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티슈 노동자’ 간호사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매년 간호대 학생들은 임상 실습을 나가기 전 ‘나이팅게일 선서’를 낭독한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은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다. 1972년 국제간호협의회(ICN)는 그의 생일인 5월12일을 국제간호사의날로 제정했다. 간호사들의 공을 기리기 위함이다.
2021년 기준 간호사는 45만7849명(사망자 제외)이다. 임상간호사로 활동하는 이는 그 절반인 55.3%, 5년 내 퇴사율은 49.9%라고 한다. 간호사가 부족하다 해서 간호대 정원을 늘렸지만, 현장에선 간호사들이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병원을 떠나는 이유는 열악한 처우와 격무 때문이다. 많이 뽑고, 많이 버려진다 해서 ‘티슈노동자’라는 슬픈 말도 붙는다. 현재 국내 상급종합병원의 간호사 1명당 평균 환자 수는 16.3명에 달한다. 미국(5.3명)·일본(7.0명) 등과 견줘 한국 간호사들은 2·3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을’들의 싸움만 처절해진다. 고참 간호사들이 교육을 가장해 신참들을 괴롭히다 사회문제가 된 ‘태움’이 그런 예다.
보건복지부는 고령화에 따른 미래 수요까지 고려하면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를 돌보는 간호 행위는 전문적인 의료 행위가 아니라며 무시되기 일쑤다. 그간 간호계에서는 의료법과는 독립된 간호법을 제정할 것을 주장해왔다. 그때마다 기득권을 쥔 의사 집단은 반발했다. 지난달 27일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다른 의료직역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이 갈등은 한의사나 간호조무사를 육성하는 특성화고·간호학원으로까지 번졌다.
이 사태를 지켜보는 시민의 맘은 편치 않다. 코로나19에 맞서 사투를 벌인 의료종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한 ‘덕분에’ 챌린지를 기억할 것이다. 서로의 처우 개선을 영역 다툼으로 과장·왜곡하는 ‘제로섬’ 싸움은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정부가 중재해야 할 몫이다. 간호법의 쟁점은 애당초 의료법이 금지한 ‘의료기관 개설’이 아닌 ‘간호사의 업무 범위’다. 고령화 시대 노인 돌봄 수요 증가세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간호사다. 더는 ‘백의의 천사’라는 이름으로 간호사들에게 친절과 헌신을 강요하지 말자. 그저 그들도 당신과 같은 노동자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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