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영웅 잠든 단양 고수리 격전지서 70년 만에 유해발굴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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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25 전쟁 당시 단양 고수리 일대에선 1주일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앵커>
국군 8사단은 북한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고수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고수리 일대의 유해 발굴이 시작됐습니다.
지난 2003년부터 고수리 일대에서는 아군의 유해 33구, 적군 20구, 전투 유품 7백여 점이 발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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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25 전쟁 당시 단양 고수리 일대에선 1주일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북의 남하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군사가 전사하거나 실종됐는데요.
국방부가 이 일대 유해 발굴을 위한 첫 삽을 떴습니다.
박언 기자입니다.
<리포트>
1950년 단양군 고수리 431고지에서 벌어진 단양 전투.
국군 8사단은 북한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고수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북한군은 요충지인 고수리를 향해 맹렬히 돌격했고, 국군은 1주일간의 격전을 치렀습니다.
남진 지연이라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국군은 이후 인접한 경북 영주의 풍기로 철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군 158명이 전사하고, 308명이 실종되는 피해를 봤습니다.
<인터뷰> 염관복 / 단양군 재향군인회장
"1950년 7월 6일부터 7월 12일까지 7일간의 전투로 인하여 낙동강 전선에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던 고수리 일대의 유해 발굴이 시작됐습니다.
육군 37사단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오는 15일부터 3주 동안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발굴 작전을 펼칩니다.
<인터뷰> 박민승 / 육군 37사단 단양대대장
"군 단독적인 판단이 아닌 지역 어르신의 증언과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사전 탐사를 했고, 현 위치에 유해가 있을 것으로 어느 정도 확인이 됐기 때문에.."
지난 2003년부터 고수리 일대에서는 아군의 유해 33구, 적군 20구, 전투 유품 7백여 점이 발견됐습니다.
남한강에 배수진을 치며 북한군의 침공을 막아내다 장렬히 산화한 이름 모를 전사자들.
70여 년이 흘렀지만, 호국영웅을 한 명이라도 더 찾기 위한 유해발굴은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CJB 박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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