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덕서니의 시대

한겨레 2023. 5. 1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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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의 환상타파]

1988년 6월2일치 <한겨레신문> 1면

전명윤

환상타파

1988년 <한겨레>가 창간됐을 즈음 중학생이던 난 꽤 열혈 애독자였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내가 살던 서울 강동구 둔촌동 신문가판대에서는 한겨레를 팔지 않았다. 창간호를 사기 위해 당시로서는 번화가였던 길동사거리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당시 리영희 선생의 칼럼은 독보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실체는 없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공포심으로 인해 커지기도 줄어들기도 한다는 황해도 도깨비 ‘어덕서니’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당시 커져만 간다는 북한의 위협이라는 게, 사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대부분 과장된 것이라는 논지였는데, 당시 중학생이던 내게 그 칼럼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이야 과거와 달리 북한 뉴스를 접할 수 있는 길이 원체 다양하다 보니 그 시절처럼 국가의 의도대로 대중들에게 일방적으로 겁을 줄 수는 없겠지만, 어덕서니가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가짜뉴스라는 것도 그 본질은 과장된 주장으로 사람들의 공포나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니 이 또한 어덕서니다. 에스엔에스(SNS)는 더하다. 특정 집단이 만들어낸 가장 악질적인 허위나 과장, 혹은 증오가 항상 과잉대표되고, 이미 편가르기가 끝난 사람들에게 상대방이 악마라는 확신을 강화한다.

뉴스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자 사람들은 그 효용성이 크다고 생각했지만, 알고리즘에 의해 내가 보던 논조, 취향의 뉴스만 앞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고 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주장만 진실이라 여기게 됐다. 텔레비전(TV)을 바보상자라고 불렀던 이유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정보를 한 방향으로 전달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하지 않는다.

요즘 어덕서니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방의 능력을 어벤저스급 초능력자로 과대하게 포장한다는 점이다. 상대진영의 악인은 못하는 게 없다. 몇조 규모 금괴를 가지고 있는가 하면, 없는 범인을 만들어내고, 누군가를 슬며시 죽이기까지 한다. 망상 속의 상대진영은 그렇게나 악하고 전능하기에 그들을 이기기 위해 힘 약한 우리는 무조건 똘똘 뭉쳐야 하며, 사소한 허물 따위는 딛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정치가 전쟁이라는 말은 정치가 직업인, 당선 여부에 따라 4년간 영감으로 살지 백수로 살지 판가름 나는 정치인에게나 걸맞은 말이다. 유권자에게 정치는 비교의 대상이고, 고민 끝에 선택할 수 있는 행위여야 한다. 한때 도덕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요즘은 도덕성 문제를 지적하면 내부 총질이라고 하는 걸 보면,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할 밖에.

진영 안에서 이런 생각들이 무한 증식시키려면 상대방은 절대 악의 화신이 돼야 한다. 그럴수록 우리 허물은 가려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곪아가고, 그만큼 미래 희망은 사라져 간다.

운동장이 어떤 각도로 기울어져 있기에 양쪽 모두 운동장이 기울어졌다고 하는지, 어쩌다 누군가 잘못했을 때 그 잘못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 저쪽의 아무개는 더했다로 눙치고 넘어가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됐는지 알 수 없다. 요즘 같아선 과거 양비론이 더 건강했다고 여겨질 지경이다. 적어도 그때는 누구는 이래서, 저기는 저래서 나쁘다고 말했다. 냉소적이긴 하지만 동일한 잣대가 있었고 시민들은 한발짝 멀리서 정치를 바라봤다. 뜨거운 실천은 적었지만 양쪽을 가늠할 줄 아는 시선은 있었다.

참여와 실천의 가장 큰 적은 맹목이다. 상대방은 악마가 아니다. 특히나 그저 유권자인 개개인은 더더욱 말이다. 각자 아이 키우는 걱정, 내 집 마련을 걱정하는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다. 단지 어떤 지점에서 당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를 뿐이다. 한국을 적화하려는 빨갱이도, 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으려는 토착왜구도 사실은 우리가 만든 어덕서니 아닐까. 진실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진영논리만 존재하는 그런 세상에서 어덕서니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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