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는 누가 지내나’ 질문에 정실 맏아들 → 장남 → 맏이…30여년 걸쳐 바뀐 대법 판례
2008년 “협의해 정하라”
안 될 땐 ‘아들’ ‘나이순’
하급심, 차남 손 들어주기도
‘제사는 누가 주재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법원의 답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적장자’였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사망한 부모의 유해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권한은 ‘정실이 낳은 장남’에게 있었다.
하지만 2008년부터는 맏이가 아닌 아들이나 딸도 제사를 주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존 판례를 파기하고 ‘망인의 재산을 물려받는 공동상속인들끼리 협의해 제사 주재자를 우선 정하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면서다.
당시 전원합의체는 판결문에서 적서 간 차별이 사라지고 남아선호사상이 쇠퇴하는 등 시대상이 변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상속인들 간의 협의와 무관하게 적장자가 우선적으로 제사를 승계해야 한다는 종래의 관습은 상속인들의 자율적인 의사를 무시하고 적서 간 차별을 두어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기초로 한 변화된 가족제도에 원칙적으로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면서 “공동상속인들 간 협의로 제사 주재자가 정해져야 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한 것이다.
문제는 ‘협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였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협의가 안 될 경우 ‘적서를 불문하고 망인의 장남이나 장손에게 제사 주재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동상속인 중 아들이 없을 경우에만 장녀가 제사 주재자가 된다고 봤다. 즉 혼외자(서자)인지와 상관없이 ‘아들 먼저’, 그다음에 ‘나이순’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모든 대법관이 이러한 기준이 합당하다고 본 것은 아니다. 일부 대법관들은 공동상속인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다수결로 제사 주재자를 정하거나 법원이 개별 사건에서 당사자들의 주장을 듣고 심리해 정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지난해 하급심에선 대법원 판례를 뒤집은 결정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21부(재판장 임정엽)는 지난해 8월 장남이 모친의 시신을 인도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장남 측 청구를 기각하고 차남에게 시신을 인도하라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제사가 가계계승보다는 망인에 대한 추모의 성격이 더 강해지고, 법 질서가 호주제 폐지나 형제자매의 동등한 상속분 인정 등 가족관계 내에서 개인의 의사와 가치가 존중되고 양성평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돼 왔다”면서 “이를 감안하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상속인들 간 협의가 안 될 때 장남 등이 당연히 제사 주재자가 된다는 인식이 널리 용인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1일 한 발 더 나아가 상속인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직계비속 중 가장 맏이’를 제사 주재자로 우선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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