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71) 전남대 용봉관
다시 5월이다. 5월이 되면 우리는 광주를 잊을 수 없다. 아니 잊어서는 안 된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오월의 노래’ 가사처럼 5월이 되면 우리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인다.
사진 속의 건물은 전남대의 옛 본관인 ‘용봉관’이다. 2020년 국가등록문화재가 된 용봉관은 1957년에 준공된 4층 벽돌 건물로, 1996년까지 대학본부로 사용되었다. 용봉관은 전남대 정문과 일직선상에 있다. 다시 말해 이 건물은 1980년 5월의 현장을 지켜본 역사적 증인인 것이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이후 전두환의 신군부가 12·12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사실상 장악한 상태였지만, 1980년의 봄은 뜨거웠다. 1968년 ‘프라하의 봄’에 빗대어 ‘서울의 봄’이라 불린 그해, 3월에는 ‘학원 민주화’ 열풍이 불었고 5월15일 서울역 광장에는 10여만명이 모여 ‘계엄 철폐’를 외치며 민주화 일정 제시를 요구했다.
통한의 ‘서울역 회군’이 이루어지면서 시위대는 썰물처럼 자진 해산했고, 만약에 휴교령이 내려지면 모두 교문 앞에 모이자는 약속이 공유되었다. 하지만 5월17일 24시 ‘5·17 쿠데타’가 일어나고 아침이 왔을 때, 전남대 정문 말고 자기 대학의 정문 앞에 모인 대학생들은 없었다. 오직 전남대 학생들만 약속을 지켰다. 거기서 광주민중항쟁은 시작되었다.
당시 모든 것을 지켜본 용봉관은 개교 60주년을 맞은 2012년 ‘대학역사관’으로 바뀌어 개관했다. 1971년의 사진과 2022년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몇 가지 달라진 것이 보인다. 1971년 사진에는 ‘자조정신, 자립경제, 자주국방’이라는 당시 박정희 정부의 표어가 걸려 있고, 건물 꼭대기에는 3개의 깃대봉이 있다. 국기 게양과 하강 때 모두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해야 했던 그 시절에 깃대봉은 매우 중요한 설치물이었다. 대신 지금의 사진에는 정중앙에 큰 시계가 있다.
대학역사관 1층에는 ‘5·18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벽에는 전남대 출신의 혁명시인 김남주의 시 ‘자유’가 설치되어 있다.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 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그때의 정신이 퇴색되고 박제화되어 버린 지금, 김남주 시인의 외침이 가슴에 절절하다.
김찬휘 녹색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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