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채 발견된 전세사기 피해자, 집앞 국화꽃 놓은 이도 피해자였다

고유찬 기자 2023. 5. 1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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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양천구의 한 빌라 집 앞에 전세사기 피해자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고유찬 기자

지난 8일 서울 양천구의 한 빌라에서 30대 전세사기 피해자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11일 오후 A씨 집 앞에는 흰 국화꽃 한 다발이 놓였다. 꽃다발에는 “이제는 힘든 거 없이 푹 쉬세요” 등의 내용이 담긴 위로의 쪽지가 붙어 있었다.

숨진 A씨 집 앞에 놓인 꽃과 쪽지는 이웃 주민 이모(35)씨가 놓아둔 것이었다. A씨는 빌라와 오피스텔 등 주택 1139채를 보유하고 전세를 놓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김모(43)씨 사건의 피해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사기 피해자 사망이 확인된 것만 4번째로 서울에서는 처음이다.

재작년 8월 입주한 이씨 또한 A씨와 같은 전세사기 피해자로, 빌라 주인이자 또 다른 임대업자 김모(51)씨에게 전세사기를 당했다. 이씨는 “평소 돌아가신 A씨를 알고 지낸 것은 아니지만, 사망 소식을 듣고 같은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너무 공감이 가 울컥해 눈물이 났다”며 “추모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꽃을 사와 문 앞에 두고 간단한 메모도 남겼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의 상황에 대한 답답한 마음도 드러냈다. 이씨는 “계약 이후 집주인이랑 연락이 단절돼 보증금을 어떻게 받을지 막막하다”며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면 충격을 받으실까 두려워 이야기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같은 빌라에 사는 최모(42)씨 또한 사망한 A씨와 같은 임대업자 김씨에게 전세사기를 당했다. 재작년 4월에 입주한 최씨는 계약 기간이 지났음에도 전세금 3억 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최씨는 “전세금 3억원 중 2억4000만원을 대출받았다”며 “최근 금리가 너무 올라 매달 월급의 반 이상인 120만원 정도를 이자로 부담하고 있다”고 했다.

2021년 7월에 입주한 김모(61)씨 또한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다. “신축 빌라여서 계약 당시에는 등기부등본도 깨끗했는데 올해 등기부등본에 압류가 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김씨는 “계약 과정에서 전셋값과 매매가격이 똑같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갭투자 방식의 전세사기였다”고 털어놨다.

부동산 등기부등본과 빌라 관리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A씨가 살던 이 빌라에는 총 11세대가 살고 있는데, 이 중 7세대가 압류 상태로,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4세대 중 3세대는 아직 압류가 되진 않았지만 임대업자가 작년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것으로 알려져 전세사기 위험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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