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우회전 가속페달, 강원특별법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모든 운전자는 우회전 시 횡단보도 앞에서 무조건 일시 정지해야 한다. 보행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다. 3개월 계도기간 동안 교통사고가 유의미하게 줄었지만, 본격 단속이 시작되면서 운전자들 반발도 나오는 모양새다. 하지만 시민들 대부분은 바뀐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시민들이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아도 법을 지키는 이유는, 자고로 법이란 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도덕이며, 법의 취지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힘 있는 정치 집단은 다르다. 마음에 안 드는 법은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특별법’을 동원해서 망가뜨리고 비켜간다. 지난 2월 강원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내용은 가히 경악할 만한 수준이었다. 각종 환경 법안을 무력화시키는 수준으로 강원지역의 ‘자치권’을 요구하면서도 중앙정부는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법안 발의의 탈을 쓴 총선 홍보물’이겠거니 싶어서 상식 이하의 법안이 실제로 통과될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헛웃음 중에 쓴웃음이 나오는 여러 포인트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발의자 86명 중에 대표발의자인 허영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의원이 50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제주 제2공항 협의, 4대강 보 활용 지시 등 환경 현안이 쏟아지는 와중에 강원 난개발법을 야당이 우르르 나서서 발의한 것이다. 사실 “경제적 타당성과 환경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우리 당 지지 지역에서 표를 얻기 위해서) 이곳만큼은 정말 특별한 개발과 지원이 필요해!”라는 식의 내로남불은 익숙하다. 그런데 수도권 상수원을 위협하는 법안에 서울·경기·인천 의원 31명이 이름을 올렸고, 진정성 있게 기후위기를 대응하던 의원들도 눈에 띈다. 입맛이 쓰다.
총선 홍보물인 줄 알았던 강원특별자치도법 개정안에 최근 권력의 힘이 실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야당이 주도하는 법안의 경우 국민의 염원이 담겨도 국회 문턱을 넘기 힘든 경우가 많지만, 정부와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질세라 힘을 싣고 있으니, 어쩌면 특별법이 결국 통과될지도 모르겠다. 그래. 정치인이라면 법보다 표를 좇고 싶을 수도 있다. 나도 가끔은 법 없이 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지키기 싫다고 해서 힘으로 법체계를 흔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환경은 보전하면 돈이 되지 않지만, 파괴하면 돈이 되는 시절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지역이 특별법으로 환경 훼손의 자치권은 높이고, 사업 성과는 자율적으로 만들고, 중앙의 지원을 받으면 정말 지역경제가 활성화될까. 생명과 안전은 뒷전에 두고 특별법을 동원해 우리 동네 사거리만 우회전 가속페달을 밟는 구태정치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
한국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지 오래고, 지방 인구는 소멸되고 있다. 반면 기후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세계적 투자는 활성화되고 있다. 바로 이런 때 필요한 것이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정치의 과정이다. 자원의 파이를 각 정당의 지지 지역으로 나눌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전하는 것이 곧 지역경제가 될 수 있도록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도’ 등을 과감하게 확대할 때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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