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제사 주재자, 남녀·적서 불문하고 연장자가 우선"
[앵커]
한 집안의 제사를 주재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법률상 규정은 없지만, 그동안 대법원은 관습이나 통념상 장남이나 장손자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봤는데요.
15년 만에 대법원 스스로 이를 뒤집었습니다.
가족끼리 협의가 안 이뤄질 경우라면, 남녀·적서를 불문하고 연장자가 우선권이 있다는 새로운 판례를 내놨습니다.
임성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문제의 발단은 A 씨의 외도였습니다.
본처 B 씨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둔 A 씨는 내연녀 C 씨와 외도해 혼외 아들을 낳았고, 지난 2017년 숨졌습니다.
이후 C 씨는 A 씨 유해를 경기 파주의 한 추모공원에 봉안했는데, 본처 B 씨와 두 딸은 C 씨와 추모공원 측을 상대로 남편의 유해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C 씨의 아들이 혼외자에 미성년자인 점을 들어 자신이나 맏딸이 제사 주재자가 돼야 한단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1·2심에서 잇따라 졌습니다.
200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이유였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망인의 공동상속인들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땐 장남이나 장손자가 우선 제사 주재자가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1·2심 재판부도 C 씨의 아들이 제사 주재자가 되는 게 사회 통념상 정당하다고 판단해 B 씨 등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하지만 본처 B 씨 등은 장남에게 우선 제사 주재자 지위를 인정하는 건 부계 계승이라는 관습에서 비롯된 차별이라며,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대법원도 B 씨 등의 손을 들어주며 15년 만에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동상속인들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땐 남녀·적서를 불문하고 연장자가 제사 주재자로 우선한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김명수 / 대법원장 : 현대사회의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하고, 남성 상속인이 여성 상속인에 비해 제사 주재자로 더 정당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대법원은 남성 상속인을 제사 주재자로 우선하는 것은 양성평등을 보장하고 성차별을 금지한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며,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는 유지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개인의 자유와 양성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우리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YTN 임성호입니다.
YTN 임성호 (seongh12@ytn.co.kr)
촬영기자 : 최성훈
영상편집 : 강은지
그래픽 : 박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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