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아래 이모, 삼촌만 20명 넘어" 돌봄공동체 '일오집'
부산서 14가구가 함께 집 지어 모여사는 '일오집'
집 가운데 큰 마당 나눠 쓰고, 여러 가족이 '돌봄 공백' 메워
"공동 돌봄의 최대 수혜자는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
부산CBS는 생명돌봄 운동의 일환으로 출생과 양육의 기쁨을 누리고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좋은 본보기들을 소개하는 순서를 마련한다. 아홉 번째로 14가구가 함께 모여 한 지붕 아래 공동 돌봄을 하고 있는 '일오집'을 소개한다.
▶ 글 싣는 순서 |
①북적이는 집에서 사랑 넘치는 8남매…"서로 가장 좋은 친구" ②평균 출산율 3명인 교회…"아이 함께 키워준다는 믿음 덕분" ③다섯 남자아이 입양한 부부…6형제가 만드는 행복의 모양 ④부모는 슈퍼맨이 아니야…'같이 육아'로 아빠도 배운다 ⑤"내 자식 같아서" 온정 전하는 아버지들…"돌봄친화 사회로 이어져야" ⑥신생아 '1만 명' 만난 베테랑 의사가 말하는 '산부인과 의사생활' ⑦"나부터 먼저" 대한민국 1호 민간 출산전도사가 된 회장님 ⑧"아이는 공동체가 함께" 교회가 시작한 돌봄…부산에도 퍼지나 ⑨"한 지붕 아래 이모, 삼촌만 20명 넘어" 돌봄공동체 '일오집' (계속) |
2013년 초등학생 아들과 일오집을 만든 뒤 그 아들이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안소희(52) 대표와 일오집 내 3세대로 분류되며 초등학생 두 아들을 둔 이승진(42)씨를 지난 10일 만났다.
일오집을 방문하기 전날 밤 애초 안 대표와 함께 만나기로 한 또 다른 가족의 어린 자녀가 고열에 시달린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뷰가 무산될까 봐 초초해 하는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연락이 왔다.
초등학생 4학년 아들 이준과 1학년 둘째 아들 이담을 둔 이웃집 엄마 이승진 씨가 긴급히 '품앗이 인터뷰'에 투입됐다는 것. 일오집에서는 급한 일이 있으면 이웃끼리 서로 돕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라는 것을 이들을 만나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인 일오집 두 채의 겉모습은 여느 다가구주택과 비슷하지만, 나무 대문 안에 들어서니 14가구가 같이 쓰는 큰 마당과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작은 수영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마당 옆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열리는 반상회를 하거나 반찬을 가져와 함께 밥을 나눠 먹을 수도 있고, 손님을 대접할 수도 있는 공동 공간인 '일오방'이 있다.
일오방 앞에서 처음 만난 승진 씨는 마당 한쪽에 쌓인 배달물 사이에 놓여있는 딸기를 꺼내 들어 일오방 내 공동 냉장고에 넣었다.
둘째 이담이가 '우리집거야?'라는 질문에 승진 씨는 웃으며 옆집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일오집은 택배비도 줄일 겸 한 달에 한 번 생산자와 직거래 공동구매를 하는데, 요즘 날씨가 더워져 배달 식품 중에 딸기가 상할 것 같아 제가 주문한 것은 아니지만 냉장고에 넣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저뿐만 아니라 일오집에 있는 다른 가족들도 평소에 이렇게 한다"면서 "자기가 시킨 음식이 마당에 없으면 으레 일오방 '공동 냉장고에 있겠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라 14가족이 함께 사는 일오집은 이모와 삼촌이 넘쳐난다. 부모가 급한 일이 있어 자신의 아이를 챙기기 어려울 때면 이웃의 이모가 돌봄 품앗이에 나서는 것이 일상이다.
어른들이 힘들게 놀아 줄 필요도 없다. 저학년과 고학년이 한데 섞여 큰 마당에서 공차기나 술래잡기하고, 여름이면 작은 수영장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한다.
많은 비가 내렸던 어린이날 연휴에도 일오집 어린이들은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장작을 피우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캠핑을 즐겼다. 바깥 나들이를 못하고 집 안에서만 지내야 했던 아파트 사는 친구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안 대표가 일오집을 지은 이유는 아이들을 마당 있는 집에 키우고 싶어 단독주택에 살다가 불과 1년 만에 이사해야 했던 뼈아픈 경험 때문이다.
안 대표는 "어린 아들을 위해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나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는데, 같이 놀 친구들이 없어 오히려 더 심심해했다"며 "마당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은 이웃 형제, 자매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일오집을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오집 1세대인 안 대표에서 3세대 승진 씨까지 이어져 오면서 참여 가족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10년째 돌봄 공동체는 지속되고 있다.
보여주기식 활동과는 거리를 둔 게 오랜 기간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이 됐다.
일오집에는 또 '미안해 하지 말고, 서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라는 약속이 서로 깔려있다.
승진 씨는 "보여 주기식 활동은 하루 이틀은 할 수 있지만 일상이 될 수는 없다"면서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다 다를 텐데,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잘하는 부모는 뒷정리를 담당하면서 공동 돌봄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는 특히 지난 3년 동안 이어져 온 코로나19 시기에 빛을 발했다.
모든 게 비대면으로 이뤄지면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갇혀 단절된 생활을 해야 했지만, 일오집 아이들은 이웃집과 공동 공간을 오가며 공동체 생활을 이어갔다.
방학 때는 삼시세끼를 같이 할 때도 부지기수였지만, 밥을 해주는 부모가 힘들지 않았던 것은 서로를 대접해야 할 손님으로 여기지 않은 덕분이었다.
몸이 피곤하면 다 같이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서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품앗이 돌봄에 최선을 다했다.
일오집 돌봄이 10년 넘게 유지된 비결에는 아빠의 역할을 놓치지 않은 점도 있다.
승진 씨는 "매달 일오방에서 하는 반상회에 각 가정 아빠의 참석률이 엄마들보다 높다"면서 "위계서열화된 사회 속에 수다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아빠들이 반상회에서 서로의 육아 고충을 나누고, 해결점을 같이 찾아가며 위로 받는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당 너른 집에 많은 아이들과 뛰놀게 하려고 선택한 일오집의 최대 수혜자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쩜 아빠인 것 같다"며 "같이 아이 키우며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웃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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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CBS 강민정 기자 km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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