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공업 지역 영등포, 상권 중심지로 우뚝 [응답하라 대한뉴스]
김기은 앵커>
서울 영등포 하면 어떤 느낌이 떠 오르시나요?
서울의 관문 중 한 곳인 영등포는 수많은 공장들로 수도권 최대의 공업지대였는데요.
고도성장을 주도하던 공장들이 있던 자리는 수많은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고 상권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대한뉴스, 변화된 영등포의 어제와 오늘을 김제건 국민기자가 살펴봤습니다.
김제건 국민기자>
대한뉴스 제1113호 (1976년)
"이 입체 교차로가 개통돼 인천·수원·영등포 도심·김포 지역 등 9개 방면에서 밀려드는 차량을 원활하게 소통시키게 됐습니다."
1976년 개통된 영등포 입체로터리.
당시에 기둥교각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이 고가도로는 오늘도 여의도와 영등포역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기복 / 시민교통안전협회 대표
"영등포로터리는 고가차도 개통 이전에 육거리 로터리 체제로 운영됐었는데 로터리 가운데 분수대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고가차도 개통 이후 분수대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고가차도는 왕복 4차로로 존치되고 있습니다."
1960~70년대 영등포 일대에 각종 공장이 많이 들어서면서 전국에서 근로자들이 모여듭니다.
대한뉴스 제397호 (1962년)
"3층 건물로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4개의 침실과 식당·이발소·목욕탕 그리고 주방 등이 구비되어 있는 짜임새 있는 이 근로자 합숙소는 앞으로 수많은 근로자들의 보금자리가 될 것입니다."
공장 근로자들이 북적이던 문래동은 변화를 겪으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김제건 국민기자
"근로자 합숙소가 많던 이 문래동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개성 있는 철공소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아주 유명한 공업지역이 됐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문화시설, 이런 특색 있는 카페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골목골목, 철공소나 철 가공 공장들 사이로 카페나 음식점들이 많이 눈에 띄고 있는데요, 특히 옛 공장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이런 이색 카페들이 뉴트로 복고풍을 타고 젊은이들에게 크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지수 / 철판구이 전문점 지배인
"여기가 철공소 골목이지만 매출이 잘 나오는 편이고요. 평일 낮에는 이용 고객이 많지 않지만 저녁 시간만 되면 문래창작촌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많은 편입니다."
대한뉴스 제805호 (1970년)
"경부·경인선 전철과 측량 측조식이 서울 영등포역 구내에서 거행됐습니다. 70년 말까지 측량이 끝나 72년 말에 완공될 이 전철은 수도권 인구 분산과 교통 혼잡을 크게 덜어줄 것입니다."
1899년부터 서울 서부의 관문이었던 영등포역은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철도 교통은 물론 지역 상권의 중심지가 됐습니다.
인터뷰> 이현숙 / 서울시 은평구
"제가 20대 때 봤을 때 (영등포)역은 광장도 넓고 정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빌딩이 들어서고 나니까 역 같지 않고 정감도 덜 가는 것 같습니다."
대한뉴스 제95호 (1956년)
"여기는 태창방직 주식회사의 영등포 공장입니다. 이곳은 6·25 당시 아무것도 없던 곳을 정부 보유 달러, 550여만 달러를 대여받아서 6만 개 소에 방적기를 도입 설치한 것이며 현재 면포와 면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1963년에 방림방적으로 인수가 된 태창방직과 함께 경성방직 공장 터는 이제 큰 빌딩의 복합 쇼핑몰로 변모했습니다만 당시의 사무동 벽돌 건물이 그대로 남아 이 지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옥상현 / 경기도 하남시
"이곳이 유명한 경성방직 터라고 하는데 지금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사무동 건물이 그나마 남아 있다고 하니까 다행입니다."
(취재: 김제건 국민기자)
1960, 70년대 서울의 공업 중심지로 사람과 공장이 몰려들었던 영등포가 이제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문화와 상업지역으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리포트 김제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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