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제도 개선? 그 이후가 문제다
정부 부처들이 정책을 내놓을 때 많이 쓰는 말이 있다. ‘제도개선’ ‘규제개혁’이다. 그 많은 개선과 개혁들은 얼마나 효과를 발휘했을까. 실패한 정책도 많은데, 실패했다면 그 이유는 뭘까. 최근 일어난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번 주가 폭락 사태 역시 정부 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개인전문투자자의 자격 요건을 완화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개인전문투자자란 고위험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개인투자자를 일컫는다.
의도는 좋았다. 정부는 벤처·혁신기업의 성장을 위해 10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을 자본시장으로 끌어오겠다며 오래전부터 ‘모험자본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 방안 중 하나가 2019년 시행된 개인전문투자자 자격 요건 완화다. 개인전문투자자의 소득·자산 기준 등을 낮추고, 전문투자자 심사와 등록을 금융투자협회가 아닌 증권사가 진행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금융당국은 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제도개선’으로 개인전문투자자 수가 최대 4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기대대로 2018년 말 2193명이던 개인전문투자자는 2021년 말 2만4365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정작 이를 널리 알린 것은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라는 부작용이다. 급증한 개인전문투자자는 위험성이 높아 이들만 거래할 수 있는 차액결제거래(CFD)로 몰려갔다. 2018년 말 7000억원이던 CFD 잔액은 지난 2월 말 3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증거금의 2.5배까지 투자할 수 있는 파생상품인 CFD가 늘면서 시장의 변동성은 급격히 커졌다. 주가조작 세력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등 여러 가지로 주가조작에 유리한 CFD를 이용해 주식을 매수한 탓에 위험은 더욱 커졌다. 결국 아직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가 방아쇠를 당기면서 주가 폭락 사태가 일어났다.
금융시장은 거품과 급등락, 시세조종 등을 통한 비윤리적 이익추구 시도가 상존하는 곳이다. 금융당국이 이런 시장에 규제를 완화한 후 감시는 게을리해 사고가 터진 것이다.
우리 사회는 20여년 전에도 정부 정책 때문에 홍역을 겪었다. 1990년대 후반 시작된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이다.
마찬가지로 의도는 좋았다. 당시 정부는 자영업자의 과표양성화 제고를 통해 공평과세를 구현하겠다며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을 도입했다. 1999년에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를 폐지하고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만들었다. 2000년에는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 제도까지 시행했다. 그 전까지 현금을 주로 사용하던 사람들도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서라도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그 결과 1998년 60조원대이던 신용카드 사용액이 2002년에는 600조원대로 늘었다. 기대한 대로 자영업자들에게 걷는 세금도 늘었다.
그런데 부작용이 상상 이상이었다. 수백만명이 카드빚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들에게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못한 카드사들도 줄줄이 무너졌다. 외환은행이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매각된 계기도 외환카드 부실 때문이었다. 이른바 ‘카드대란’이다.
모든 부문에 문제가 있었다. 대기업, 금융사들은 신용카드 사업이 돈이 된다고 보고 너나 할 것 없이 카드사를 만들었다. 카드사들은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아무한테나 카드를 발급해줬다. 쉽게 신용카드를 받은 사람들은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내 돈처럼 카드빚을 쓰다가 신용불량자가 됐다. 정부는 문제가 곪아터진 다음에야 뒷수습에 나섰다. 이번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도 규모만 작을 뿐 그때와 전개 과정은 비슷하다.
세상에 의도가 나쁜 정책은 없다. 윤석열 정부의 첫 사회부총리인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을 낙마시킨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방안도 취지는 좋았다. ‘유아를 공교육에 조기 편입시켜 교육 격차를 해소’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하니까. 하지만 학부모들은 ‘사교육 시기만 빨라질 것’이라며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났다.
국민은 정부 정책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가 아니다.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반대한다. 잘해오던 일도 의무의 족쇄가 풀리는 순간 안 하려는 경향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책들은 사회에 자리잡는다. 정부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다. 의도한 결과를 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발표 이후로도 끊임없이 살펴봐야 한다. ‘제도개선’ ‘규제개혁’이라며 일단 던져만 놓고 뒷짐지고 있어서는 제2, 제3의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가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김석 경제에디터 s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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