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베이비 박스 찬반논란
주택가 골목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울고 있었다. 옆에는 출생일 등이 적힌 쪽지가 붙어 있었다. 아기를 담은 ‘베이비 박스’였다. 종교단체 주도로 2009년 서울 관악구에서 비롯됐다.
베이비 박스가 올해로 설치된 지 15년째다. 누군가에게는 벼랑 끝의 마지막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종교단체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런저런 사정으로 맡겨진 아기가 2천220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5년 군포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에 맡겨진 144명까지 포함된 수다.
도대체 어떤 이들의 딱한 사정이 있었을까. 대부분은 미혼모들이다. 지난달까지 베이비 박스에 아기를 맡긴 미혼모 비율은 84.4%, 지난해는 68.9%였다. 베이비 박스를 운영 중인 종교단체의 분석이다. 이혼 가정이나 혼외 출생, 불법 체류 외국인 자녀 등도 포함됐다.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고시원이나 화장실, 모텔 등 병원 이외의 장소에서 아이를 출산해 베이비 박스로 데리고 온 경우는 지난해 기준 12.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비 박스가 아기 유기를 조장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베이비 박스가 아니었다면 정부가 지원하는 사회보장시스템이나 미혼모나 한부모가정을 지원하는 사회복지법인 도움을 받았을 텐데, 베이비 박스 때문에 손쉬운 선택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베이비 박스 운영기관이 미혼모를 대상으로 지원한다는 상담 등의 서비스는 이미 지자체도 시행 중이다. 긴급 지원이 필요한 산모가 발생하면 연계 기관들이 일률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 2030세대가 육아비용 등을 이유로 아기 낳기를 꺼리고 있어서다. 태어난 아기를 잘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숙제다.
베이비 박스가 미혼모와 아기를 살리는 수단일까, 아니면 영아 유기를 조장하고 아동인권을 침해하는 도구일까. 논란은 여전히 팽팽하다.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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