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돌리고 때 빼는 `세탁기와 20년`… "업가전이 세계 1등 정답입니다"

전혜인 2023. 5. 1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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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설계·시스템 제어 전문가… 세계 최대용량 제품 개발로 업계 주도
전시회 LG부스에 유럽 경영진 북적… "더 똑똑한 스마트가전 만들것"
서현석 LG전자 연구위원. 박동욱기자 fufus@

'세탁기 장인' 서현석 LG전자 리빙솔루션연구소 연구위원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글로벌 기업들을 따라가는 후발 주자의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시장의 방향을 설정하고 리딩해야 하는 1등의 입장이 됐습니다."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서현석(52·사진) LG전자 H&A사업본부 리빙솔루션연구소 연구위원은 2002년 LG전자에 입사한 후 20년간 세탁기 구조 최적설계 및 시스템 제어 분야의 전문가로서 선행 연구개발을 이끈 인물이다. 세계 최대 용량 드럼 세탁기의 구동부 플랫폼 설계와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인공지능 세탁기 연구개발을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선정하는 4월 '대한민국 엔지니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가전 사업은 LG전자의 가장 든든한 기둥이다. LG전자의 가전사업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는 지난해 연간 기준 매출 29조8955억원, 영업이익 1조1296억원을 거두며 미국 월풀을 제치고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LG전자 전체 사업부문 중 가전사업의 매출액 비중은 35.8%에 달한다.

통상 3대 백색 가전이라고 불리는 냉장고·세탁기·에어컨 중에서도 세탁기는 연간 생산 수량이 가장 많은 제품이다. 지난해 LG전자가 국내외에서 생산한 연간 세탁기 생산 실적은 1374만대에 달한다.

서 위원은 LG전자가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도전 기업에서 선두 기업이 되기까지의 역사를 함께 해 왔다. 서 위원은 "입사 당시는 회사가 막 북미 지역에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규모가 빠르게 커지는 시기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서 위원 역시 입사 초기 유럽향 드럼 세탁건조기 제품의 선행개발 등 수출용 세탁기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을 주로 담당했다.

연구원들이 세탁기 제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기본 품질이다. 동일한 크기에서 최대한 많은 옷을 세탁할 수 있도록 용량이 크고, 동시에 세탁력은 좋으면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은 최대한 줄이는 것이 목표다.

지난 2009년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새로운 진동계 구조의 고정형 터브 세탁기 역시 서 위원을 비롯한 연구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드럼세탁기는 바깥을 싸고 있는 캐비닛과 내부 터브, 세탁물을 넣는 드럼으로 구성된다. 세탁용량을 늘리려면 드럼과 터브 크기를 키워야 하는데, 기존 세탁기에 이 방식을 사용하면 터브와 캐비닛이 부딪혀 진동과 소음이 심해 드럼과 터브를 분리하는 완전히 새로운 구조를 설계해야 했다.

"선행 연구까지 포함한 개발 기간만 6~7년이 걸릴 정도로 아주 까다로운 작업이었는데, 목표였던 유럽 시장에서 좋은 반응이 돌아와서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그 당시 유럽 시장은 지금보다도 더 현지 빌트인 업체들의 입김이 셌는데, 유럽 가전 전시회 IFA에 출품했을 때 밀레 경영진이 직접 찾아와서 보고 가기도 했지요." 이후에도 매년 LG전자 부스에는 주요 가전업체 경영진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가전업계의 연구개발 트렌드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2018년 세계 최초로 세탁기 동작 알고리즘에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인공지능 세탁기를 개발한 것을 시작으로, 세탁 과정에 다양한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세탁통 속에 의류를 넣었을 때 전륫값을 이용해 딥러닝으로 의류 재질을 인식하고, 최적의 세탁 방법을 도출해 내는 방식이다. 인공지능은 더 많은 사례가 쌓일수록 더 세분화된 인식과 행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사용이 늘어날수록 향후 인공지능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는 게 서 위원의 설명이다. 지난해 출시한 LG전자의 인공지능 DD(다이렉트 드라이브) 세탁기는 인공지능 기술의 수준과 품질을 검증받아 글로벌 안전규격 인증업체인 UL의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인공지능 세탁건조기 가운데 딥러닝 기술을 인정한 첫 사례다.

특히 LG전자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론칭한 '업(UP)가전'은 이와 같은 제품개발의 양방향적 특성이 잘 드러난다. 제품을 출시한 이후에도 고객의 사용 패턴을 빅데이터로 지속 분석하고 고객의 니즈를 반영해 새롭게 필요한 기능과 서비스 등을 개발해 제공한다. 고객들은 그 중 본인이 원하는 기능을 맞춤형 업그레이드로 적용할 수 있다.

"업가전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연구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소프트웨어로는 우리가 원했던 업가전을 구현해낼 수 없어서 그 구조부터 새롭게 쌓아올려야 했고, 하드웨어적으로도 장기적인 업그레이드에서 부품을 덧붙인다거나 하는 호환성 이슈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 구조 같은 것들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제품을 기획할 때 보다 장기적인 업그레이드 상황을 상정하고 개발에 들어가는 것도 있고요."

서 위원의 입사 초기 힘이 넘치는 도전자였던 LG전자는 현재 완전히 성숙한 시장의 업계 1위가 됐다.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가 지속되면서 가전산업의 시황도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가운데, 시장 전체의 성장 동력을 이어가면서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것이 LG전자의 숙제다. 서 위원은 현재 회사가 추진하고 있는 업가전이 그 정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제는 세탁기도 전통적인 백색 가전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반응할 수 있는 스마트한 가전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고객이 사용할수록 더 똑똑해지면서도 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차세대 제품 개발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전혜인기자 hye@dt.co.kr

사진=박동욱기자 fuf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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