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 노동약자의 목소리 호소력…‘정부 비판’만 치중 땐 피로감
시각장애인 변호사와 전세사기 피해 주민들 반상회 등 사람에 주목하는 기사로 차별화
간병의 국가적 책임 제대로 지적…‘성범죄, 국민참여재판은 안 돼’ 기사는 설득력 부족
대통령 지지율 미세한 등락 보도 땐 신중해야…‘검정고무신’ 작가 죽음 추적 보도 탁월
경향신문 독자위원회가 지난 3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2023년 5월 정기회의를 열었다. 김춘식 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주재로 열린 회의에 곽경란(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김봉신(여론조사전문기업 조원씨앤아이 부대표), 김지원(단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박은정(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 신지영(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이승환(한국공인회계사회 선임) 위원이 참석했다. 조상식(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위원은 서면으로 의견을 냈다. 경향신문에서는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이 함께했다.
회의에서는 <다이소의 1000원 노동권> 등 5월1일 노동절을 맞아 실린 각종 노동 관련 기획기사들이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다양한 노동약자들의 현실을 전달해줬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만화 <검정고무신> 작가의 죽음을 추적한 주간경향의 연속 보도가 독자들이 이 사건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줬다는 평가가 있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중요하지만 기사나 칼럼이 정부를 향한 비판 일변도로 치우치면 자칫 독자들의 피로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춘식 = 지난 한 달 동안 한·미 정상회담, 전세사기, 노동절 등과 관련된 많은 기사가 나왔는데 경향신문이 사람에 주목하는 언론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 기사들도 눈에 띄었다. 4월27일자 신문에는 시각장애인 변호사 김진영씨가 소개됐다. 김 변호사의 인간 승리 이야기가 감동을 주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5월1일자 1면에 실린 <상처 입은 이들의 ‘아주 각별한 반상회’> 기사는 전세사기 피해 주민들이 반상회에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서 위안을 찾는 모습을 보여줬다. 보상문제를 넘어 피해자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한 차별화된 기사다.
박은정 = 생활용품점 ‘다이소’의 노동문제를 다룬 <다이소의 1000원 노동권> 시리즈 기사를 인상 깊게 봤다. 경향신문이 노동 관련 이슈들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이 기사도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았던 소외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다가왔다. ‘1000원 노동권’이라는 제목이 기사가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명확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노동절을 맞아 최저임금 문제 등 관련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노동절’이라는 명칭을 쓴 것도 의미 있다. 르포 기사들을 살펴봤다. 강릉 산불 현장 기사처럼 좋은 르포도 있었던 반면에 굳이 르포로 써야 했는지 의문이 드는 기사들도 있었다. 르포는 현장감이 중요한데 현장감 없이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쓴 것 같은 기사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르포 기사는 사진도 모두 현대중공업이 제공해준 것이고 르포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공군 시그너스 전투기 탑승기 기사도 홍보 기사 느낌이 들었다. 지면 편집 중 디자인을 재미있게 만들거나 그래픽을 넣어 구성한 것이 신선했다. <친환경, 무거운 고민>(5월2일자) 기사에선 제목에서 ‘무거운’이라는 단어를 굵은 글씨로 표시해 의미를 전달했는데, 독자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다.
신지영 =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관련해 ‘베이비스텝’ ‘자이언트스텝’ 등 표현을 많이 쓰는데, 명료성을 떨어뜨려 독자들과 벽을 만드는 표기라고 생각된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의 문제를 다룬 5월2일자 <당신의 간병은 무탈한가요> 기사를 의미 있게 봤다. 간병은 국가가 책임질 문제인데 지금은 모두 개인들에게 맡겨져 있다. 간병인을 쓰거나, 본인이 생업을 포기하고 직접 간병을 해야 하는 실태를 지적했다. 간병이 개인의 문제인지, 국가가 책임질 문제인지에 대해 생각거리를 던져준 기사다. 다만 이 기사에 달린 ‘개인 간병비보다 10배 가까이 싸’라는 소제목은 잘못된 표현이다. 10배 가까이 비싸다는 것은 가능하지만 싸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10분의 1 가격’이 정확한 표현이다. 133주년 노동절과 관련해 좋은 보도가 많이 있었다.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특히 청소년 노동자에게 수년간 최저임금조차 주지 않은 편의점을 다룬 <시급 6500원?… ‘어리다고 덜 주지 말아요’>(5월1일자)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4월26일자 <수도권 공장 쉬는 일요일, 지방 전력 생산 넘쳐 ‘대정전’ 우려> 기사는 전력 공급과잉으로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짚었다.
김지원 = 4월21일자 <우울증·전세사기·따돌림 ‘병든 세상’ 등지는 청년들> 기사는 청년 우울증을 키워드로 각각 다른 사건들을 연결시켰다. 하지만 나열된 세 사건은 성격이 너무 다른데 ‘청년 자살’을 키워드로 문제를 단순화했다. 기사가 말미에 통계 몇줄과 심리학과 교수 인터뷰로 급하게 마무리됐다. 개별 사건을 하나하나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면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 근본 원인을 찾는 것을 방해하고, 해당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자살·우울증 문제와 관련한 4월22일자 <2차 가해 판치는 ‘우울증 갤’ 폐쇄 거부한 디시인사이드> 기사도 디시인사이드의 부정적인 영향력에만 집중해 폐쇄를 거부한 웹사이트의 무책임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우울증 갤’이라는 커뮤니티 문화를 좀 더 분석할 필요가 있었고, 문제가 생기면 폐쇄 또는 해체가 답이라는 관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4월17일자 1면부터 2면으로 <팬데믹 그 후, 장은 섰는데 ‘한국 영화’가 안 보인다> 기사가 실렸다. 최근 어려운 한국 영화계 실태를 잘 분석했다. 미디어 관련 기사에 신문 1면을 할애한 것을 좋게 평가하고 싶다.
김봉신 = 4월14일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긍정률이 27%로 집계됐다는 기사가 나왔다. 5개월 만에 20%대로 하락했다는 의미 부여가 있었는데, 대통령 긍정률의 고점이 얼마인지를 소개해 비교했으면 좀 더 풍성한 기사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점은 37%다. 리얼미터가 조사한 대통령 지지율이 1.9%포인트 올라 4주 만에 반등했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사실 오른 것도 아니다. 계속 미세하게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독자들이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 5월3일에 선거제도 개혁 관련 공론조사가 시작된다는 <시민 500명 모여 선거제도 학습하고 토론, 어떤 선택 할까> 기사가 나왔다. 지난 정부에서도 원자력발전 정책 공론조사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런 과거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한다는 분석적 기사를 기대했는데, 단순히 조사를 한다는 내용뿐이어서 실망스러웠다. 4월6일 나온 <다주택 고위공직자들 강남 선호, 서초구에만 ‘190채’> 기사는 단순히 통계치만 소개할 게 아니라 좀 더 깊게 들어가 분석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정책을 만들어 생긴 착취적 부동산 체계를 짚어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경향신문이 대통령 동향이나 여당 관련 일부 극우세력의 퇴행을 잘 지적해주고 있는데, 반대로 잘하는 정치인이나 노력하는 정치인에 대해서도 보도를 했으면 한다.
곽경란 = 만화 <검정고무신> 작가의 죽음 이후 문제를 다룬 주간경향의 추적이 탁월했다. 대부분 언론사가 이와 관련해 매절계약 문제로 보거나 출판사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보도해왔는데 주간경향 기사는 사건의 본질에 가깝게 다가갔다. 4월4일부터 연속해서 보도하면서 웹툰 작가들의 노동 강도와 노동 자율성 문제, 거기서 오는 작가들의 불안을 잘 보여줬다. 정부가 해법으로 제시하는 표준계약서의 문제점도 잘 짚었다. 대책위뿐만 아니라 출판그룹 등도 인터뷰한 점은 귀감이 될 만하다. 보통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은 심정적으로 공감이 가는 쪽으로 기울어서 한쪽만 성실하게 취재하고 반대쪽에는 형식적 반론권만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보도는 그렇지 않았다. 4월28일자 <대법원 ‘준강간 미수 사건’ 무죄 “가해자 중심적 사고”> 기사에서 국민참여재판의 성범죄 무죄율이 높기 때문에 성범죄는 국민참여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나아간 것은 문제가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사법 엘리트가 아니라 동료시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사법 민주화의 이상을 갖고 도입된 제도다. 직업 법관의 재판과 다르다는 이유로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말자고 할 것 같으면, 애초에 그 제도를 왜 도입했겠는가. 이번 노동절 기사에는 중소기업 노동자나 청소년 노동자, 직장 규모에 따른 신분제 노동 등 문제를 폭넓게 짚었다. 특히 5월1일자 1면에 실린 소규모 사업장의 부당노동행위를 지적한 기사의 ‘도와주세요’라는 큰 제목이 감동적이었다.
이승환 = 4월3일자 <학폭 신고 않는 이유 1위는 “말해 봐야…”> 기사는 최근 학교폭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줬다. 학폭 관련 정부 대책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충실한 후속 보도들이 이어진 것도 의미 있었다. 최근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후 많은 언론이 이를 다루고 있는데, 피해자 구제와 대책 마련을 서두르라는 내용이 대세다. 경향신문도 4월17일자 사설을 비롯해 여러 기사에서 피해자를 빨리 구제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구제에 있어 다른 범죄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 세입자 중 진짜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이들을 구분하는 문제 등 면밀히 따져봐야 할 사안들이 많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경향신문은 기사는 물론, 오피니언면의 각종 사내외 칼럼 등에서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권력의 핵심인 대통령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언론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소명이지만 계속 지적만 하니까 피로도가 높아진다는 느낌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좋은 정책이 있을 수 있고 일 잘하는 공무원이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을 찾아서 칭찬도 하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 9주기 관련 기획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다루는 것이 의미가 있다. 신문이 기록의 매체임을 보여주는 기사다. <다이소의 1000원 노동권> 기사도 의미 있었다. 다이소는 매출액이 정말 큰 회사인데, 그에 걸맞은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내용도 다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조상식 = 노동절 전후로 노동 관련 기사가 많았는데, 다양한 방면에서 취재한 노력이 보였다. 노동시장의 성차별을 다룬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팀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노동절 ‘우리가 모은 차별의 조각’을 공개합니다> 기사는 색다른 내용과 편집, 구성이 돋보였다. 윤석열 대통령 방미,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내부문제 등 정치 기사들은 단순 사실 보도를 넘어 경향신문의 논조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간호조무사와 의사의 연합시위 기사는 간호법과 관련된 의사·간호사 간 대립 구도에서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해주었다. 자사고의 고입전형 영향 평가 결과를 분석한 <자사고 준비생 사교육비 1.7배인데… ‘사교육 유발’ 지적 3년간 1건뿐>(5월1일)은 정부의 중등교육 정책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내용을 담은 기사로 보인다. 교육 분야에서는 대학 및 입시 관련 기사가 유아교육·보육 및 초·중등 기사에 비해 비중이 높다. 이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만 일반 보통교육 이슈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학폭과 특수학교 관련 화제를 여럿 발굴해 학교 현장을 중심으로 취재한 점은 긍정적이다.
김춘식 = 윤석열 정부의 미국 도청 대응뿐 아니라 방일 외교정책 실패 등 여러 비판이 제기되면서 많은 언론에서 향후 중국 및 러시아와의 외교관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는 기사들도 나왔다. 대체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해석의 틀을 크게 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미·중관계와 한국의 외교 방향 등을 언급한 4월19일자 장하준 런던대 교수 인터뷰는 시의적절하고 유익했다. 한반도·외교 현안에 관한 보도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외교문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와 연결해 큰 틀의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수준 높은 오피니언 기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리 |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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