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점검 거부, 자녀 채용 논란까지… 견제 안 받는 선관위
대선과 총선 등 국가 선거를 총괄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잇따른 논란에도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정부 권고나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면서 “치외법권의 무소불위 기관이 돼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선관위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면 오히려 중립성과 독립성이 흔들릴 것”이라고 했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선관위는 그간 각종 논란 때마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만큼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선관위는 최근 북한의 해킹 위협에 대해 국가정보원과 행정안전부가 보안 점검을 권고하자 “자체 보안 점검을 실시하겠다”며 거부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 등의 점검 과정에서 선관위 내부 의결이나 판단 과정 등 고유 업무의 중립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관위는 작년 대선에서 투표 용지를 소쿠리 등에 담아 운반하는 관리 부실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했는데, 당시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는 감사원의 직무 감찰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대신 선관위 측은 “투표지 관리 부실과 관련해 자체 특별 감사를 두 달간 실시해 혁신안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헌법상 독립기관을 명분으로 내세운 선관위가 외부 견제의 무풍지대에 있으면서 사실상 ‘외딴섬’처럼 고립돼 각종 부작용이 나온다는 지적도 있다. 고위층의 연이은 자녀 채용 논란이 단적인 사례다. 직전 선관위 사무총장(장관급)이었던 김세환 전 총장은 지난 2020년 강화군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아들이 선관위로 이직했고, 6개월뒤 7급으로 승진하며 이해 충돌 논란이 제기됐다.
그런데 현 박찬진 사무총장의 딸 역시 광주 남구청에서 근무하다 작년 선관위에 채용됐고, 송봉섭 현 사무차장(차관급)의 딸도 충남 보령시 공무원으로 일하다 2018년 선관위에 채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선관위 측은 “채용 절차에 어떤 특혜도 없었다”며 ‘고용 세습’이라는 지적을 부인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장차관급인 선관위 고위직마다 연달아 자녀 채용 논란이 불거지는 조직이 정상이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 업무의 특성상 국회 차원의 견제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걸면 걸리는 게 선거법이라 의원들에게 선관위는 갑”이라며 “국정감사에서 선관위를 깨면 바로 지역구 선관위를 통해 각종 견제가 들어온다. 의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선관위”라고 했다. 선관위를 피감 기관으로 두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국회에서 견제를 하려 해도 여야가 손발이 맞아야 하는데 야당 등에서 ‘선관위 길들이기 아니냐’ 이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선관위가 선거 때마다 정치 행위를 한다는 지적도 줄곧 나왔다. 2020년 총선에서 당시 야당이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의 ‘민생 파탄’ 투표 독려 피켓은 불허하고,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친일 청산, 적폐 청산’ 문구는 허용하는 식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치러진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여성 단체가 제작한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현수막을 선거법 위반을 이유로 불허했다.
헌법 전문가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통화에서 “선관위도 헌법기관이지만 감사원도 헌법기관이다. 특히 해킹 같은 국가 정보와 안보에 관한 문제는 아무리 헌법기관이라도 ‘우리가 독자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며 “선관위를 헌법기관으로 두는 이유는 선거 관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소쿠리 투표’처럼 헌법 취지에 어긋나는 선거 관리를 했다면 당연히 감사원법에 의해 감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 측은 “작년 대선 이후 내부 감사기구를 사무처에서 독립시켰고 감사 책임자 역시 개방형 직위제로 채용하기로 했다”며 “헌법기관으로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내·외부 통제 기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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