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줄 알았던 ‘철권통치’...성난 민심 앞에서는 장사 없다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3. 5. 11. 20: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4일 대선 앞둔 에르도안
야당후보에 지지율 밀려 고전
경제실책에 민심이반 계속
이슬람주의냐 세속복귀냐 갈림길
20대· 쿠르드족 표심 주요 변수
과반 득표 안나오면 28일 결선
‘21세기 술탄’의 20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릴까. 오는 14일 튀르키예 대선을 앞두고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경제난과 2월 대지진 사태에 대한 부실 대응으로 지지율이 흔들리면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권력을 잃을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BBC 등 외신들은 공통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이번 대선이 집권 이후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튀르키예에서 지난 한 세대 동안 가장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튀르키예의 이슬람주의 통치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 등 대내외 정책 방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이후 튀르키예는 권력 균형과 반대의견 수용없이 권위주의에 기반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해왔다.

현재 에르도안 대통령은 6개 야당이 내세운 단일 후보이자 ‘튀르키예의 간디’라 불리는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대표와 접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지난 8일 기준 조사에 따르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지지율 50%로 에르도안 대통령(45%)을 5% 포인트 차이로 앞서며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3월 이후 다른 매체들의 조사에서도 대부분 에르도안 대통령이 다소 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투표에서 과반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28일 결선 투표에서 1,2위 후보를 대상으로 최종 당선자가 가려지게 된다.

에르도안 정권이 수세에 몰려있는 가장 큰 배경으로는 살인적 물가상승률로 대표되는 경제위기가 지적된다. 지난해 85%를 넘었던 튀르키예의 인플레이션율은 이후 하락했으나 여전히 50%에 육박한다. 튀르키예의 물가는 2021년 외환 위기를 계기로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중앙은행장을 교체하면서까지 금리 인상을 막는 등 비상식적 경제 정책을 펼쳤다. BBC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글로벌 추세와 반대로 금리 인상을 거부해 리라화 가치가 폭락했다”며 “전문가들은 실제 물가상승률이 100%가 넘는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지층 결집을 위해 최저 임금 55% 인상, 공무원 임금 30% 인상 등 포퓰리즘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선이 있는 이달엔 한달간 가정용 가스를 무상 공급하기로 했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며 대대적 개혁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는 “나는 에르도안과 정반대다. 그가 이긴다면 튀르키예는 독재국가가 될것” 이라며 대립각을 세우면서 정권의 권위주의적 이미지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사법권 및 중앙은행의 독립성 회복, 대통령중심제에서 의회중심제로 복귀, 비정통적 경제정책 철폐 등으로 에르도안의 유산을 청산하겠다고 약속했다.

또다른 주요 관전 포인트는 20대 젊은층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쿠르드족의 표심이 거론된다. 로이터 통신은 처음 성인이돼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는 600만여명의 표심이 선거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 집권으로 출생 이후 한번도 다른 지도자를 경험해 보지 못한 만큼 변화에 대한 열망이 커서 야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튀르키예 전체 인구 8500만명중 5분의 1을 차지하는 쿠르드족도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BBC에 따르면 쿠르드족의 지지를 받는 친쿠르드 정당 인민민주당(HDP)은 이번에 공개적으로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21세기 최악의 재난 중 하나로 꼽힌 지난 2월 대지진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BBC는 “5만 명 넘는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과 그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그렇지 않아도 위태롭던 에르도안 지위를 더욱 약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튀르키예 건국 100주년에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 따라 정교 분리의 세속주의로 복귀하느냐 이슬람주의 대통령의 종신 집권이냐가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승리하면 개헌안에 따라 최대 2033년까지 30년 장기 집권의 길이 열린다.

그의 재집권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친러시아 행보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계속 견제구를 던져왔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당선될 경우 기약없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도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나토에서 튀르키예의 역할을 강화하고 러시아 제재와 관련해 서방의 결정을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조직적 반대파 탄압 등 “에르도안 대통령이 권한을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선거판을 만들었다” 며 이번 대선 역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불리하자 에르도안 대통령 측에서 선거 불복을 시사하는 발언도 나왔다. 슐레이만 소일루 내무부 장관은 지난달 “이번 선거는 서방에 의한 정치적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결과 승복 여부에 따라 튀르키예의 민주주의 역사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