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이여!
[세상읽기]
[세상읽기]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내 마음의 밑천을 보게 하는 책이었다. 고백 같은 서술이 ‘사람이란?’ ‘삶이란?’을 궁리하게 했다. 번번이 머리와 마음이 어긋나는 지점을 마주했다. 인권운동가이자 중증 뇌병변 장애인인 이규식이 쓴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나의 이동권 이야기>다.
이규식은 열아홉살까지 방구석에 있다가(그의 표현이다) 산속 장애인공동체에 들어가 서른살에 ‘굶어 죽더라도 밖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자’ 마음먹고 시설을 나왔다. 책에는 서울 문래동 아파트에 체험홈을 꾸리고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 셋과 자립생활하던 때의 일화가 나온다. 이웃과 잘 지내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기반이 닦인다는 생각에 가죽지갑 만들기 같은 주민 대상 프로그램들을 열며 다가갔다. 명절이면 이웃에 떡도 돌렸다. 그러다 재계약 시점에 문제가 터졌다. ‘장애인 세대 재계약 수락/반대의 건’이란 의제로 주민대표회의가 열렸다. “언제 나갈 거예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공세가 이어졌다. 한 주민이 “우리에게 이분들 집 재계약을 허락할 권한이 있나요?”라고 물으면서 한풀 꺾였고 구청 공무원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언급하며 설명한 다음에야 무마됐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져 온 일이라고 한다. 대구에서는 주민들이 아파트 입구를 차로 막아 경사로 설치 공사를 못 하게 했다고 한다. 반대 이유는 주로 어린이 안전과 집값 하락이다.
사람을 상품처럼 등급 인증을 하려는 것 같아 황당했다. 그러다 함께 작업하던 린다가 집을 팔 때 조언하던 15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다발성경화증으로 휠체어 생활을 한 린다는 집 입구에 계단 옆으로 경사로를 놓았고, 현관부터 벽 중간에 손잡이 막대를 둘러 방과 화장실로 이어지게 했다. 부엌에서 거실 지나 사무실 책상까지 전동휠체어가 자유로이 가도록 바닥 공사도 했다. 창문도 아래로 넓혔는데, “휠체어에서 본 창밖 풍경은 어디 가나 하늘뿐”이었다는 규식의 글을 읽으며 이유를 알았다. 휠체어에서 뒷마당 장미와 데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였던 당시 나는 린다에게 주택시장 침체기인 만큼 모델하우스처럼 꾸며야 집이 팔린다고 말했다. 인종을 드러내는 사진이나 취향을 지우고(린다는 백인이니 괜찮을 수도 있지만) 장애인 편의시설도 떼야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린다의 의견은 달랐다. 나이 든 사람들은 어차피 경사로와 지지대를 설치해야 할 텐데 얼마나 반갑겠냐는 것이다. 나는 구매 대상을 좁히기에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응대했다. 린다는 편리와 안전이 더 큰 경쟁력이라며 굽히지 않았다.
세월 지나 내가 사는 골목에서도 이웃이 바뀌었다. 옆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동산 중개인 커플이 이사와 이층집을 개조하며 할아버지가 들여놓은 엘리베이터를 들어냈다. 아시아풍 동백도 베었다. 그리고 부동산 호황기에 걸맞은 이문을 내고 떠났다. 새 이웃에게 전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고 하니 아쉬워했다. 은퇴하기에 염두에 두던 참이라고.
이제 보니 ‘많은 사람’이라는 나의 용어는 시장 중심 시선이고 차별이었다. 표준, 보통, 정상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 시대가 정해 놓은 기본으로, 생애주기로는 15살과 65살 사이 비장애인일 것이다. 어떻게든 100계단을 오를 수 있는 사람들로 이른바 ‘비약자’, 다른 말로 노동가능인구 아닐까? 나머지 인구는 ‘옵션’이라는 추가 비용이 나는 서비스 사용자들이니, 이들의 편리는 사회비용을 들이도록 싸워서 만들어야 할 정치가 되었고 복지로 불리는 것이다. 100세 시대, 점점 더 보통 아닌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린다가 바라보는 구매 대상은 사실 나보다 훨씬 많았다. 비장애인 기본에 노인과 장애인, 아플 때, 개 유아차 끌 때 등등 덧셈식 접근이었는데, 나는 뺄셈으로 다가갔다. 맙소사! 규식의 권리를 갖는 사람의 범위 또한 누구보다 넓다. 그래서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만들기 위해 목에 쇠사슬을 감고 선로에 몸을 묶었다. 지금은 새치기하는 비장애인에게 밀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기 일쑤다. 정부가 노인을 위해 만들어줬다며 눈치 주는 사람을 만나면 화도 난다고 한다. 그러나 규식의 글에는 유머가 왈츠처럼 흐른다. 세박자 속에 눈물도 있고 웃음도 있고 사랑도 있다. 누구나의 삶처럼. 그러니 백만 종류의 보통 사람들이여, 함께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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