른 정보와의 연결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역사상 가장 똑똑한 인류가 되었다.
하지만 챗GPT는 문제점도 많다. 챗GPT 때문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이윤을 내는 데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금은 챗GPT 하나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의 일을 대체할 수 있다. 효율적인 인공지능을 개발한 몇몇 거대 기업만 살아남는 디스토피아가 예상된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치적으로 독재가 쉬워졌다. 둘째는 청년의 기회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챗GPT는 질문자에 따라서 답의 수준이 달라진다.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는 오히려 기회다. 하지만 신입사원이 해야 할 일을 챗GPT가 하다 보니, 청년들은 전문가까지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된다. 셋째, 챗GPT는 거짓말을 잘한다. 향후 인공지능이 만들 가짜 이야기, 가짜 영상, 가짜 뉴스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다.
인류는 농경지, 공장, 도시, 인터넷 가상 공간 같은 공간의 혁명을 통해서 진화 발전해왔다. 산업혁명으로 공장이 만들어지자 노동자 계급이 생겨났고,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은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되었고, 전쟁과 냉전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기술은 가치관 차이를 드러내고, 이후 갈등과 폭력이 뒤따른다. 챗GPT도 이런 패턴의 반복을 유발할 것이다. 각 분야에서의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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