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제사 주재, 남녀 불문 나이순”… 15년 만에 뒤집었다

안경준 2023. 5. 1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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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상 '제사 주재자'를 정할 때 공동상속인 간 협의가 없으면 장남이 우선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15년 만에 깨졌다.

대법원은 제사 주재자를 정할 때 제사 전통에 근거하면서도 헌법상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 이념이 조화돼야 한다며 "남녀, 적서(적자와 서자)를 불문하고 '최근친 연장자'가 우선한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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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이념 조화돼야’ 판결
“혼외자라도 장남 우선” 판례 파기
민법상 ‘제사 주재자’를 정할 때 공동상속인 간 협의가 없으면 장남이 우선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15년 만에 깨졌다. 제사 주재자는 고인의 유해와 분묘 등 제사용 재산의 소유권을 갖는다. 대법원은 제사 주재자를 정할 때 제사 전통에 근거하면서도 헌법상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 이념이 조화돼야 한다며 “남녀, 적서(적자와 서자)를 불문하고 ‘최근친 연장자’가 우선한다”고 판결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장남 제사 주재자 지위 인정 여부 등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11일 숨진 A씨의 유족 간 벌어진 유해 인도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현대 사회의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했다”며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남성 상속인과 여성 상속인을 차별하는 것은 정당화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어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우선하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 11조, 개인 존엄과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36조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면서 “사회관념과 법의식의 변화 등으로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 법규범이 현재의 법질서에 합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성별이 아닌 나이와 근친 관계를 새로운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 다만 최근친 연장자가 제사 주재자로서 부적절한 사정이 있으면 법원의 판단을 받도록 했다. 또 법적·사회적 안정성을 위해 이번에 변경한 법리는 판결 선고 이후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뤄지는 경우에만 적용하기로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공동취재사진
대법원 관계자는 “종래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을 중시한 적장자 우선의 관념에서 벗어나 헌법 이념과 현대사회의 변화된 보편적 법의식에 합치하게 됐다는 점에 판결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A씨는 1993년 B씨와 결혼해 두 딸을 뒀다. A씨는 결혼 생활 중이던 2006년 C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D군을 낳았다. A씨가 2017년 돌연 숨지자 C씨는 A씨의 유해를 한 추모공원 봉안당에 봉안했다. 이에 A씨와 두 딸은 C씨 측에 고인의 유해를 돌려 달라는 소송을 냈다. 앞서 1, 2심 재판부는 200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공동상속인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적서를 불문하고’ 장남이 제사 주재자가 된다는 것이 기존 전합 판결의 요지다.

안경준 기자 eyewher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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