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서대문을 복원하겠다고? 서울시 구상이 황당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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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지난달 26일 ‘제2기 역사 도시 서울 기본계획’이란 것을 발표했습니다. 이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돈의문(敦義門·서대문)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이미 2009년 오세훈 시장 시절에 추진했다가 백지화된 계획을 같은 시장 임기 중에 또 들고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말이 되는 얘긴가, 따져보기 전에 돈의문은 어떤 문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돈의문은 1396년(태조 5년) 한양도성이 준공될 때 다른 일곱 개 문과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위치는 지금의 돈의문터가 아니라 사직동 고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1413년(태종 13년) 최양선이라는 풍수가가 임금에게 “이 고갯길은 경복궁의 팔과 같은 곳인데 지맥을 끊고 있다”며 길을 폐쇄해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태종은 이 말을 받아들여 원래 돈의문 남쪽에 새로운 서대문인 서전문(西箭門)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좀 희한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초 서전문을 세우려 했던 장소가 하필 이숙번(1373~1440)의 집 앞이었던 것입니다.
이숙번. 드라마 ‘용의 눈물’ 등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태종의 최측근 권신, 바로 그 인물입니다.
자기 집 앞에 서대문이 생기면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 시끄러워질 게 싫었던지 이숙번은 임금에게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소신의 집 말고 인덕궁(仁德宮) 앞 옛길이 적당한 듯 합니다.”
인덕궁은 조선 2대 임금이자 태종의 형인 상왕(上王) 정종의 집이었습니다. 신하 된 사람이 감히 상왕 집 앞으로 대문 위치를 바꿔야 한다고? 그런데 ‘태종실록’의 기록은 좀 기가 찹니다. “조정에서 이숙번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대로 따랐다.” 예전 임금보다 지금 권세를 가진 신하가 더 위세가 셌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전문은 지금의 경희궁 근처 언덕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서대문 역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422년(세종 4년) ‘언덕이어서 통행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헐어내고 지금의 신문로 강북삼성병원과 경향신문사가 있는 사거리 근처에 새로 문을 세우고 다시 돈의문이라는 옛 이름을 붙였습니다.
첫 번째 돈의문이나 서전문과 구별하기 위해 이 돈의문을 ‘새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새문’이라는 명칭이 지금도 ‘새문안교회’나 ‘신문로(新門路)’ 같은 지명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죠.
처음 ‘새문안(새문 안쪽)’이란 말을 듣는 사람들은 “새문? 새로 만든 문이라는 말일텐데, 그 문이 도대체 뭐냐”는 의문을 가지기 마련인데, 그게 무려 600년 전 세종 때 생긴 문이라니… 지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인지 알려주는 예라 하겠습니다(’신문로’는 신문사가 여러 곳 있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 아닙니다).
1899년 서울에 전차가 개통된 이듬해 전차는 서대문까지 연장됐습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전차 선로가 돈의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초 이곳의 선로가 단선(單線)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1915년 이곳의 전차를 복선화하기로 결정하고, 돈의문을 철거해 버렸습니다. 돈의문 석재는 주변 도로 공사 자재로 사용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서대문의 존재는 ‘서대문구’ ‘서대문역’ 같은 지명으로만 남았습니다. 사실 서대문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서대문역으로부터 좀 떨어져 있었습니다. 서대문구가 아니라 사실은 종로구 평동과 중구 정동 사이에 걸쳐 있었던 것이죠.
문제는 그 이후 도시가 발전하면서 원래 서대문이 있던 곳 주변에는 대형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섰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이로 왕복 8차선 도로가 놓여졌는데, 지금도 출퇴근 시간마다 교통체증이 심한 곳입니다. 이곳에 돈의문을 복원한다면? 그것은 말이 ‘문’이지 교통을 단절하는 ‘벽’이 될 게 뻔합니다.
이게 과연 가능한 얘긴지 전문가에게 물어봤습니다. 먼저 건축사 전공으로 문화재위원인 전봉희 서울대 교수. 그는 얘기를 듣자마자 “복원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통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돈의문 복원이 가능하겠습니까?
“경복궁도 지금 복원하고 있는 상황이니 고종 연간 모습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재현(再現)을 하는 것 자체는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원래 돈의문이 있던 자리에 다시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통이 두절되잖아요. 지금도 출퇴근 시간마다 막히는 곳인데…”
-광화문 월대처럼 우회로를 만들 수도 없겠군요.
“거긴 그럴 공간이 없어요.”
다음은 국내 최고 건축사 원로로 꼽히는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 그는 지난번 ‘돌발史전: 하늘에서 보면 大日本이 있다고? 웃기지좀 마세요’(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3/04/21/SG4BD2NIYVCDJODME47BFC42PY/)를 잘 봤다며 자신을 언급한 것에 대해 고마워하며 “너무 옛날 얼굴사진을 실은 것 아니냐”며 웃었습니다.
-돈의문을 복원한다고 하는데요.
“어디다요? 그건 불가능해요. 지도를 보세요.”
-제자리에 지을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1994년에 혜화문(동소문)을 복원했는데 원래 자리는 땅이 깎여나갔고 도로가 지나가는 곳이어서 결국 원래 위치에서 떨어진 곳에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럴 경우 복원의 진정성(authenticity)에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비싼 돈 들여서 다른 곳에 짓는다면 안 짓느니만 못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이런 방법을 떠오르는 분도 있을 겁니다. “돈의문을 짓고 도로가 지하로 지나가게 하면 되지 않느냐?” 네. 석촌동 백제고분 복원 같은 경우에 그런 방법을 써서 훌륭하게 해결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뿔싸.
신문로 땅 밑으로 지나가는 지하철 5호선은 어떡하고요?
김정동 교수는 “만약 원래 자리에 돈의문을 복원한다면 방법은 단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로터리죠. 예전 숭례문(남대문)처럼요. 하지만…”
‘하지만’ 뒤에 무슨 얘기가 나올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자, 현재 돈의문터의 지도를 보시죠. 빨갛게 표시한 부분이 돈의문이 있던 자리입니다.
만약 돈의문을 복원하고 그 주변에 로터리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건물들을 철거해야 할까요? 지도 위에 로터리를 그려 표시를 해볼까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이게 과연 가능한 얘길까요? 만약 실행한다면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철거 대상이 되는 건물의 관계자들은 과연 순순히 철거에 응할까요? 철거돼야 할 장소들 중에는 현대사에서 중요한 곳들도 있을 수 있는데, 돈의문 복원이 과연 그 모든 곳들보다 최선에 놓여야 할까요?
도대체 서울시가 돈의문을 굳이 복원하려는 이유는 뭘까요. 4월 26일 보도자료 속에서 딱 한 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뭐라고? “4대문 중 유일하게 복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아예 4대문 안에 있는 건물을 조선시대 한옥으로 다 바꾸고, 4대문 안에서 살거나 근무하는 사람들은 한복을 입도록 하는 건 어떨까요.
서울시의 계획에 대해 조선일보가 문제제기를 한 4월 27일, 서울시는 해명 자료를 내고 “돈의문 복원을 위한 예산은 현재 2억원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이게 뭔 소린가 하면, 돈의문 복원을 위한 ‘기본 구상 용역’에 2억원 잡힌 것 말고는 예산이 확정된 것이 없으니 아직 거액이 투입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서울시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돈의문 복원은 10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사업으로 현재 기본 구상 중인 단계다. 앞으로 역사적 고증과 교통 상황, 소요 예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문가·시민들과 함께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부와 함께 검토해 나가도록 하겠다.”
할 말은 많지만 세 가지만 짚고 이 글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10년 이상 장기 사업으로 돈의문을 복원한다면 겨우 2억원만 들겠는가? 반대로, 결국 짓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면 2억원은 버리는 돈이 아닌가? 2억원은 버려도 되는 껌값인가?
둘째, 전문가·시민들과 함께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부와 함께 검토해 나간다면, 없던 공간이 어디서 갑자기 생기기라도 하는가?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대문을 복원한다면,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가를 먼저 설명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혹시 전문가·시민들과 함께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부와 함께 검토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려는 것은 아닌가?
문득 세금이 아까워집니다.
(※附記: 기사가 게시된 뒤 서울시 측에서 “돈의문은 아직 장기 구상 단계지만, 원래 돈의문이 있었던 높이대로 지반을 현재보다 3.6m 올리면 그 밑으로 기존 왕복 8차선 도로를 지하화하면서도 지하철 5호선 운행에 지장을 끼치지 않도록 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지하철 5호선 노선이 상당히 깊은 곳에서 운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향후 지반을 높이고 도로를 지하화하는 공사가 과연 실행이 가능한 것인지, 언제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걸릴지, 공사 기간 동안 교통 문제는 어떻게 될지, 예산은 얼마나 들지 등 구체적인 요소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아직 구상 단계라 그렇다는 겁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설명해드립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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