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세계 최악의 극단적 선택, 나쁜 국가와 사회의 공동범죄다
반인간화·반생명화
정점의 지표는
극단적 선택과 저출생이다
한국 사회는
출생률 최저·자살률 최고라는
희귀한 쌍둥이 조합을
세계 최초로 가장 오랫동안
석권하고 있다
10~39세의 경우 극단적 선택이
다른 모든 사망원인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또 남성 대비 여성 자살률 역시
OECD 회원국 중 1위이다
한국은 분명 자멸해가고 있다
한국에서 극단적 선택 급증은
체제 전체의 요인 때문이다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극단 선택
즉 타살인 것이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국가와 기업과 사회가 범인이다
국가는 인간들로 구성된다. 인간들이 사라지면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아무리 강대한 국력, 높은 경제수준, 첨단의 기술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인간이 감소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는 국가로서 존속할 수가 없다. 인간 스스로 자기 생명을 포기하고 자녀를 생산하지 않으면 국가는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이러고도 버틸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은 지금 누적된 선택으로 인해 스스로 국가로서의 존재를 마감할지도 모를 상황을 맞고 있다.
이 국가의 특별한 공적 성격이 많은 개별 인간의 존재 이유, 즉 자기 지속과 자기 연장의 근거를 박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공동체의 전체 모습과 공적 성격은 곧 전체 개인들의 개별 삶을 통해 드러난다. 즉 전체는 개인이다. 전체는 언제나 개인 삶을 통해 드러난다. 또 개인은 곧 전체다. 개인은 언제나 전체에 의해 구성된다. 한국 사회에서 전체에 관한 논의는 언제나 사회나 체제의 일반 성격과 연결 지어서만 진행된다. 또 늘 거기에 머물고 만다. 그러나 전체의 문제는 개인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다. 그 고리가 곧 공공성이다. 공동체의 성격과 개인들의 삶은 공공성을 고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성은 결코 전체 체제 차원의 논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간성과 개인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공공성의 목적은 모든 사람의 인간성과 주체성의 구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육아·교육·노동·임금·일자리·연금·복지 문제에서 높은 공공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 결과가 개별 삶들의 안정성·예측 가능성·주체성·평안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체제 전체’의 공공성은 바로 그 시점의 ‘개별 삶들’의 내용으로 직결된다. 공공성은 곧 개인성인 것이다. 인간 존재의 두 필수 요소인 유일성과 복수성(複數性)의 불가피한 공존을 말한다. 따라서 사회적 실존의 공적 회복은 모든 개별적 인간이 공통의 본질을 향유하는 통로가 된다.
우리는 지금 가장 두려운 사실 앞에 서 있다. 한국의 두 핵심적 인간지표가 반인간화·반생명화의 요체를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반인간화·반생명화 정점의 지표는 곧 자살과 저출생이다. 자살률은 기록적으로 높은 데 비해 출생률은 기록적으로 낮다. 그리하여 한국 사회는 ‘출생률 최저’·‘자살률 최고’라는 희귀한 쌍둥이 조합을 ‘세계 최초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석권하고 있다. 이 하나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반인간적·반생명적 실상은 증명되고 남는다.
1030 사망원인 1위는 극단적 선택
자살 사망자 수 추이를 보면 증가 속도에 가장 놀란다. 1983년부터 1992년까지 10년 동안 연간 자살자 수는 3000명대였다. 그러나 1993년 처음 연 4000명을 돌파한 뒤 3년 만인 1996년에는 5000명대, 1년 뒤인 1997년에는 6000명대, 다시 1년 뒤인 1998년에는 7000명대를 건너뛴 8000명대를 기록했다. 2003년에는 1만명대에 이르렀고, 2004년 1만1000명대, 2005년 1만2000명대, 2009년 1만5000명대를 기록했다.
그리하여 2011년 한국은 하루 43.6명, 33분에 1명이 자살을 하는 나라가 됐다. 자살자 수는 2011년 정점에 달했다가 이후 2012년에는 1만4000명대, 2014년 1만3000명대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2017년까지 1만2463명으로 감소세를 이어가던 자살자 수는 2018년 1만3670명, 2019년 1만3799명, 2020년 1만3195명, 2021년 1만3352명으로 1만3000만명을 웃돌았다. 그리하여 1983년 이후 2021년까지 총자살자 수는 무려 34만9544명에 이른다.
자살률은 80대 이상이 20대보다 4배 이상 높다. 2016년 한국의 세대별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을 보면 50대·60대·70대·80세 이상이 각각 32.5명, 34.6명, 54명, 78.1명으로 엄청나게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성의 경우는 48.3명, 55.7명, 90.3명, 150.5명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조차 없는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2018년과 2021년에도 80세 이상 남성 자살률은 138.5명, 119.4명으로 높은 수준이다.
이제 한국에서 자살은 10대부터 30대까지 다른 모든 원인을 제치고 사망원인 1위이며, 40대와 50대에서는 사망원인 2위이다. 자살은 암과 더불어 최고의 사망원인이다. 한국은 명백하게 자살국가인 것이다. 그러나 자살이 아니더라도 한국은 운수사고가 오랫동안 1~9세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였다. 2009년 자살이 사망원인 1위가 됐지만 1999년까지 10~30대 사망원인 1위는 운수사고였다.
2000년대 들어 사망원인은 전 연령대에 걸쳐 운수사고와 암, 두 개가 1위를 지속하다가 현재는 암과 자살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0대부터 50대에 걸쳐 자살은 사망원인 1위 또는 2위이다. 2020년 사망원인 구성비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은 10대 41.1%, 20대 54.4%, 30대 39.4%로 압도적 1위이며, 40대와 50대에서는 각각 20.8%와 9.9%로 암에 이어 2위이다.
그리하여 공동체의 미래를 담당할 10~39세의 경우 자살이 다른 모든 사망원인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한국은 분명 자멸해가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햇수가 지금까지 산 햇수보다 훨씬 더 많은 젊은 연령대이다. 외환위기 이전 이 연령대의 사망원인 1위는 교통사고였다. 당시에도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이었다. 카드대란을 겪으면서 암이 1위로 올라선 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친 2009년 자살은 마침내 암을 제치고 1위는 물론 다른 모든 사망원인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암과 운수사고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미래 한국의 자살 과정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는 없다. 누가 무엇을 통해 어떻게 이 죽음으로의 행진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
경제위기 때마다 유례없는 폭증
한국의 자살률이 얼마나 높은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통계와 비교해보자. 2020년 통계를 보면 OECD 회원국 평균은 11.1명이나 한국은 24.1명으로 무려 13명이나 많다. 이 수치는 비교 불가능한 수준이다. 세계 추세와 비교한 한국의 자살률 추이는 한국인 모두를 두렵게 한다.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은 1985년 17.9명을 기록한 이후 2005년 14.6명, 2009년 13.5명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한국은 1985년 11.5명에서 1988년과 1991년 8.6명으로 최저를 기록한 이후 2005년 31.6명, 2009년 35.3명으로 폭증했다. 특히 1988년부터 1991년까지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회원국 평균의 2분의 1 수준에 불과했으나 1998년 22.7명 대 16.4명으로 역전된 이후 2005년 OECD 회원국 평균의 두 배를 넘어섰다. 14년 만에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서 두 배가 된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 증가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빠른지를 보여주는 데 이보다 확실한 지표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자살률과 관련해 주의 깊게 판독해야 할 점이 있다. OECD 회원국 평균과 한국의 자살률 추이가 정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1988년 8.4명으로 17.2명이었던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 이후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마지막 해(1993년)를 제외하고는 8~9명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후 매년 증가하기 시작한 자살률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1997년과 1998년 각각 15.6명, 21.7명으로 폭증했다. 1년 만에 자살률이 6.1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한 해 동안 수치로는 가장 높은 상승이었다.
OECD 회원국과 비교한 한국의 자살률 순위는 1985년부터 1993년까지 하위권에 속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13위, 1998년에는 7위였다. 그 이후 2003년부터 현재까지 줄곧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2001년 18명에서 2002년 22.7명, 2003년 28.1명으로 급증했다. 카드대란이 벌어진 2002년부터 2003년까지 1년간 5.4명이나 폭증한 것이다. 그 이후 크게 증가하지 않던 자살률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29명으로 높아진 데 이어 2009년에는 33.8명으로 한 해 동안 4.8명이나 증가했다.
자살률이 급격하게 증가한 세 시기가 모두 국가 경제가 심각한 위기상황에 내몰렸던 외환위기, 카드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때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는 개인의 자살이 국가 경제상황과 직결돼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 차례의 경제위기 직후 3개년(1998년, 2003년, 2008년)의 증가된 자살률을 합치면 16.3명에 달한다. 사상 유례가 없는 폭증세이다. 여기에 2002년의 4.7명 증가까지 합치면 4년 동안 21명 증가로서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자살률 급증은 전적으로 국가의 사회적·경제적 파탄 때문이다. 세 차례의 자살 폭증 수치를 보면 국가 전체의 경제위기가 어떻게 개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강조하건대, 한국에서 자살 급증은 체제 전체의 요인 때문이다.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자살, 즉 타살인 것이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국가와 기업과 사회가 범인이다. 나쁜 국가와 나쁜 사회의 공동 범죄다.
1990년 후 OECD와 200%P 차이
2010년 기준 한국과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의 차이는 20.2명에 달했다. 한국이 자살률 최고 국가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세 차례의 국가적 경제위기로 인한 21명 증가가 없었다고 한다면, 또 경제위기 당시 복지국가 체제를 갖춰놓아 벼랑에 몰린 국민들에게 공적 지원을 통해 자살을 방지할 수 있었다면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오히려 낮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폭증한 수치를 빼면 2010년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은커녕 오히려 OECD 회원국 평균보다도 낮다. 놀라운 수치다. 1988년 한국의 자살률이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 불과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두 배가 넘고 있다. 결국 국가의 경제 실패와 사회정책 결여가 개인들을 자살로 몰고 갔던 셈이다. 국가의 경제정책 실패가 없었다면, 또 경제위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사회안전망을 갖추어놓았다면 외려 자살률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낮았을 것이다.
개인의 질병이나 가정 문제는 인간 사회의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러한 요인이 자살의 주요 원인이라면 1998년, 2002~2003년, 2009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자살 폭증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세 차례의 경제위기 동안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자살 급증 현상은, 전체 요인이 개인 자살의 가장 중요한 원인임을 폭로한다. 세 차례의 경제위기 동안에만 갑자기 개인 질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 세 차례의 시기 동안에만 자살증후군이 만연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우리가 큰 충격을 받을 통계가 더 남아 있다. OECD 통계를 다시 보자. 1990년에서 2013년까지 23년 동안 OECD 회원국들은 전체적으로 자살률이 평균 10.37%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230.68% 폭증했다. 한국을 포함해 9개국만 자살률이 증가했는데 한국을 제외한 8개국의 평균 증가율은 21.41%에 그쳤다. 그들 나라는 아일랜드·네덜란드·일본·폴란드·그리스·러시아·멕시코·칠레였다. 한국을 제외한 전체 국가의 평균 자살률은 16.6% 줄었다. 즉 OECD 회원국 평균은 23년 동안 자살이 16.6% 감소했으나 한국은 230.68% 폭증한 것이다. 거의 250%포인트 차이가 나는 셈이다. 무슨 말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이 놀라운 차이를 설명할 어떤 말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인간사에서 이런 사례가 어디에 또 있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한국의 이런 희귀한 인간 현상에 대해 한국과 세계는 어떻게든 실천적·학문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 23년간 한국 자살률 230.68% 폭증은 단연 희귀현상에 틀림없다. 전쟁이나 공황과 같은 예외 시기가 아닌데도 그렇다. 그때 한국은 평상 시기의, 그것도 빛의 속도로 경제가 발전하던 때였다. 시기를 조금 늘려서 한 세대 전체를 보자. 1990~2020년이다. 30년 동안 OECD 주요 국가들의 자살률 평균은 33.5% 감소했다. 그러나 한국은 167.8% 폭증했다. 무려 200%포인트 차이가 나는 것이다. 역사상 과연 이러한 나라가 존재했었을지 의심하게 하는 반인간적·반생명적 흐름이다. 이 시기 동안 헝가리·덴마크·룩셈부르크·핀란드·스위스·에스토니아·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독일·체코·슬로바키아·노르웨이·이스라엘·스웨덴·호주·프랑스·브라질·뉴질랜드·캐나다·이탈리아 등 자살률이 하락한 국가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그룹은 민주화 이후 국가들이고, 다른 한 그룹은 복지국가들이다. 한국은 왜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된 다른 국가들이 자살률이 낮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가? 한국은 자살률 1위를 이토록 오래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최초이지만, 증가율 또한 단연 무비의 사례다. 민주화 이후 사회변화가 개별 삶의 희망으로 연결되지 못했거나 복지체제를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성 대비 여성 자살률 역시 기록적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이다. 한국 남성이 OECD 평균의 2.2배가량인 데 반해 한국 여성의 자살률은 OECD 평균의 3배에 육박한다. 자살 관련 통계에서 한국은 거의 모든 세계 기록을 휩쓸고 있다. 지금 이 부분을 서술하고 있는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비통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나라를 만들어놓고도 우리 사회는 민주화가 어떠니, 경제발전이 어떠니, 진보·보수 대결이 어떠니 하는 말을 할 염치가 있는가?
박명림 교수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 4·3(석사)에 이어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박사)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래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 연구에 천착해왔다. 정치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전쟁과 평화, 생명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
박명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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