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의료 대란' 부른 간호법, 민주당은 몰랐나

김병헌 2023. 5. 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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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을 놓고 양분된 보건의료계 직역 단체 극한 대립
민주당 처리 방식은 잘못...대통령 거부권 가부 떠나 국민 피해

대한의사협회·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보건복지의료 단체 회원 등 참가자들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면허박탈법 폐기 2차 연가투쟁/보건복지의료연대 총선기획단 지역본부 출범식에서 간호법 폐기가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경쟁과 비교라는 것이 생산적이고 발전적 요소이지만 한편으로는 본인이나 속해있는 집단에 대한 이기주의나 우선주의도 잉태한다. ‘우월감’과 ‘열등감’.‘내로남불’ ‘갑질'도 여기서 비롯된다. 자만이나 교만도 같은 종류다. 이른바 잘못된 경쟁의식, 즉 ‘비교의식’이다. 종교적 소신이 아니라도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주제와 처지를 제대로 알고 살면 불행할 이유도 분쟁의 시작도 없을 듯싶다. ‘사람은 누구나가 다 존귀하다’라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을 갖는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모두가 공정과 정의. 상생,협력을 부르짖는 이유도 같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통과된 간호법 제정안을 놓고 양분된 보건의료계의 직역 단체들의 극한 대립도 해답은 같지만 실천이 어려워 모두가 걱정이다.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실제 보건의료계가 크게 간호사와 의사및 간호조무사 등으로 갈라진 ‘벼랑끝 대치’는 치킨게임 양상을 띠면서 더욱 우려스럽다. 의사협회, 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단체가 참여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 제정안에 반대해 11일 2차 부분파업에 나섰다. 이날 부분 파업에는 앞서 3일 진행된 1차 부분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치과의사협회도 참여해, 11일은 동네 의원은 물론, 치과 곳곳이 휴진에 들어갔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간호법 및 의료법 강행 처리 더불어민주당 규탄대회"도 물론 열렸다.

간호법 국회 통과 촉구 문화마당이 지난달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남용희 기자

보건복지의료연대에는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방사선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대한임상병리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치협)·한국노인복지중앙회·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 13개 단체가 참여 중이다. 이에 맞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대한간호협회등 간호사 단체에서는 지난 10일 단식에 돌입하는 등 반발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간호대학 교수 단체와 학생들까지 법안 지지 성명을 내고 있다. 국회는 사실상 중재를 방기한 상태다.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오는 19일이다.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16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한 것으로 전망된다.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 회장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간호조무사 학력제한 폐지없는 간호법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남용희 기자

거부권이 행사되면 간호법은 국회에서 ‘재표결 후 폐기’라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간호사들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간호사 단체는 즉시 단체행동에 들어가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14일까지 회원들을 대상으로 투쟁 방법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단체행동 의견조사 결과는 15일 공개한다고 밝혔다. 간호법이 시행되면 보건의료연대 소속 13개 단체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오는 17일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간호법 제정안의 쟁점이 뭐길래 양측은 극단으로만 치달을까? 의사들이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간호사의 단독 개원이 가능해지고 의사 진료 범위 침범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간호법 제정안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의료기관에서 지역사회로 넓어지고 처우 개선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당장 보건의료계에 변화가 일어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지만 의사들은 반대한다. 간호사 처우개선은 간호법이 아니라,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간호사협회은 "간호법은 간호사들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 다양화되는 간호업무에 발맞춰 숙련된 간호사를 양성해 국가감염병 위기뿐만 아니라 저출산 초고령사회에 대비하고 국민 건강을 돌보기 위한 법"이라고 맞선다. 근무 환경에 따라 의사의 ‘진료 보조’라는 명목하에 간호와 더불어 행정, 사무, 응대 등을 맡는 업무 범위에 합리적 개선도 강조한다. 그 외 보건의료직역들이 간호법을 반대하는 이유도 의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간호사 업무 영역이 의료기관에서 지역사회로 넓어지면 업무 침해가 잦아지고, 생존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의사 다음으로 반발이 심한 간호조무사는 간호법이 간호사들의 간호조무사에 대한 비하와 차별의식을 버리고 간호업무를 함께 수행하는 간호인력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줄 여지를 더욱 줄인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지난 3월 16일 오후 1시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에 있는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앞에서 충북의사회 등 지역 13개 보건복지의료단체들이 민주당의 일방적인 간호법 및 면허박탈법 패스트트랙 처리에 대한 항의를 하고 있다. /청주=이주현 기자.

간호법제정으로 불거진 직역 간의 불만 해결도 결국 공생 공정 상생 협력과 크게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등 직역 간의 본연 업무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자, 과거 의사 중심이었던 사회가 만들어낸 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해답도 먼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사안의 근본적인 갈등 원인은 직역 간 역학관계나 묵혀있던 갈등과 불만 등을 전혀 조율하지 않은 채 간호법 제정안을 무조건 국회에서 통과시켜놓음으로써 양분된 보건의료계 직역 단체들의 극한 대립을 불렀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원죄는 민주당 주도의 패스트트랙이라는 지적이다.

중요한 국민건강과 밀접하고 직역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한 사안을 거대 야당이 정치 공학적이나 정치 전략적으로 처리해 탈이 난 셈이다, '검수완박법'의 판박이다. 자당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을 팔아먹을 수도 있을 법한 무식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정부 중재는 이제 양측에 전혀 먹히지 않는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별도로 중립적인 위원회를 만들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직역 업무 범위를 조정하는 등 원점에서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상생협력의 공정성은 우리사회에서 무수히 강조되어 왔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상생이고, 어떻게 협력해야 하고, 어떤 공정성의 기준으로 직역간에 중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각도의 논의가 필요했지만 없었다. 간호법 제정안도 국민 건강을 함께 잘 지키는 게 본질이라면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처리방식은 정말 잘못됐으며 아무리 반성해도 지나치지 않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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